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Z세대는 다릅니다…"글로벌 트렌드, 성수동에서 시작"
Q.
MZ세대는 개성을 드러내는 소비를 하면서 과거 세대보다 명품에 거리를 둔다는 의견이 있는데.
맞는 얘기 같아요. 그렇다고 명품을 전혀 안 좋아하는 건 아니고 갖고는 싶어 하죠. 명품을 어느 정도는 소비하는데 가치를 크게 부여하진 않아요.
특히 한국의 경우 브랜드가 글로벌 인지도가 없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아요. 예전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생각하면서 소비했는데, 요새는 우리가 쓰는 게 해외로 나가서 유명해지잖아요. 한국 화장품, 한국 드라마와 영화. '성수동이 글로벌 트렌드의 시작점이다' 제가 그런 얘기까지 합니다.
한국 젠-Z는 글로벌 젠-Z랑 좀 다르다. 한국 젠-Z가 너무 고마운 거예요. MZ 혹은 젠-Z들은 자신이 뭘 입고 뭘 먹고 뭘 쓰는지 활발하게 공유하잖아요.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검색하다 보면 우리 MZ들이 올려놓은 걸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걸어 다니는 마케터들이에요.
명품에 대해서 관심도 전보다 덜하고, 기성세대가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지금 10~20대들은 좀 더 크죠. 다른 분야에서도 기성세대와 선을 그으려는 것들이 나타나는데 소비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고. 한국 브랜드 자체가 좋아진 것도 있고요.
'진격의 K-패션', 일본 점령
Q.
우리나라 젠-Z들은 우리가 유행을 만들면 세계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는 게 인상적인데요. 몇 년 사이에 인지도를 키운 새로운 국산 브랜드들이 갑자기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맞습니다. 마뗑킴, 마르디 메크르디,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이른바 '삼마'라고 하는 브랜드들이 일본에서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데 이유가 있어요. 일본이 20년 장기 불황을 겪으며 구매력이 낮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가 다 죽은 거예요. 로컬 브랜드는 유니클로만 남았으니, 가까운 한국의 비싸지도 않고 예쁜 캐주얼을 싹쓸이해 가는 거죠.
그런 브랜드들이 이제 막 해외에 팝업 스토어를 내기 시작했거든요. 본격적으로 해외에 나간 것도 아닌데 매출의 60%가 외국인 매출액이에요. 한국 들어와서 사 가는 거죠. 몇 년 사이 각 분야에서 'K' 붙은 것들의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고, 우리가 유행을 만들어내는 레벨까지 갔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Q.
해외 명품을 사지 않아도 '저걸 바라지만 못 사서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그건 한국 MZ들의 특징이고, 글로벌 MZ들은 취업도 어렵고 물가도 비싸고. 실은 코로나 때 하나씩은 다 샀어요. 글로벌 유동성이 엄청났을 때 명품들이 장사를 많이 했는데, LVMH 그룹 회장이 일론 머스크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부호 1위를 하기도 했고. 그때의 반작용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2억 인형' 라부부 인기의 핵심…'자기 이해 소비' 하고 있나요?
Q. 내년 트렌드가 될 수 있는 '필코노미', 전 세대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필코노미(feel-conomy) : '기분을 관리하는 소비'를 뜻하는 신조어. 2026년 트렌드 단어로 꼽히기도.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은 아니고, 가심비라는 단어가 있었잖아요. 가성비에 심리적 만족까지 추구할 수 있는 가심비 개념이 필코노미로 커진 것 같은데요.
요새 젊은 여성들이나 학생들 가방 보면 큰 키링을 굉장히 많이 달고 다녀요. 그렇게 해서 잘 팔린 인형이 있어요. 라부부. 그 연령대는 또래가 뭘 소비하는지가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사는데 개인화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자기 이해 소비'라고 하더라고요. 철저히 개인화, 자신이 만족하는 소비를 하는 거예요.
