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하루에 SNS를 얼마나 하시나요? 자기 전에 잠깐만 봐야지 하고 켰다가 유튜브 쇼츠 '무한 지옥'에 빠져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간 경험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이것만 보고 자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가 끝나면 비슷한 영상이 재생되고 쓱쓱 넘기다 보면 금방 또 재밌는 걸 찾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한참을 보고 있다 보면 정말 내 뇌가 썩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막연한 걱정만 하던 와중에 마침 해외에서 SNS에 대한 규제의 칼을 빼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그랲에서는 SNS와 숏폼 콘텐츠 중독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SNS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강력 규제 꺼내든 호주... 세계 최초로 청소년 SNS 이용 금지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법안 하나가 통과됩니다. 이 법안에는 만 16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들은 아예 SNS 계정을 만들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 정책이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이 법은 올해 12월 10일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세계 최초로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호주에서 시행되는 거죠.
법이 시행되면 호주의 청소년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엑스 등 SNS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SNS 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과 레딧 같은 커뮤니티도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법 적용 대상이 되는 플랫폼 기업들은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최대 4,950만 호주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470억 원의 벌금이 부여될 수 있죠.
꽤나 강력한 조치인데도 불구하고 호주 국민 여론은 이 법안을 대체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 이뤄진 여론조사 자료를 보니까 호주 국민의 77%가 해당 법안에 찬성하고 있더라고요. SNS 기업이 법을 어길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는 데에도 87%가 찬성 의사를 밝혔고요.
물론 반대 의견도 존재합니다. 아동 복지 전문가, 기술 분야 전문가 140여 명은 SNS 전면 차단이 자칫 위험할 수 있다며 이런 서한을 호주 총리에게 보내기도 했거든요. 규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동,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SNS를 원천 차단해 버리면 오히려 이용이 음지화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법안은 곧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장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던 호주의 청소년 인플루언서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호주의 인플루언서 가족인 '엠파이어 패밀리'는 결국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기로 했더라고요.
SNS에 강력 규제 정책을 꺼내든 건 호주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0월엔 덴마크 정부가 15세 미만 아동의 SNS 사용을 막겠다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노르웨이도 SNS에 접근할 수 있는 연령을 현행 13세에서 15세로 올리겠다고 발표했고요. 북유럽 국가뿐 아니라 각국 여론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이제는 SNS 규제가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주요 30개국을 대상으로 지난여름에 진행한 조사입니다. 응답자의 71%가 아동, 청소년의 SNS 이용을 제한하는 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87%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콜롬비아가 이었습니다. 호주보다 찬성 비율이 높은 국가가 5곳이나 있는 만큼, 앞으로 SNS 규제 정책이 다른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어요.
호주에서 이런 강력한 법안이 나온 배경에는 SNS를 통한 '온라인 괴롭힘' 문제가 있습니다. SNS 상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겪던 12살 소녀 두 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이 커졌던 겁니다.
다른 국가들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메테 프레데릭센 | 덴마크 총리 (덴마크 의회 개원 연설)
우리는 괴물을 풀어놓았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불안과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보여주는 숏폼... SNS를 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 SNS를 단번에 끊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SNS가 우리 삶에 녹아든 게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싸이월드가 1999년에 나왔고, 페이스북이 2004년, 트위터가 2006년, 인스타그램이 2010년에 등장했습니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SNS는 전 세계를 장악했고, 이제는 SNS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올해 10월 기준으로 SNS 이용자는 56억 6,000만 명. 전 세계 인구 82억 명 가운데 3명 중 2명이 SN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간 이용 시간은 18시간 36분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하루 평균 약 2시간 40분가량 SNS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SNS에 쏟아붓게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일단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SNS는 우리가 접속할 때마다 뇌에 강력한 쾌락과 보상이 주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보상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또 켜게 되는 거죠.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알아서 골라 보여주는 '추천 알고리즘'이 대표적입니다. 일일이 찾지 않아도, 볼 만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눈앞에 재생되죠 영상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가리지 않고 이용자가 더 빠르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끝도 없이 콘텐츠를 밀어 넣습니다. 우리가 잠깐이라도 멈추지 못하도록 말이죠.
차마스 팔라하티야 | 페이스북 전 사용자성장 담당 부사장 (2017년 11월)
우리는 심리적으로 여러분을 최대한 빨리 조종하는 방법을 알아내서, 그 도파민 쾌감을 다시 돌려주려 합니다. 페이스북은 이를 훌륭히 해냈고, 인스타그램도, 왓츠앱도, 스냅챗도, 트위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천 알고리즘이 마음에 안 든다? 그러면 한 번 쓱 넘겨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콘텐츠가 바로 등장하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진 '무한 스크롤' 기능은 알고리즘으로 걸러진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또 끝도 없이 이어 붙여 우리 뇌에 주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콘텐츠의 정점에는 숏폼 영상 콘텐츠가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SNS는 무엇일까요? 유튜브? 아닙니다. 정답은 틱톡입니다. 틱톡의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은 1시간 37분으로, 유튜브보다 12분 더 깁니다. 하루 1시간 이상 사용 시간을 기록한 서비스는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렇게 4가지뿐이었는데요. 틱톡은 태생이 숏폼 플랫폼이고 유튜브엔 쇼츠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엔 릴스가 존재하죠.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메신저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SNS는 카카오톡이지만, 얼마나 오래 쓰는지로 보면 역시 틱톡 라이트가 1위를 차지하고 있죠. 틱톡 라이트를 포함해 TOP 3에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함께 올라 있을 정도로 숏폼 콘텐츠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정신 건강에 영향 주는 SNS... 이대로 괜찮을까?
SNS와 숏폼 콘텐츠의 중독성은 이미 많은 이용자의 일상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충동성을 자극하고 정서적 불안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죠. SNS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허전함을 느끼는 등 일종의 금단 증상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SNS의 중독 징후는 전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유럽지역 사무소에서 총 40개 지역을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11%의 청소년들이 중독 같은 '문제적 SNS 사용'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성별 격차입니다. 성별, 연령별로 따져봤을 때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그 비율이 뚜렷하게 높았습니다.
WHO의 조사 뿐 아니라 여러 연구에서도 SNS의 부정적 영향이 성별에 따라 격차를 보인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가령 SNS를 많이 사용하면서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요.
퓨 리서치 센터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10대 여학생들은 10대 남학생보다 SNS에서 부정적 경험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비교에 따른 자신감 저하가 여학생은 20% 이지만 남학생은 10%에 불과합니다.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비율도 역시 25% 대 14%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죠.
SNS의 부정적 영향이 계속 보고되자 이용자들과 우리 사회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있어요.
일단 미국에서는 뉴욕, 캘리포니아 등 33개 주 법무장관이 메타에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롭 본타 |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소셜 미디어 회사 메타는 현재 우리 아이들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근본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사는 심리적, 사회적 세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플로리다 주 역시 별도의 소송을 제기했고, 메타가 청소년의 정신 건강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메타는 두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메타뿐 아니라 틱톡도 13개 주로부터 비슷한 소송을 당했고, 미국 학부모와 학교들 또한 빅테크 기업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선 상태입니다.
메타가 특히 강하게 비판받는 이유는 굵직한 SNS를 보유한 측면도 있지만, 자사 서비스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내부 연구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 때문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