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인트로
00:54 "교회에서랑 너무 달랐다" 믿었던 집사의 배신
02:32 접근금지도 소용없었다... 더 끔찍해진 보복
03:48 구치소에서 '위증 시나리오'까지..내용은?
04:54 반복된 교제폭력...왜 벗어날 수 없었나?
지난 9월 서울 영등포의 한 건물 안 CCTV입니다. 한 남성이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여성은 옷이 찢어진 상태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난간을 붙잡고 버팁니다.
[피해 여성 : 제 손가락을 펴려고 하고 안 되니까 머리채를 잡고 막…전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아니까…]
40대 남성 A씨가 사실혼 관계의 연인인 30대 여성을 피해자 집으로 끌고 들어가 폭행하려는 장면입니다. A씨는 방으로 끌고 들어간 여성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흉기까지 휘둘렀습니다.
[피해 여성 : (집 안에) 끌려 들어가자마자 발길질. 얼굴, 머리 발길질. 계속 밟았어요. 몸이랑 상반신. 목을 조른 후에 제가 기절했어요.]
그런데 A씨의 이런 폭행 SBS 취재 결과 한두 번이 아닌 무려 6개월 이상 지속된 보복범죄였습니다. 피해자의 경찰 신고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있었는데도 A씨는 어떻게 끔찍한 교제 폭력을 반년 넘게 자행했던 걸까요?
1. "교회에서랑 너무 달랐다" 믿었던 집사의 배신
피해자와 A씨는 지난해 말 한 사교모임 단체 대화방에서 서로를 알게 되면서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A씨가 집사로 활동하는 교회에도 함께 다니면서 신앙생활도 했습니다.
[피해 여성 : 연애하면서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겠다라고 처음에 교회 갈 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교회에서랑 저랑 단둘이 있을 때랑 그 모습이 너무 다른 거예요 그냥 아예 반대.]
그러나 교제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A씨의 폭력이 시작됩니다. 지난 3월 술을 마시다가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인 A씨는 자기 피해자의 얼굴을 때리고 팔을 잡아 끌며 벽에 밀칩니다.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A씨는 "경찰관이 따라가면 너네 집을 내가 안 찾아갈 것 같냐"며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경찰 신고가 접수되면서 피해자를 향한 A씨의 폭행은 제동이 걸려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A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오히려 피해자를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뒤 피해자만 볼 수 있는 SNS 프로필에 글을 올립니다. '잘 해봐라, 변호사가 딱 한 번 전화할 거다. 그게 마지막 배려다'라고 적힌 협박 문구였습니다. A씨는 심지어 피해자에 대한 고소를 눈앞에서 취하하면서 '봐라. 이렇게 간단하다, 네가 날 신고한 것도 취하하라'며 사건 무마를 종용하기까지 합니다. 협박과 강요에 겁먹은 피해자에게 A씨는 미리 써 온 처벌불원서와 합의서를 들이밀었습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지난 5월 피해자 보호를 위해 A씨에게 한 달간 100m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금지 임시조치를 내립니다. 그런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A씨는 피해자를 찾아갔고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 접근금지도 소용없었다... 더 끔찍해진 보복
법원이 두 달간의 접근 금지를 다시 내렸지만 A씨는 또 아랑곳하지 않고 공중전화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임시 조치를 어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너무나 손쉽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때부터 A씨의 범행은 더욱 심해집니다. 여성의 집으로 찾아와 복부를 걷어차면서 가족들을 해치겠다고 말하고 경찰에 또 신고할 거냐면서 피해자 휴대전화를 빼앗고 1시간 동안 가둬놓기까지 합니다. 두 차례 접근금지를 위반한 것도 모자라서 피해자에게 보복 폭행까지 일삼은 겁니다.
법을 위반하면서 피해자를 찾아가 범행까지 되풀이한 A씨에게 법원은 한달간 구치소 구금이라는 철퇴를 내립니다. 이걸로 피해자는 A씨에게서 벗어났을까요? 아닙니다. 구치소에서 풀려난 A씨는 또다시 피해자를 찾아갑니다. 놀란 피해자가 A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CCTV 화면처럼 A씨는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폭행했고 집으로 끌고 들어가 케이블 타이로 여성의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보복에 보복을 반복해오면서 범행은 더욱 끔찍해진 겁니다.
[피해 여성 : '쑤셔버린다' 이렇게 막 폭언을 했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여기저기 베였어요. 아킬레스건, 허벅지. 너무 맞아서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피가 얼굴에서 너무 흘러서.]
3. 구치소에서 '위증 시나리오'까지..내용은?
3월부터 9월까지 반복된 교제폭력, A씨에게 적용된 혐의만 8개입니다. A씨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구치소 안에서 손편지를 써서 피해자에게 보낸 겁니다. '사랑한다. 너밖에 없다. 이제 정말 정신 차렸다'면서 자신을 위해 법정에서 위증을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 재판부와 검사에게 이렇게 답변하라는 예상 시나리오까지 짜서 보냈습니다.
[피해 여성 : 위증 교사 편지가 12장이었어요. 피해자와의 관계 개선 또는 혼인 사실 언급을 해야 감형, 처벌 수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A씨는 피해자에 대한 폭행 이전에도 보복운전 등 다수의 전과 기록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폭행이 시작된 3월은 다른 혐의로 선고된 집행유예 기간, 즉 누범기간이었던 걸로 파악됐습니다. A씨가 집사로 일한 교회 측은 "A씨가 좋은 사람이다, 교회에 와서 평안을 찾았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교회 관계자 : 교회에 오셔서 평안을 찾고…좋은 분이시고 지금도 좋은 분인데…]
4. 반복된 교제폭력...왜 벗어날 수 없었나?
왜 반복되는 교제폭력 벗어날 수 없었을까? 피해자는 왜 교제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을까요? 연인 사이에 교제 폭력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신고 건수는 8만 8천 건을 웃돌았습니다. 문제는 이에 상응하는 피해자 안전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 안전 조치는 매년 3천여 건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신고 건수와 달리 오히려 조금씩 감소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가장 실효적인 방법인 검거 피의자 구속은 전체의 2% 안팎에 그쳤습니다. 또 A씨에게 적용된 폭행과 협박 같은 혐의는 반의사불벌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면 벌할 수 없는 죄목이라서 A씨가 피해자에게 처벌불원서를 강요한 것처럼 합의를 종용하거나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 즉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으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엄벌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는 겁니다. 교제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도 논란의 도마 위에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경남 거제에서 전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 대해 지난 9월 대법원은 가해자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형량인 징역 12년을 확정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비정한 피의자가 12년으로 속죄할 수 있는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습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지난 9월 대책회의를 열고 교제폭력 처벌 근거 마련을 위한 스토킹 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선 기존 피해자 보호 조치를 적극적으로 먼저 실천하겠다는 주장에 그치는 실정입니다. 6개월 넘게 이어진 교제폭력 벗어날 수 없었던 A씨의 보복 범죄는 가해자 분리는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 피해자 보호가 이대로 괜찮은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취재 : 권민규, 구성 : 신희숙, 영상취재 : 설민환, 영상편집 : 권나연, 디자인 : 이수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