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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독일은 '법 왜곡' 판사 처벌?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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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고의로 왜곡한 판사와 검사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법 왜곡죄'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 왜곡죄는 판사나 검사 등 공무원이 특정인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즉, 고의로 사실 관계를 조작하는 방법 등으로 법을 왜곡하는 경우 적용되는 죄목

입니다. 판사나 검사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다른 나라의 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 사례가 자주 언급됩니다. 사법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법 왜곡죄로 판검사를 처벌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그 법이 없을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김용민 ㅣ 민주당 의원 (지난 2일,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최근에 독일에서 판사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재판을 한 것이 들통이 나서 법 왜곡죄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이건태 ㅣ 민주당 의원 (지난 10일, KBS 라디오 '최강시사')

"독일에서 이미 시행된 선례가 있다. 독일은 헌법 재판이 굉장히 발달된 나라다. 그 나라에서도 위헌 판결이 나오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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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민의힘은 법 왜곡죄 도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헌법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여기에서 독일 사례에 대한 반론이 나왔습니다. 이 법이 원래 나치나 옛 동독 독재 시절에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는 데 주로 쓰였던 만큼, 독일 통일 이후에는 사문화 됐다는 주장입니다.

지성우 ㅣ 성균관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 (지난 4일, 국민의힘 긴급 세미나)
"법 왜곡죄의 적용례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희소하며, 선진국인 독일에서 사문화 된 역사적 유물에 불과하다."

박형명 ㅣ 변호사 (지난 8일, 국민의힘 의원총회 토론회)

"독일은 20세기 들어 히틀러 나치 시대와 동독 공산주의 체제의 인권 탄압 사례를 경험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은 이 법이 필요했고, 통일 이후에는 거의 사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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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엇갈린 주장,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독일에 법 왜곡죄로 판·검사를 처벌하는 법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형법 339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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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적용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 언론에도 보도됐습니다. 지난 2021년 4월, 독일 바이마르 지방법원에서 한 판사의 판결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이 한창이었던 시기, 독일의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마스크 쓰고, 거리 두기 하는 것 힘들다, 학교 방역 조치 풀어 달라는 내용의 소송

을 냈습니다. 당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마스크 반대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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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코로나 규제 완화 집회. 베를린=AP 연합뉴스.

판사는 학부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들 학부모가 다니는 학교 두 곳에서 마스크를 쓰게 해선 안 되고, 코로나 진단 검사도 실시해선 안 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로 사회적 논란이 커졌고, 주 교육부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그런데,

이 판사, 알고 보니 소송 할 학부모를 모집하고, 변호사와도 공모

한 게 드러났습니다. 명백한 소송 사주 사건이었습니다. 마스크 착용에 부정적인 전문가 의견이 편파적으로 인용된 점도 밝혀졌습니다. 판사 개인의 정치 편향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해당 판사는 극우 성향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마스크 의무화 조치에 반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판사에 대해 법 왜곡죄가 적용돼, 자유형 2년, 우리로 따지자면 징역 2년(집행유예)이 선고됐고, 연방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2 StR 54/24) 이 판사는 면직은 물론, 연금 자격도 박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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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종 판결을 내린 독일 연방대법원 제2형사재판부. 가운데가 재판장인 에바 멩게스 판사.

에바 멩게스 ㅣ 독일 연방대법원 판사 (지난해 11월, 방송 생중계)
피고인은 법적 절차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절차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를 은폐하려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위반 행위들은 종합적으로 볼 때 중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합니다.
Die Befassung des Angeklagten mit der Rechtssache war von Verstößen gegen die Prozessordnung durchzogen, die er zur Durchsetzung seines Zieles zu verschleiern versuchte und die in ihrer Kombination einen elementaren Rechtsverstoß belegen.

하지만, 독일에서도 위와 같은 법 왜곡죄 사례가 흔치 않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2016년 7월 판례(2 BvR 661/16)가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왜곡 정도가 매우 고의적이고 중대해야 이 법을 적용할 수 있다

고 썼습니다. 심지어,

판사가 단순히 위법한 판결을 내렸다고 적용할 수는 없다

고도 돼 있습니다. 문턱이 꽤 높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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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개인의 정치 편향에 맞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소송 제기 단계부터 관여하고, 필요한 증거만 따로 떼 적용하는 식의 중대한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이 법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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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사실은 팀이 독일 통계청에 나온

법 왜곡죄 판결 현황 자료 20년 치를 전수 분석 했더니, 관련 판결은 모두 85건이었고, 그 가운데 실형은 딱 4건

이었습니다.

이 법을 두고 독일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 2023년 독일 연방 의회가 펴낸 보고서를 참고할 만합니다. 우리로 따지자면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로 볼 수 있는데,

법 왜곡죄와 이를 적용한 판례들을 두루 분석한 결과, 판례가 주관적이고, 명확성이 부족하며, 예측성도 떨어진다

고 썼습니다.

독일 역시 법 왜곡죄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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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이 지난 11일 민주당 지도부를 찾아 "국론 분열과 국민 갈등의 진원지가 국회"라며, 법 왜곡죄를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전국 각급 법원에서 뽑힌 대표 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비롯해, 대한변호사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변호사 단체, 그리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법 왜곡죄 도입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일단 민주당은 법 왜곡죄 도입에 속도 조절에 나선 분위기입니다. 법 조항은 문장 몇 줄에 불과하지만, 그 파급 효과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법 왜곡죄는 '사법부 독립'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관련돼 있는 만큼, 충분한 숙의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권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디자인 : 장예은, 작가 : 김효진, 인턴 : 황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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