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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 호불호 심하게 갈리는 이유 [스프]

[취향저격] 어두운 상황을 화려하게 장식한 불꽃놀이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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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개봉 전부터 주목을 끌었다. 이병헌, 손예진을 비롯한 화려한 출연진들이 전원 참석하는 제작발표회와 GV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펼쳤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해외 판권 계약으로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고 한다. 국내에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반응은 박찬욱 영화라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격차가 생각보다 크다.

카메라 워크가 현란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초기보다는 수위가 낮아졌지만 잔혹하거나 파격적인 장면들이 늘 나온다. 박찬욱 감독 초기 영화의 잔혹미는 철저하게 계산됐고 정교했다. 최근으로 오면서 박찬욱은 대중 친화적인 방향을 택했고, 7080 세대에서 유행했던 가요를 새로운 느낌으로 사용했다. 전작인 <헤어질 결심>에서 엔딩 씬에 깔렸던 '안개'는 영화의 여운이 남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다시 인기 가요로 떠오르게 했다. <어쩔 수가 없다>에서는 가요를 더 많이 사용했다. 특히 세 사람이 엉켜 권총을 차지하려고 처절한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 삽입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는 주인공들의 대사가 묻힐 정도로 볼륨을 최대로 높여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어쩔 수가 없다>는 원작의 서사를 가져왔지만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원작 소설 '액스'에는 시종일관 주인공의 끝없는 불안감이 서사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액스'의 주인공인 버크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대량으로 낙오되는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좌절감을 대변한다. 비정한 현실이지만 나름대로 적응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구조조정이라는 현상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자신의 생존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버크 같은 사람도 있다.

박 감독은 소설 '액스'에 대한 애정이 컸다. 이 소설이 박 감독의 관심을 끈 이유에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강박주의자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복수에 대한 집착이 복수 3부작을 만들었듯이, 강박주의자는 박찬욱 영화의 주제 캐릭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만수(이병헌)를 비롯해 제지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반복하는 25년이란 숫자는 강박의 증거다. 만수는 생존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많이 공감한다. 그들은 25년간 종이 밥을 먹었다고 강조하면서 이미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시작해 많은 인력이 불필요해졌음에도 제지업종에만 집착한다. 게다가 만수는 자신의 집과 온실에도 집착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여자들은 의미 없는 집착 대신 현실에 적응하는 전략을 택한다.

영화에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만수의 딸인 리원이다. 리원은 첼로에만 관심을 보이는 서번트 신드롬을 지닌 자폐 아동으로 나온다. 리원은 반향어만 반복하고 가족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이 뭉치면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만수의 가족은 이미 분해되어 보인다. 아버지의 살인 장면을 엿본 아들은 악몽을 꾸고, 아내인 미리(손예진) 역시 만수에게 근거 있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진실보다는 거짓의 평화와 해피엔딩이 중요하다. 일을 마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시간을 그리워하며 동료애를 강조하던 만수는 결국 혼자 남은 관리자가 되어 자동화시스템의 버튼을 누른다. 만수는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필요하다면 그것은 자신이어야 한다는 논리에 스스로 매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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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산업의 원료가 되는 나무는 또 하나의 캐릭터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식물광인 만수는 집안에 온실을 손수 만들고 식물 분재가 취미다. 제거한 경쟁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몸을 분재처럼 작게 얽어맨다. 엔딩 씬도 자동화된 기계로 벌목되는 장면으로 설정했다. 진보된 기술로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나무를 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무를 베는 기계는 이제 인력도 잘라낸다. 인간은 불필요해도 나무는 필요하다.

원작을 블랙코미디로 변형시킨 이유는 좀 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빛 때문에 앞의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장면이라든가, 수시로 통증이 오는 치아를 결국 뽑아버리는 행동 같은, 박찬욱 특유의 상징성은 이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코믹한 요소들을 곳곳에 넣고 있고 그 안에서 인간의 모순, 가족 이기주의, 인공지능으로 대체돼 가치가 없어진 전문 인력에 대한 비극적인 풍자를 담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산발적으로 터져버린 느낌이다. 박찬욱 감독의 특기이기도 한 오버랩, 디졸브 기법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나온다. 게다가 왜 권총을 든 손에 커다란 장갑을 세 겹이나 끼워야 했을까, 시체의 입에 깔때기를 꽂아 음식물을 밀어 넣고 랩을 싸서 죽이는 방식이 굳이 필요했을까. 화려한 메뉴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그 때문에 메인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기분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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