인형이 5만 원이면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금액대 자체가 높지 않기 때문에 그걸 사고, 엄청나게 꾸며요. 텀블러에 온갖 걸 다 꾸미고, 그런 소비가 유행이에요. 뚜껑과 본체를 색깔 다르게 조합하는 텀블러도 있고, 키링처럼 붙이는 것도 있고. 또래들과 같은 소비를 하지만 나만의 개성을 담고 싶은 거예요.
Q.
같이 끼기는 하는데 그 안에서도 나는 나, 나만의 개성.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트렌드입니다. 성수동에 다니는 외국 젊은 여성 가방에도 큰 인형이 달려 있고, 유명한 테니스 선수 나오미 오사카가 크리스털 옷을 입힌 라부부 인형을 들고 나와서 경기 끝나고 인터뷰하면서 '오늘 데리고 온 라부부는 누구예요' 소개하고.
Q.
휴대폰 꾸미기에서 확장된 느낌.
일맥상통하죠. 어른들은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데 젠-Z들은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전 세대와 좀 다릅니다.
전 세계 명품 시장 '역성장' 중인데 "한국은 예외"
Q. 글로벌 시장에서는 명품이 2년 연속 역성장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도 글로벌 명품들이 가격을 너무 많이 올렸어요. 올해도 역시 명품은 잘 된 건가요?
전 세계인들이 명품을 안 산다는데 한국은 잘 팔린다. 한국이 대부분의 재화 시장에서 독특한 성향을 많이 보여요. 1인당 명품 소비국, 특정 벤츠 모델이 가장 많이 팔린 나라, 글로벌 넘버 원 골프 브랜드의 우리나라 매출액이 유럽·중동·아프리카 합친 매출액과 맞먹어요. 단위 면적당 명품 매장이 제일 많은 나라 역시 한국.
한국은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남과 내가 동일해야 된다는 게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소비 상향 평준화가 심하게 나타나고요. 가격을 올리면 사는 사람이 줄긴 하는데 매출은 늘어나니까. 명품 증가율이 작년까지는 20%씩 됐는데 올해는 10%대로 낮아지긴 했어요.
Q.
1인당 명품 소비 세계 1위는, 중고나 직구 제외한 통계로만 봤을 때도 그렇다.
작년에는 인기가 좀 떨어졌거나 가격을 많이 올렸던 몇몇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을 낮추기도 했었거든요. 그렇지만 전체 시장으로는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죠.
올해 우리나라 명품 시장의 성장을 이끄는 건 하이엔드 주얼리와 시계예요. 신발, 가죽은 5~7% 역성장했는데 주얼리는 오히려 성장했어요. 요새 젊은 여성들은 커플링이나 우정 반지를 몇백만 원대로 맞춰요. 가방이 하나씩 있으니까 그런 데 소비를 하는 거예요.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 왜 이렇게 할인을 잘 안 해 주지?
Q.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유통가 달아오르지 않는다, 썰렁하다는 얘기를 지난 몇 년 동안 들어왔거든요. 올해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고요?
몇 년간 경기도 어려웠고, 특히 작년 4분기는 9월, 10월이 더웠어요. 올해는 11월에 확 추워지니까 사람들이 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올해 상반기까지도 경기가 좋지 않아서 몇 년 동안 옷을 안 사 입었고, 정부가 경기 부양을 하려고 한다든지, 자산 시장이 달아오른다든지 등과 같이 맞물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날씨도 추워졌는데 옷 좀 사 보자, 몇 년 동안 내가 옷을 안 샀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거죠.
Q.
저도 11월 초부터 날씨가 추우니까 '내가 코트가 몇 년 동안 없었는데' 해서 며칠 전에 샀거든요.
지금 코트가 엄청 잘 팔린대요. 당장 실현하지 않은 수익이라도 자산이 늘어나게 되면 소비하려는 생각을 해요. 갖고 있는 금융 상품의 수익률이 올라가면 '오늘 맛있는 거 먹어 볼까, 주말에 어디 놀러 갈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사람들이 똑같습니다. 날씨, 금융 시장, 경기 부양 의지 등이 같이 맞물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