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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 셔츠에 이렇게 깊은 뜻이…김신록의 놀라운 연기, 1인극 '프리마 파시'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배우 김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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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주)쇼노트 제공

영화와 드라마에서 '신 스틸러'로 이름난 배우 김신록 씨가 혼자 130분을 이끌어가는 1인극 '프리마 파시(Prima Face)'. 유능한 형사 전문 변호사이지만 피해자로 법정 증인으로 서게 된 주인공의 시선으로, 성폭력과 정의, 계급과 젠더의 문제를 되묻습니다.

김신록 씨는 '예리하고도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라고 말하는데요, 주인공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마지막 장면에 담긴 '도래할 세계'의 의미는 무엇인지, 김신록 씨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 들어보세요.

김신록 배우 :

첫 장과 증인석에 앉았을 때의 대사도 반복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걸 하는 입장에서 당하는 입장이 되는 거.

이병희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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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과 잘해보고 싶었던 상황이었잖아요. 썸을 타고 있었고, 그러다가 이런 상황이 일어나서 더.

김신록 배우 :

미묘하잖아요. 사실은 초저녁에 한 번 관계를 가졌고 둘이 오늘 잘해보려고 데리고 온 거고 마지막 순간에 '노'라고 말했을 때, 처음 대본 볼 때는 더 선명한 성폭행의 상황을 안 만들어주고 이렇게 하는 게 좋은 선택인가? 근데 더 선명하지 않을수록 더 좋겠다, 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더 예리하게 질문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짜 예리한 작품이에요. 그냥 뭉뚝하게 몰아가서 '그러므로 성폭력 관련 법은 바뀌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해도 힘이 있는 작품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미묘하고 예리하고 인간과 현대 사회를 곱씹는 작품이에요.

김수현 기자 :

의상의 느낌이 확 다르잖아요. 의상 맡으신 분도 그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나오더라고요.

김신록 배우 :

맞아요. 엄마가 준 핑크색 셔츠를 다시 입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입는다면 언제 입어야 되느냐, 이거 가지고도 굉장히 여러 실험이 있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마지막에 다시 입을 때는 어떤 의미인가 싶었어요.

김신록 배우 :

눈에 띄기 위해서 싸우고 싸웠던 소녀,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워킹 클래스 출신이지만 경영대가 아니라 법대를 갔어요. 고귀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추구미가 있던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쟤를 이기고 싶은 세상, 쟤가 안 보이고 대신 내가 보이는 세상을 바랐다기보다는, 왜냐하면 난 워킹 클래스 출신으로 자꾸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니까 나도 여기 있다고 자꾸 고개를 들이미는 씩씩하고 진취적인 여자 아이였던 거죠.

그래서 어쩌면 내가 바라는 세상은 그냥 우리 모두 눈에 보이는 세상이었는데, 사회 구조 속에서 경쟁적으로 살아오다 보니까 쟤가 안 보이고 내가 보이는 세상을 산 거예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 근데 파트 2에 제가 깨닫는 세상은 내가 워킹 클래스를 벗어나고 싶은 세상이 아니고 워킹 클래스도 충분히 눈에 보이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되는 거예요.

엄마를, 애증이죠. 법정 오는데도 왕골 가방 쥐고 왔어. 782일 지나고 나왔는데도 저게 눈에 거슬려. 근데 마지막 재판받으러 갈 때는 내 앞에 온 여자들 보고 내 뒤에 올 여자들 보고 이 사회가 바뀌어야 된다, 이 세계가 바뀌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엄마가 준 그 옷을 입고 법정으로 가는 거예요.

근데 법정 파트 2 시작할 때 이거 입고 있어야 되는지, 도대체 이걸 언제 긍정해야 되는지, 이러다가 아니면 안 입어야 되는지, 이 여자가 세계관 바뀌었다고 꼭 이거 마음에 안 드는데 입고 법정 가는 것도 너무 교조적이다, 이러다가 어쩌면 진짜 바라는 세상은 우리 모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여기 있어'라는 말을 처음에도 하잖아요. '다들 화려해, 나만 빼고. 하지만 나도 여기 있어' 그냥 나도 여기 있다는 걸 존중받는 사회?

그래서 이거 엄마가 사준 거니까, 대단한 취향 아니더라도 예쁠 수 있고 엄마 마음이 나한테 그만큼 더 중요하니까 폴리에스테르 100프로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른 세계로 이 여자가 나아가는 상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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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김수현 기자 :

현실이라면 '줄리안이 무죄가 됐으니까 이제 무고로 걸겠지' 전 그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그러면 또다시 법정에서 싸움을 해야 되나?

김신록 배우 :

무고로 걸면 싸워야죠.

이병희 아나운서 :

힘들다.

김신록 배우 :

재판 안 끝났네요. 너무 기분 좋게 문 열고 나갔는데.

김수현 기자 :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현실에서 그런 기사를 많이 봤으니까, 이런 일이 있다는 거를.

김신록 배우 :

너무 많죠. 나는 왜 무고까지 생각 안 했지?

이병희 아나운서 :

(웃음) 마음 무거워졌어, 어떡해.

김신록 배우 :

이거 또 어떻게 해결하나. 문을 거의 반쪽만 열고 나가게 됐네.

김수현 기자 :

문을 열고 나가서 그다음에 또 싸워야죠.

김신록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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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이 작품이 현대적인 게, 낭만적이지가 않잖아요. 줄리안이 유죄 판결을 받지도 않고 이 여자가 완전히 회복해서 잔다르크처럼 되지도 않고 현실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진짜 어렵게 건져 올릴 수 있는, 닳고 닳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아니고 '진짜 이 여자가 어디에 가 닿았을까, 어디에서 새로 일어난 걸까'를 사유하게 되는 작품이었어요. 이게 잘못하면 낭만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면서 끝날 수 있는데 그 뒤가 있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대본에 보면 다 '나우'예요. 때와 장소가 나오잖아요. 1장 나우, 2장 나우, 3장 나우. 근데 파트 2에 가면 '나우'에서 '덴'으로 왔다 갔다 해요. 기억이 나는, 멱살 잡고 끌고 가니까. 그리고 18장만 '레이터'예요. 여기서 '레이터'라는 게 뭘까, 그걸 가지고 논의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이후에 도래할 세계에 대한 바람 냄새 같은 것을 맡는 장면인 것 같다는 생각을 저는 하거든요. 도래하지 않았지만 도래할 어떤 세상에 대한.

가까운 동료 배우와 다른 작품으로 일본 공연을 간 적이 있어요. 저는 완전히 길치고 호텔 밖을 나가고 싶지도 않은데 그 언니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산 사람인 거예요. 요코하마를 갔었는데 딱 나가자마자 '저쪽이 바다인가 보다. 냄새를 맡으면 저쪽이 바다다. 바람 불어오지 않냐' 소금기가 있는 바람이 불어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막 '카레집이 여기다. 이 근처에 카레집이 있다' (웃음)

어쩌면 2막의 세계는, 그 마지막 18장은 객석에 앉아 있는 모두,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고 인식까지 도달하지 않았지만 체험적으로 그 세계가 올 거라는, '바다 냄새가 난다' 정도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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