[취재파일]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인가…한국뮤지컬어워즈가 던진 질문

제작자가 한국인이면 모두 창작 뮤지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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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후보작이 발표되었다. 한국뮤지컬어워즈는 한 해 동안 국내 무대에 오른 뮤지컬을 평가하는 시상식으로, 뮤지컬이 공연 시장의 핵심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그 상징성과 주목도 역시 커지고 있다. 이번 시상식에는 100편 이상의 뮤지컬이 출품돼, 출품작 수만 놓고 봐도 예년보다 한층 치열한 경쟁 구도를 보였다.

'위대한 개츠비'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 후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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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 후보 명단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GS아트센터에서 올해 8월 1일부터 11월 9일까지 진행된 공연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대상 후보를 비롯해 작품상과 창작 부문 등 총 7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편곡·음악감독상 후보에 제이슨 하울랜드(Jason Howland)&킴 샴버그(Kim Schamberg), 안무상 후보에 도미니크 켈리(Dominique Kelley), 무대예술상 후보에 폴 테이트 드푸 3세(Paul Tate Depoo III·영상 무대디자인)이 포함됐다.

'위대한 개츠비'는 많이 알려진 것처럼, 한국 제작사인 오디컴퍼니가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개발하고 제작해 지난해 4월부터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인 프로듀서가 주도해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한국 뮤지컬 산업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 다만 이 작품을 창작 뮤지컬 초연이라는 범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은 객석 규모 구분 없이 '국내에서 초연된 창작 작품'에 한해 시상하는 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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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가 창작 뮤지컬로 호명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작 구조에 있다. 한국인 프로듀서가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제작과 IP 관리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이는 한국이 더 이상 라이선스 작품을 수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상업 뮤지컬 제작을 주도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창작 뮤지컬'로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이중적 정체성

'창작 뮤지컬'이란 무엇인가. 사실 뮤지컬 시장이 작을 때는 고민할 일이 없었다. 문제는 한국 시장에서 해외 창작진을 기용해 만드는 뮤지컬이 많아지면서 발생했다. 작사·작곡·연출이 외국인인데, 창작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논란은 제작사의 국적을 기준으로 정리되는 쪽으로 흘러왔다. 한국 제작사가 만든 작품이면 창작 뮤지컬로 본다는 합의점이 형성된 것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경우를 보자. 2018년 초연 기준, 창작진은 다음과 같다.

프로듀서 : 엄홍현(EMK 뮤지컬컴퍼니 대표)
연출 : 루크 셰퍼드(Luke Sheppard)
음악감독·작곡 :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
극작 : 빅터 험버트(Victor Humbert)
작사 : 돈 블랙(Don Black)
무대디자인 : 오필영
의상디자인 : 그레엄 맥클렌(Graham McClenaghan)
조명디자인 : 존 캘버트(John Calvert)

연출, 작곡, 극작, 작사 등 핵심 창작 파트 대부분이 해외 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한국 제작 시스템 안에서 개발·초연된 창작 뮤지컬로 분류되었고 2018년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을 비롯해 3관왕을 차지했다.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와 '웃는 남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웃는 남자'는 한국의 뮤지컬 제작 시스템 안에서, 한국 시장과 한국 관객을 겨냥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에 비해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인 프로듀서가 제작을 주도했지만, 브로드웨이 시스템 안에서 개발되고 브로드웨이 관객을 주 대상으로 초연된 작품이다. 올해 한국에서 공연된 '위대한 개츠비'는 외국인 배우들이 영어로 공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투어 프로덕션에 해당한다. 제작사는 프로듀서의 국적과 참여 구조를 강조해 '서울 오리지널 프로덕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연된 '위대한 개츠비'는 이를테면 뮤지컬 '위키드' 내한 공연과 형식과 구조 면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위키드'의 내한 공연이 아무리 흥행과 완성도 면에서 성과를 거뒀다 해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시상하지는 않는다. 만약 '위키드'의 리드 프로듀서가 한국인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까. 이 경우 '위키드'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 되는가.

