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중국 군사 재판정이 찍힌 걸로 보이는 낡은 영상, 인민복을 입은 법관들이 차례로 들어와 자리에 앉습니다.
[재판관 : 베이징 임시 군사법원 재판 지금 개정합니다. 피고인 쉬친셴 들어오세요.]
평범한 사복을 입고 들어 온 이 남성은, 바로 1989년 중국 천안문 시위 당시 당의 무력 진압 명령을 거부해 실형을 살았던 쉬친셴 전 중국 인민해방군 38군 사령관입니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를 군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진 천안문 사태는, 지금도 중국에선 언급 자체가 금기인 역사입니다.
뉴욕타임스는 현지시간 17일 쉬 전 사령관이 1990년 비공개 군사재판에서 진압 명령을 거부한 이유를 직접 진술하는 장면이 담긴 6시간 짜리 영상이 돌연 공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내에선 유튜브 접속이 차단 돼 있지만, 이 영상은 빠르게 확산되며 조회수 120만 회를 훌쩍 넘겼습니다.
영상에서 이어지는 재판관의 추궁에 쉬 전 사령관은 "개인적으로 무력 진압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참가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냐"는 질책에도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선처를 구하는 대신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유를 담담히 설명했는데, "이 일을 잘 수행하면 영웅이 될 수 있고 잘못 수행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 수단으로 해결해야 하며 시민을 상대로 한 군사력 사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쉬 전 사령관은 당시 약 1만 5 천명의 무장 병력을 베이징 시위 현장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가 명령을 거부하자 38군은 다른 지휘관의 통솔 아래 베이징 시내로 진입해 시위대를 진압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당국은 지금까지도 사망자 수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쉬 전 사령관은 이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지난 2021년 85세로 사망했습니다.
영상을 공개한 타이완 거주 역사학자 우런화 교수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부터 영상을 받았고 진위 여부도 철저히 확인했다"며 "지난 30년간 수집한 천안문 관련 자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록"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습니다.
(취재: 김민정 / 영상편집: 이승진 / 제작: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