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고려인 전사자 아내 김잔나 씨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쟁이 남긴 상처와 한국에서의 지난 3년을 담담히 말했다.
"저와 아이들이 한국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남편을 잃은 뒤에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전사자의 아내 김잔나(35) 씨는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려인 위기가정 및 재외동포 지원정책 방안 모색 토론회'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남긴 상처와 한국에서의 지난 3년을 담담히 말했습니다.
김 씨의 증언은 홀로 피난길에 올라 살아남아야 했던 전쟁 난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남편 김막심(37) 씨와 결혼한 김 씨는 러시아와의 전쟁 발발 후 가족과 함께 피난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국경에 도착한 순간 남편은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김 씨는 시부모, 아들과 함께 2022년 10월 한국에 입국했고, 징용된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2024년 10월 전사했습니다.
마지막 연락은 "어머니 생일 축하드린다"는 짧은 메시지였습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요. 장례비를 모으는 일부터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모두가 막막했습니다."
입국 당시 김 씨 모자는 난민 비자(G-1)를 받았고, 이후 너머센터 도움으로 아들은 재외동포 비자(F-4), 김 씨는 방문동거 비자(F-1)를 발급받았습니다.
그러나 F-1 비자는 취업이 불가능해 생계를 위해 일회성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둘째 딸을 임신한 채 한국에 온 그는 "출산 과정에서 의료비, 서류 절차, 생계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김종홍 목사와 고려인 지원단체 너머의 도움으로 이를 버텼다"고 말했습니다.
딸은 보험 미가입 상태로 병원비가 수백만 원에 달했고, 김 씨 본인도 시력 이상으로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비를 계산하며 울었던 날이 많았어요. 제 병을 치료할 돈도 없었어요. 그래도 도움을 주는 손길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니키타는 1년 넘는 적응 끝에 한국어도 늘고 학교생활에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중학교 진학을 준비하며 한국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두 살배기 딸 니콜 역시 어린이집 입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씨의 F-1 비자 기간이 만료되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자녀의 F-4 비자를 통한 동반 체류지만, 안정적 생계를 위해서는 정식 취업이 가능한 체류자격 전환이 절실합니다.
전사자 연금으로 가까스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김 씨는 6개월마다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연금 관련 절차를 처리해야 합니다.
시부모 역시 고려인이지만 한국 국적이 없어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지난 몇 년을 "삶 전체가 한순간에 뒤집힌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과 한국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견뎠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누군가 제 곁에 있었습니다. 안산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도 친구가 생겼고, 저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여기서 아이들과 살아가고 싶습니다. 한국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피난처예요."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