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당장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져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토로합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오늘(19일) 오전 11시45분 현재 1,465.00원으로 전날보다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시기를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기업들도 장기 경영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비상이 걸렸습니다.
▲ 휘발유 평균 1천700원대 돌파
국내 정유업계는 연간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달러화로 사들이고 있어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3분기 말 기준으로 환율이 10% 오를 시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천544억 원 감소하는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정유업계는 생산 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해 환율로 인한 차익을 얻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도 파생상품 투자 등을 통해 '헤징(hedging·위험 회피)'에 나섰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내년도 경영 계획을 환율 1,400원 수준으로 놓고 수립하고 있지만, 매달 전월 평균 환율 기준으로 기준을 조정하고 있어 변동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항공업계 역시 환율 상승에 큰 부담을 체감하는 업종 중 하나입니다.
통상 항공사 영업비용 중에서 가장 큰 약 30%를 차지하는 유류비를 비롯한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해외 체류비 등 고정 비용을 달러로 결제합니다.
여기에 환율이 오르면 여행 심리가 위축되면서 항공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고환율에는 달러로 계산되는 외화환산 손실 규모도 늘어납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외화부채는 약 48억 달러로,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480억 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합니다.
대한항공은 환율 대비 통화·이자율 스와프 계약을 맺는 등 일정 부분에 대해 헤지 전략을 실행해 영향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각 항공사는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면서 현재 수립 중인 내년 사업 계획 가운데 환율 대응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입니다.
반면 해운업계에는 고환율 기조가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해상운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운임을 원화로 환산할 때 환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런 수혜는 유가가 오를 경우 반감될 수 있습니다.
▲ 지난 10월 12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 업계도 미국의 50% 부품관세 부과에 환율 급등 부담까지 져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수입 비용이 늘면 원가 부담이 커지는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철강 수요까지 위축되면서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부담이 더합니다.
다만, 대형 철강사들은 철강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내추럴 헤지'를 통해 환율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려 대응하고 있습니다.
포스코 관계자는 "환율 흐름 변동에 대한 환위험 모니터링 강화, 시나리오별 전망을 통해 환율 변동성 확대가 경영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환율에 식품 기업들은 갈수록 원자재 가격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식품 제조업의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은 31.8%로 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주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롯데웰푸드는 3분기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 10% 변동시 35억 원의 세전 손익 영향이 있다고 공시했습니다.
CJ제일제당은 사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세후 이익이 13억 원 감소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뚜기도 고환율 상황에 따라 전체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료와 부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고환율로 수익성 이 악화했고 수출 증가폭은 점진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양식품 역시 라면의 주요 원료를 수입하기 때문에 고환율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출 비중이 약 80%로 높은 만큼 이 같은 부담이 일부 상쇄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원가 상승 영향에 따라 3분기 영업이익이 600억 원으로 9.6% 감소했습니다.
스타벅스의 원가 상승은 커피 원두 국제 시세가 고공행진한 데다 강달러 기조가 지속하며 원두 수입 단가가 높아진 데 따른 것입니다.
환율 상승에 따라 원가 부담이 높아졌지만 다수 식품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탄핵 정국의 정치적 혼란기 속에 가격을 인상한 터라 단기간 내 가격을 더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내년 사업 보고서를 세우는데 환율을 낙관적으로 보진 않는 것 같다"면서 "어떻게든 내부적으로 비용을 효율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 주요 식품 원자재의 수입 관세를 낮추도록 할당관세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 먹거리 물가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국제 시세가 오른데다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미국산 갈비살(냉장)은 100g당 4천846원으로 9.7% 상승했으며 평년보다는 22.4% 비쌉니다.
▲ 국내 면세점뿐아니라 해외 면세점까지 인천국제공항의 주요 면세구역 입찰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전망되는 가운데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내 면세구역에서 여행객들이 이동 및 쇼핑을 하고 있다.
면세업계는 사업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강달러 상황이 이어지면서 면세 쇼핑의 최대 장점인 '가격 이점'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껑충 오르면서 달러 기준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면세점의 일부 제품은 백화점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상도 발생했습니다.
