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서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20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범인의 정체는 사건 당시 피해자들이 방문한 건물의 관리인이었던 60대 남성이었습니다. 성범죄 등 강력범죄 전과가 있었지만, 이미 10년 전에 숨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먼저, 김진우 기자의 리포트부터 보시고, 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도 짚어보겠습니다.
<기자>
포대 자루로 싸인 기다란 물체가 쓰레기통 옆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2005년 6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초등학교 옆에서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5개월 뒤, 1.8km 떨어진 주택가 주차장에서 40대 여성의 시신 한 구가 또 발견됐습니다.
얼굴에 검정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 노끈으로 묶인 두 시신 모두 성폭행과 타살 흔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 양천경찰서는 38명 규모의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8년간 수사를 벌였지만, 피의자 검거에는 실패했습니다.
재수사에 나선 서울경찰청 미제 사건 전담팀은 지난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증거물 재감정을 국과수에 의뢰했고, 두 번째 감정 결과 20대 피해자의 속옷과 40대 피해자를 묶은 노끈에서 똑같은 DNA를 검출했습니다.
[신재문/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4팀장 : 2020년 발전된 유전자 분석 기법에 따라 1·2차 사건 증거물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을 확인하게 됐고,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임을 확정하게 됐습니다.]
경찰은 이 DNA를 유력한 용의자 1천500여 명과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후 숨진 사람들까지 대상을 확대해 확인한 결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 전과가 있으면서 범행 당시 신정동의 한 건물에서 관리원으로 근무했던 60대 장 모 씨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장 씨는 지난 2015년 암으로 숨진 뒤 화장돼 유골이 없던 상황.
경찰은 장 씨가 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 병원 40곳을 탐문해 조직세포를 확보했고 정밀 감정 결과, 장 씨의 DNA와 증거물에서 발견된 DNA는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무려 20년 만에 진범의 정체를 밝혀냈지만, 장 씨가 이미 사망한 만큼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예정입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윤태호, 화면제공 : 서울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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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사건 취재한 김진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과거엔 왜 못 잡았나?
[김진우 기자 : 20년 전 두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지른 장 씨는 이듬해 2월, 다시 비슷한 범행을 시도하다 실패해 강간치상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습니다. 그럼에도 장 씨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앞선 두 사건 피해자들의 시신과 증거품에서는 아무런 DNA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유전자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해 있지 않았던 게 문제였습니다. 또, 과거에는 CCTV도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경찰은 20대 피해자와 40대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했고, 두 사건의 범행 장소조차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당시 경찰의 부실했던 초동 수사 탓도 큽니다. 과거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진범 장 씨가 근무하던 건물, 즉 범행 장소를 들렀습니다. 병원에 가겠다며 집을 나선 20대 피해자의 동선을 쫓아 주변 병원을 탐문하다가 장 씨의 근무지를 방문한 건데요. 하지만 피해자의 병원 방문 여부를 살피는 데 집중하느라 관리원이었던 장 씨는 조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피의자가 특정된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Q. '범죄의 재구성' 결과는?
[김진우 기자 : 장 씨는 두 차례 범행 모두 자신이 관리원으로 일하는 신정동의 한 건물에서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장 씨는 첫 번째 범행 당시 건물에 있는 병원을 찾은 피해자를 "1층 문이 잠겨 있으니 지하를 통해 나가게 해주겠다"라고 속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지난 9월 건물 지하를 감식한 결과, 피해자의 시신에서 검출된 곰팡이나 모래 성분과 비슷한 환경이 확인됐는데, 두 번째 범행도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Q. 엽기토끼 사건과 무관?
[김진우 기자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엽기토끼' 사건과는 무관합니다. 엽기토끼 사건은 지난 2006년 5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한 여성이 다세대주택 반지하로 납치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입니다. 당시 피해자가 집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신발장 뒤로 몸을 숨겼는데, 이 신발장에 유명 캐릭터인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장 씨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사건 발생 3개월 전에 이미 강간치상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됐기 때문입니다. 엽기토끼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는 했지만, 경찰이 계속 추적하면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나옵니다.]
(영상편집 : 윤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