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 오늘 공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문구입니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 연료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고, 다음날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면서도 '미국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덧붙여 상황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오늘(14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팩트시트에도 건조 장소에 대한 표현은 없었습니다. 다만,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이 됐다"면서, "건조 위치에 대한 문제는 정리가 된 것으로 본다. 작업을 하다 보면 협업이 필요하고, 그래서 미국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만 '핵잠수함 전체를 어디서 짓느냐'고 묻는다면 한국에서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시선은 다시 팩트시트 문구로 쏠립니다. '한국에서 건조'라는 표현이 없다보니 여전히 변수가 많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무슨 상황인데?
일단 한국군이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승인했습니다. 정상회의 다음날 SNS에 올린 차원에 비하면, 이번엔 동맹간 문서로서 공식화된 셈입니다. 건조 장소에 대한 문구가 없는 것은, 대통령실 설명대로라면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양국의 차후 협의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와 걸림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우리 기술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 할 테니 미국은 연료를 제공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당초 요구와 근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 실장의 설명과 맥락이 닿습니다.
핵추진 잠수함을 한국에서 건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⓵한국군의 전력이고, 보안성이 매우 중요한 무기인 만큼 건조가 한국의 통제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⓶미국의 필리조선소에는 잠수함 건조 인프라가 없고, 우리 인력과 부품이 원거리 이동해야 합니다. 또 시설을 확충해 건조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미 해군 조선시설이 있지만 양국 모두 선택할 수 없는 옵션입니다. ⓷미국에서 건조 시 유지보수와 관리를 위해 미국으로 항해해야 해 비효율성이 커집니다. 사실상 '수입 무기'가 되는 셈입니다.
한국 정부와 관련 기업의 반응을 들어보면 '잠수함 선체와 소형 원자로 건조는 대체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한 관계자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을 적용할 때, 일부 기술의 특허권이 외국에 있어, 잠수함 사용에 대한 협의가 필요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이유로 IAEA 등 국제기구의 개입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단 군 당국은 5천 톤급 핵추진잠수함을 4척 이상 건조하며 시한을 2035년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단군 이래 최대 무기 사업이라는 한국형 전투기 KF-21 사업의 16조5천억 원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그런데 우선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는 '고농축'우라늄 기반이어야 한다는 게 해군의 오랜 요청입니다. 자체적으로 핵잠수함을 건조한 프랑스 해군은 농도 7~8%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핵잠수함은 약 80% 농도의 고농축 연료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두 방식은 실제 운용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농축'의 경우 이론상으론 10년 정도, 현실적으론 6~7년 정도 주기에 추진기관의 연료봉을 교체해야하는데, 핵추진잠수함의 연료 교체는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고난이도 작업이어서 결국 복수의 잠수함을 교대로 투입해 전력 공백을 메워야합니다, '고농축'의 경우에는 2,30년, 이론상으론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해 운용 효율성과 동원력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원자력 업계에선, 한국 잠수함이 저농축 연료를 쓰겠다면 이번에 미국의 지지를 얻은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할 수 있어 국내에서도 연료 조달이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고농축 연료를 쓰겠다면 별도의 농축 권한에 대한 협정이 없다면, 사실상 미국에서 연료를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고농축 우라늄은 물리적으로 핵무기 연료와 같은 것이라 취급 과정의 위험성이 있고, 특히 탈취나 전용에 대한 우려가 큰 물질입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의 입장에선, 미국에서 '고농축' 연료를 제공받고, 독자적으로 잠수함의 원자력 추진 장치와 선체를 건조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방위력이나 군사적 자주성 면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입니다.
한 걸음 더
하지만 이런 '미국은 연료만 제공, 독자 건조'옵션에는 크게 2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⓵미국이 고농축 연료를 제공하는 것은 미국 내부의 원자력 이용관련 법에 위배됩니다. 결국 '비확산 스쿨'로 불리는 미 정부 관료와 자문가 집단, 또 의회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불기피하고, 호주의 경우처럼 예외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⓶한국 원자력업계의 SMR기술은 고농축 우라늄이 아닌 저농축보다 약간 순도가 높은 고순도 연료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원자로 기술을 갖췄다고 해도 실제 고농축 우라늄 추진 기관을 만들어 장착하기 위해선 미국의 기술 이전이 상당 수준에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호주의 사례를 토대로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협의과정에서 다른 옵션을 제시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⓵미국의 핵추진잠수함을 대여하거나 판매하는 방식, ⓶고농축 연료를 탑재한 추진기관을 조립된 완제품 '모듈'형태로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선 비밀급 군사기술 이전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인데, 공군에서 도입한 미국산 신형전투기에도 핵심 시스템을 이런 모듈형태로 공급하고, 수리가 필요하면 블록 형태로 교체하고 본국에서 고치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본질적으로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야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을 발전시킬 수 있고, 운용의 자주성 면에서도 현재로선 받아들이지 않을 방식으로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