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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웃고 있으면 행복한 걸까요 [스프]

[취향저격] 영화 <넌센스>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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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과 파안대소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제희 감독의 데뷔작 <넌센스>는 관습적으로 정반대 지점에 위치시킨 상징과 정서에 혼란을 준다. 환상이나 잘못된 신념, 혹은 정신병처럼 인식됐던 상황이 알고 보니 진실이었다는 식의 반전 서사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넌센스>의 서사는 그런 반전을 최종 목적지로 정하고 진행되지는 않는다.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짜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믿는 쪽을 택하는 심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손해사정사인 유나(오아연)은 핏기 없는 메마른 얼굴로 로봇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사고 현장에 찾아가 보험사기 여부를 찾아내는 유나의 표정에서는 감정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아버지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삶은 유나에게서 감정을 앗아갔다. 오직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한 덕분에 일 처리가 빠른 엘리트 손해사정사가 된 그녀 앞에, 정체가 모호한 순규(박용우)가 나타난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무심과 초월, 그리고 광기를 합친 듯한 눈빛을 한 순규는 세상의 부조리에 냉소하는 조커를 연상시킨다. 순규의 그런 첫인상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몇 차례 바뀌고 유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저수지에서 죽은 암 환자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순규가 보험금 수령인으로 되어있어서 유나는 직감으로 그를 의심하지만, 순규는 마치 보험금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 행동한다. 보험계약자가 자살했음을 순순히 시인하고 확인서에 서명해 유나의 경계심을 일단 풀어놓지만, 그 일은 혼란의 시작일 뿐이었다.

웃음치료사라는 순규의 직업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 세상의 모순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삶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만의 지옥에 빠진 이들에게 구원의 사다리를 내려주는 상담치료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순규는 유나에게 이해하기 힘든 말을 툭툭 던진다. "웃음치료? 그런 건 없어요"라면서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부정하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가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이용하는 사기꾼일까. 순규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영화는 그의 동기가 선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악에서 비롯됐는지 판단하기 힘들게 유도한다.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유나의 얼굴이 밝아지고 미소가 생긴 시기는 순규에게 믿음을 가진 이후다. 역으로 말하자면,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에너지가 우리를 얼마나 현혹하고 정상성에서 벗어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유나는 부적을 사서 붙이고 무당을 불러들이는 어머니에게 미신이라고 화를 낸다. 그러나 순규가 어떻게 얼음장 같았던 자신의 마음을 녹이고 웃음을 찾아줬는지 생각하면, 순규가 유나에게 준 믿음과 위로는 무당이 유나의 어머니에게 준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믿음은 그만큼 이중적이다. 가짜를 진짜로 믿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치유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는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진실을 택해 힘든 경험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가짜일 가능성에 눈을 감고 평온을 유지할 것인지.

그래서 캐릭터들이 던지는 웃음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블랙박스에 잡힌 영상에서 보험계약자가 저수지에 몸을 던지기 전에 보여줬던 웃음, 갑자기 사표를 낸 손해사정사 동료가 보여주는 환한 웃음, 감독에게 매일 두들겨 맞던 야구선수가 지금껏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시킨 뒤 터뜨리는 애매한 웃음 뒤에는 순규가 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은 착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모든 상황과 사건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마음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순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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