'어쩌면 해피엔딩'의 이중적 정체성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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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해피엔딩'은 출발점이 분명 한국 뮤지컬 생태계 안에서 태어난 창작 뮤지컬이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에서는 이 작품이 또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브로드웨이 버전은 브로드웨이 상업 뮤지컬 시스템 안에서 재개발된 프로덕션이다. 미국인 프로듀서와 연출가, 배우들이 참여해 브로드웨이 관객을 1차 수용자로 삼아 완성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대본과 음악이라는 창작의 핵심은 한국에서 초연됐던 작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규정되지만, 한국 공연계 기준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창작 뮤지컬로 남는 이중적 정체성을 갖는다.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버전의 토니상 6관왕은, 상을 탄 프로듀서와 연출가, 배우 등이 대부분 브로드웨이 현지 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창작 뮤지컬의 경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한국 창작 뮤지컬이 토니상 6관왕'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생긴다. 토니상을 받은 박천휴와 윌 애런슨이 한국 뮤지컬 생태계에서 성장한 창작진이고, 이 작품의 출발점이 한국 시장과 한국 관객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성과라는 것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400석 이상 작품상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작품상은 초연 여부와 관계없이 한 해 동안 공연된 창작 혹은 라이선스 작품을 모두 대상으로 한다. 이번에 후보에 오른 작품은 두산아트센터에서 10월 30일 개막해 현재 공연 중인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이 공연은 논란의 여지없이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그런데 만약 토니상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버전이 이후 한국어로 번역돼 들어온다면, 이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버전에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들여오는 형태가 될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성공인가

현실적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이번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배경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한국인 프로듀서가 제작과 투자, IP 운용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점은 한국 뮤지컬 산업의 질적 변화를 상징하는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브로드웨이라는 세계 최고 상업 뮤지컬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는 점은 '세계로 나아간 한국 뮤지컬'의 서사로 포착하기에 매력적인 요소다. 실제로 제작사의 국적을 기준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창작 뮤지컬'로 규정한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 이후 '한국 창작 뮤지컬의 세계적 성공'이라는 서사가 강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빠르게 성장하고 세계화하는 뮤지컬 시장 안에서 창작 뮤지컬의 '경계'를 정하는 일은 사실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 좋은 일인데 뭘 그렇게 따지냐, 한국인 역할이 컸으면 다 창작 뮤지컬이라고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공연 홍보 차원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제작사 스스로는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니 창작 뮤지컬'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뮤지컬어워즈에 출품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정책적으로는 보다 엄밀한 기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뮤지컬어워즈는 한국뮤지컬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2021년부터 대상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정부가 뮤지컬 산업을 K-콘텐츠 산업의 주요 축으로 설정하고 관련 지원 예산을 크게 늘린 상황에서, '창작 뮤지컬'이 무엇인가에 대한 엄밀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런 고민 없이는 '창작 뮤지컬 지원 정책'을 제대로 설계하고 집행하기도 어려워진다.

현 상황에 맞는 '창작 뮤지컬'의 경계를 고민해야

'창작 뮤지컬'의 개념은 무 자르듯 단정하기 어렵고, 지금까지도 유동적으로 변화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 맞는 '창작 뮤지컬'의 경계를 정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처럼 '창작 뮤지컬'의 기준을 제작사의 국적이나 IP 소유 여부만으로 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뮤지컬 생태계 안에서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기준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뮤지컬어워즈 후보추천위원회 내부에서도 '위대한 개츠비'를 후보로 올릴 수 있는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 그 판단은 수상작을 최종 결정할 관객과 전문가 투표단의 몫으로 넘겨진 셈이 됐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성과를 정확한 언어로 기록하는 게 지금 필요한 일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성과를 기리는 것과, 이를 '창작 뮤지컬의 성취'로 규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는 오는 1월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만약 '위대한 개츠비'가 대상을 수상한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번 한국뮤지컬어워즈의 후보 선정과 투표, 수상작 결정 과정이 한국 뮤지컬 산업에 도움이 되는 발전적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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