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현지시간) 칠레 대선 결선서 승리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
한국과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2004년 발효)로 잘 알려진 칠레의 14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결선)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9) 공화당 후보가 좌파 집권당 지지를 받은 히아네트 하라(51) 칠레 공산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칠레 선거관리위원회(Servicio Electoral de Chile·SERVEL)는 개표율 99.33% 기준 카스트 58.18%, 하라 41.82%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고 공표했습니다.
하라 후보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의 말을 전했다"며 패배를 승복했습니다.
가브리엘 보리치(39) 대통령은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에서 "대선 결과는 명백하며, 저는 조국의 운명을 위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그의 당선을 축하했습니다.
지난달 16일 1차 선거에서 2위로 결선에 오른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은 보수 지지층 결집에 성공하면서 중도우파 성향 세바스티안 피녜라(1949∼2024) 전 대통령 이후 4년 만에 '오른쪽'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습니다.
반면 '30대 좌파 기수' 보리치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 속에 자신의 소속 정당이 아닌 하라 후보의 외연 확장 실패까지 마주하며 퇴진하게 됐습니다.
변호사 출신의 카스트 칠레 대통령 당선인은 2017년과 2021년에 이어 3번째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쥔 거물 정치인입니다.
하원에서 내리 4선(2002∼2018년)을 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독일 나치당원이었으며, 형은 칠레 군부 독재자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정권의 장관으로 일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79) 미국 대통령과 언행이나 정치적 스타일이 비슷해 '칠레의 트럼프'라고도 불리는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은 불법(서류 미비) 이민자 추방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유세 과정에서 차기 대통령 취임까지 남은 날짜를 일일이 세어가며 불법 이민자를 겨냥해 "옷만 걸친 채 떠나야 할 상황이 오기 전에 떠나라"고 경고해 왔습니다.
그는 군사 독재에 대한 사회적 반감에도 조직범죄와 싸우기 위한 군대의 권한 확대를 피력했습니다.
또 "범죄 소탕을 위해서라면 비상사태 선포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정부에서 도입해 주변국의 주목을 받은 대형 교도소 건설과 갱단원 대거 수감 정책 역시 추진할 전망입니다.
다만, 관련 제안을 현실화하려면 의회 내 온건 우파 세력과의 협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TV칠레비시온은 짚었습니다.
칠레 공화당은 지난달 총선에서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엘메르쿠리오·라테르세라 등 현지 언론과 AFP·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으로부터 극우주의자라고도 묘사되는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 침체 극복을 위해 '시장 경제로의 회귀'를 약속했습니다.
공공예산 삭감, 규제 완화, 기업 법인세 인하, 노동법 유연화, 국영기업 민영화 추진 등이 주요 구상으로 꼽힙니다.
이번 칠레 대선 결과는 유권자들의 정권 교체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남미의 모범생'이라는 국제사회의 평가와는 달리 칠레에서는 수도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출신 갱단 유입과 맞물려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경제 성장 속도까지 둔화하면서, 좌파 보리치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해진 상태였습니다.
다비드 알트만 정치학자(칠레 가톨릭대)는 로이터통신에 "칠레 유권자들이 4년 만에 더 파시스트가 된 것은 아니며, 좌파에 등을 돌린 상태에서 안착할 만한 유일한 곳이 카스트였다고 본다"며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을 20년 이상 정치 경력을 가진 친숙한 인물로 인식했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질서'를 중시하며 군사 독재 시절 이후 칠레를 가장 급격한 방식으로 보수의 길로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은 양극단으로 갈라진 국론을 통합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도 안게 됐습니다.
여소야대 의회 지형과 여전히 영향력 있는 좌파 시민사회계 저항은 '철권통치' 구상에 험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남미에서 관찰되는 우파 집권 흐름인 '블루 타이드'(Blue Tide) 현상은 뚜렷해졌습니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콰도르·파라과이·볼리비아·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에는 범보수 성향 정권이 들어서 있습니다.
'트럼프 외압' 논란을 빚고 있는 온두라스에서도 좌파 여당 후보가 낙선의 고배를 들 가능성이 큽니다.
인구 2천만 명의 칠레에서 카스트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3월 11일 취임합니다.
칠레 대통령 임기는 4년이며, 연임은 안 되지만, 중임은 가능합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이번 선거 결과에 환영 입장을 냈습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축하 성명을 내고 "카스트 당선인의 리더십 아래 칠레가 공공 안전 강화, 불법 이민 종식, 양국 상업 관계 재활성화 등 공동의 우선 과제를 증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습니다.
루비오 장관은 이어 "미국은 양국 파트너십을 심화하고 우리 반구(서반구) 내 공동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그의 행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