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에비게일 스팬버거(Abigail Spanberger)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해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의 평가를 가늠할 풍향계로 주목받은 4일(현지시간) 버지니아, 뉴저지 주지사 선거와 뉴욕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모두 승리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견제구'를 던졌습니다.
특히 미국 최대 도시이자, 자본주의의 '심장' 격인 뉴욕에서는 진보 아이콘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의원이 무슬림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장에 당선됐습니다.
이날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AP통신은 민주당 후보인 에비게일 스팬버거 전 연방 하원의원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윈섬 얼-시어스 부지사를 이겼다고 보도했습니다.
득표율은 82% 개표 기준 스팬버거 전 의원 56.2%, 얼-시어스 부지사 43.6%입니다.
현직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이어서 민주당으로선 지사 자리를 탈환하게 됐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여성이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46세인 스팬버거 전 하원의원은 보수 성향이 강한 버지니아 7선거구에서 3선을 지냈으며 그전에 중앙정보국(CIA) 근무 경력이 있습니다.
하원의원 시절 당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정책 일부를 반대하는 등 민주당 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습니다.
얼-시어스 부지사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이민자 출신이며 해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계속 뒤처지면서 약세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녀에 대한 공식 지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버지니아주 부지사 선거에서도 역시 민주당 소속인 가잘라 하시미가 당선됐습니다.
미국에서 주정부 선출직에 무슬림 여성이 당선된 것은 하시미가 처음입니다.
버지니아주 법무장관 선거에서도 민주당 제이 존스 후보가 현역인 공화당 제이슨 미야레스 후보에 승리했습니다.
버지니아주는 2008년부터 작년까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계속 승리해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붙은 작년 대선에서 그 격차가 좁혀진 데다 2021년 주지사 선거에서는 공화당 소속인 글렌 영킨 현 주지사가 당선되는 등 중도 성향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날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마이키 셰릴 연방 하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의 잭 치타렐리 전 뉴저지주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71% 개표 기준 셰릴 의원이 56.5%, 치타렐리 전 의원이 42.9%를 득표했습니다.
현직 뉴저지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이기에 민주당으로선 수성에 성공했습니다.
셰릴 의원은 해군에서 9년을 복무하면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유럽과 중동에서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변호사와 연방 검사를 지냈습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해 하원에 입성한 뒤 4선을 지냈으며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에서 이번에 승리한 스팬버거 전 의원과 함께 민주당 내 중도파에 속합니다.
사업가 출신인 치타렐리 전 의원은 뉴저지 주지사직에 이번에 3번째로 도전했지만 다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는 3년 전 주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인 현 필 머피 주지사에게 고작 3%포인트 차로 지면서 뉴저지주에 보수 바람이 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습니다.
뉴저지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1992년부터 대선에서 계속 민주당에 승리를 안겼습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이 반영될 것이라는 점에서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트럼프 2기 후반부 국정 운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내년 11월 중간선거(연방 상·하원 의원 등 선출)를 앞두고 민주당이 이번 주지사 선거 승리에 고무될 것으로 매체들은 예상했습니다.
지난달 1일부터 이날까지 35일간 계속된 연방정부 일부 업무정지(셧다운) 사태 속에 민심이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번 선거에서 일부 드러난 만큼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의 고삐를 더 당길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민주당은 이번 두 주지사 선거에 임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불만이 있는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내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 메시지를 집중했으며 그 전략이 유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중도층이 불편해할 문화적 의제보다는 실생활 문제 해결을 주로 다뤘습니다.
스팬버거 전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로 물가를 올리고 연방정부 일자리를 없애 버지니아 주민의 생계를 위협했다고 주장했으며, 셰릴 의원은 뉴저지주의 높은 전기요금을 낮추겠다고 공약하는 등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는 민주당의 내년 중간선거 전략에도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 시장 선거에서는 '진보 돌풍'을 일으킨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의원이 예상대로 당선됐습니다.
80% 개표 기준 민주당 맘다니 의원이 50.6%, 무소속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가 41.2%를 득표했습니다.
맘다니 의원은 인도계 무슬림으로 무슬림이 뉴욕 시장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맘다니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 무상버스, 무상교육 등 뉴욕 시민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공약을 내세우면서 주목받았으나 공화당이나 재계에서는 그의 부유층 증세 공약 등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쿠오모 전 주지사는 민주당 경선에서 맘다니에게 패배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며 맘다니의 급진 정책을 우려하는 중도·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쿠오모를 지지하며 커티스 슬리워 공화당 후보와 '반(反) 맘다니' 단일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