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직전 한국 주식시장은 축포를 쐈습니다. '전인미답'의 코스피 3500 돌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이끌었습니다. 미국 오픈AI의 한국산 반도체 대량 '입도선매'소식으로 '한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 슈퍼사이클' 흐름이 확인된 겁니다.
매우 이례적인 연휴 전 상승은 미국 변수가 밑자락을 깔았습니다. 미국의 9월 민간고용은 전월보다 3만2천명 감소해 시장전망치(5만 명)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ISM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49.1로, 전월(48.7)보다 소폭 개선됐지만 기준선인 50.0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경기부진 조짐이 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을 가속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고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를 부르면서 매수세가 강해졌습니다.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어제(1일) 삼성·SK그룹과 각각 상호협력 의향서를 체결했습니다. 오픈AI가 진행 중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고성능·저전력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해달라는 입도선매 계약입니다. 양도 엄청납니다. 올해 세계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규모가 48조원 정도인데, 이번 요청은 1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엔비디아 의존 낮추고픈 오픈AI..물량확보 전쟁 중?
오픈AI는 트럼프 행정부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함께 발표한 4년간 5천억 달러(700조원) 규모의 AI데이터 센터 건설 프로젝트입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AI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전략입니다. 단순 서버가 아닌 학습과 추론이 가능한 슈퍼컴퓨터가 들어가니 이를 위한 AI가속기, 또 여기에 들어가는 대량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또 여기에 들어갈 막대한 양의 메모리칩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재료를 미국에서 조달할 수 없다는 겁니다. 특히 AI가속기를 엔비디아에서 공급받는 오픈AI는 최근 자체 AI가속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겁니다. 엔비디아가 이미 세계 HBM 생산량의 70%를 쓸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오픈AI도 안정적 공급처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값을 후하게 쳐주고 삼성과 SK의 메모리를 입도선매한 셈입니다. 요청한 물량은 무려 웨이퍼(반도체 칩의 기판)기준 90만 장입니다. 현 세계 D램 생산능력이 180만 장 정도라고 하니 필요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죠.
결국 한국에 손 내민 미국..'갑'과 '을'은 누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어제(1일) 샘 올트먼 CEO와 각각 별도로 투자의향서를 체결했습니다. 대규모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고전적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강대국인 미국의 심상치 않은 약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왜일까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한국은 SK하이닉스(62%)와 삼성전자를 합쳐 80%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AI는 고성능인 HBM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단순하지만 품질이 좋은 메모리 반도체가 '쌀'처럼 필요하죠. 이 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은 글로벌 D램의 70% 이상을, 낸드플래시의 50% 이상을 차지합니다.
AI가속기를 구성하는 GPU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이제는 함께 장착된 메모리 반도체가 이 성능을 못 따라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메모리 월'이라고 합니다. 또 전력 먹는 하마인 AI의 특성상 전력 효율성이 높은 메모리칩이 필요합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특히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필수인 고성능·저전력 D램 시장에 큰 영향력을 갖췄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국내 생산력이 절대 부족한 미국이 손을 내민 건 당연합니다. 이제 반도체 전쟁의 '갑'과 '을'이 누구인지 모호해진 느낌입니다.
AI 소프트웨어에서 강점을 가진 미국과 메모리 반도체에 강점을 가진 한국의 협력은 국가 간 AI 동맹의 전략적 모델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는 점잖은 표현이고, 핵심은 반도체 생산력이 아쉬운 건 미국이라는 겁니다.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의 약점을 적절히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난항을 겪는 한미 관세협상에서 이른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의 '이니셔티브'입니다.
AI산업 '금산분리'완화 꺼낸 李대통령..기업들 촉각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입니다. 샘 올트먼 CEO를 만난 자리에서 "AI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재원을 조달할 때 독점의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