이에 더해 '단체 쇼핑 관광' 중심이던 방한 여행 패턴이 '개별 경험·체험 관광'으로 바뀌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먹거리, 문화 체험에 지출을 늘렸고 이에 따라 면세점의 객단가는 더 감소했습니다.
면세점들은 관광객의 쇼핑 부담을 낮추고자 할인과 쿠폰 발급 행사, 환율 보상 혜택을 강화했고, 관광 트렌드에 맞춰 체험 이벤트를 강화하고 있으나 환율 영향을 상쇄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현대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올해 각각 희망퇴직을 단행했습니다.
또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임대료로 손실이 커지자 각각 DF1·DF2 권역 사업권을 반납했습니다.
수입 식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들도 대응 방안 마련에 분주합니다.
이마트는 연간 수매 계약을 통해 아몬드와 냉동 과일, 올리브유 등 주요 원물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으로 조달하고 있습니다.
수입육의 경우 환율 상승에 따라 시세가 냉장육 중심으로 상승하자, 냉동육 상품을 5∼6개월 치 미리 확보해 비축하고 있습니다.
롯데마트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미국산 소고기 가격이 상승한 점을 고려해 호주산 소고기 매입량을 확대했습니다.
지난 7월 사전 계약을 통해 호주산 소고기 물량을 작년보다 약 20% 늘렸습니다.
홈플러스도 고환율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수입 돈육 판매 전략을 재구성했습니다.
현재 홈플러스 돈육 판매 비중은 냉장이 90%, 냉동이 10% 수준인데 비축이 가능한 냉동 품목 물량을 늘리고 수입국을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업계는 원료를 수입할 때 달러 고환율(달러 가치 상승)에 따른 손해가 예상됩니다.
달러뿐 아니라 유로 역시 강세여서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한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달러로 거래되는 글리세린과 지방산, 계면활성제 등이나 유럽에서 수입하는 유화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환율은 원료 수입에는 타격이지만, 최근 K뷰티 인기를 타고 증가한 수출에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또 다른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환율 상승에 따라 해외 매출은 증가하기 때문에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영향을 상쇄하는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인 영향은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화장품 업계는 고환율 기조가 계속됨에 따라 장기적으로 사업적인 위기 관리책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원재료 가격 인상 가능성에 대해 상황을 면밀하게 확인하고 대응 방안 검토하고 있다"며 "구매처 다변화 및 글로벌 사업 확장 등을 통해 환율 변동 리스크(위험)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고환율에 따라 원료 수입 때 발생할 수 있는 환차손을 줄이려는 노력 등을 하고 있다"며 "환율 변동에 따른 장기적인 대책도 상황을 보며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패션업계 역시 수입과 수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만큼 복합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원단을 수입하는 경우 고환율에 다른 비용 증가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LF 관계자는 "캐시미어나 울 등 일부 고급 원단과 부자재는 공급처를 분산하고, 구매 시점도 나눠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다만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비용 구조에 영향이 생길 수 있어 이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지속해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율 시나리오별 비용 구조와 해외 공급처 구성, 운영 효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년도 사업계획 구조를 수립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출을 주로 하는 제조사개발생산(ODM) 기업은 고환율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원자재나 물류비 등이 높아지기 때문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한세실업은 관계자는 "수출 때 환전된 원화 수익이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원자재와 물류비 등 달러 결제 기반의 비용 또한 상승한다"며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시 환율 리스크 반영 및 이에 대한 대응책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고환율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강이나 원유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당장 악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검토 중입니다.
다만, 환율은 거시 경제 변동에 따른 구조적 문제의 영향이 큰 만큼 단기적 해법 마련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기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원부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에 타격이 있는 상황이어서 환율 변동과 이에 다른 기업 영향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경영 자금을 지원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안내나 교육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환율은 구조적 영향이 크다"며 "단기 대응에는 정책 수단에 한계가 있고, 중소기업의 스마트 팩토리나 연구개발 지원 등 기업 혁신을 포함한 장기적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