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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이름이 왜 '마방진'? "작명 대가로 김밥천국 만찬"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연출가 고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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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퉁소 소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창극 '귀토'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 수많은 화제작을 연출한 고선웅 씨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연극을 연출했고, 신춘문예로 등단한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에 취직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낸 시간도 있었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은 그를 '연극쟁이'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고선웅 씨가 만든 극단 '마방진'은 우리 연극계에서 굳건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곧 설립 20주년을 맞게 되죠. '마방진'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는 연극이 도 닦는 일과 같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흥미로운 연극과 인생 이야기, 놓치지 마세요.

김수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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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연극을 하신 건 아니더라고요.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고선웅 연출가 :

예. 기구한데, 하다 보니까 안 돼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플로피 디스크를 내는 구조로 바뀌어서, 손으로 쓰다가 워드를 쳐야 되는데 저는 그때까지 워드를 치지 않았고 컴퓨터를 별로 안 좋아했었고, 그러다가 워드가 필요하니까 486DX 컴퓨터를 샀고. 그게 너무 비싸니까 돈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까 회사를 가게 되고, 회사를 가게 됐는데 계속 연극이 그리워서 나왔다가, 잘렸다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죠. 누구나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굽이굽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광고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고선웅 연출가 :

이벤트 플래너 같은 거 했었어요. 카피라이터 같은 건 아니었어요.

김수현 기자 :

공연 기획 제작과 비슷하네요.

고선웅 연출가 :

그렇죠. 제가 처음에 글 쓰고 받은 게 20만 원인가, 1일 개런티가 그랬는데 제 장막 희곡이 20만 원인가, 그다음에는 8만, N분의 1 하는 구조여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전전반측했던 밤이 기억납니다. '연극을 어떻게 해서 작가로 먹고살 수 있지.'

김수현 기자 :

처음에 신춘문예로 등단하신 거예요?

고선웅 연출가 :

네, 신춘문예를 네 군데 내서 두 군데 본선에 오르고 한국일보에서 됐죠.

김수현 기자 :

그 이후에 '그러면 나는 이걸 해도 되겠다' 이래서 하신 거예요? 어떻게 되신 거예요?

고선웅 연출가 :

저는 제가 하고 싶으면 일단 제 길을 가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죠. '학교 때 연극 좀 한 거 가지고 무슨 그걸 업으로 삼겠다고 까불지 마'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죠. 어르신들도 '그냥 직장 다녀'.

김수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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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때 글도 쓰셨지만 연극 만드는 거를 하셨어요?

고선웅 연출가 :

동아리에서 연극을 했죠. 연출도 하고. 21살부터 연출을 했는데 그때부터 각색을 했어요. 왜냐하면 배우들의 방학 때 공연을 하는데 사람 숫자가, 작품에는 7명 나오는데 9명이 하겠다고 하면 2명은 돌아가야 되잖아요. 그러면 대본에서 등장인물을 2명 늘리는 거죠. 그러면서 각색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김수현 기자 :

그러다가 창작 희곡도 쓰시고. '퉁소소리'도 직접 각색하신 거잖아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작가다, 연출가다' 어느 쪽인 것 같으세요?

고선웅 연출가 :

반반이요. 둘 다 행복하고 둘 다 의미 있어요. 작가만 하기는 섭섭하고 연출만 하기엔 양이 안 차다 보니까 작품을 쓰고 연출하려 하는 거.

김수현 기자 :

(극단) 이름이 '마방진'이잖아요. 제가 사실 마방진을 잘 몰랐는데 이것 때문에 예전에 찾아봤어요. '마방진이 도대체 뭔가' 보니까 되게 수학적으로.

고선웅 연출가 :

저도 지금도 마방진은 잘 모르는데, 제가 옛날에 대형 박물관 전시회를 했는데 '멜랑콜리아'라는 뒤러 그림에 16칸의 숫자가 있는데

(※해당 작품 내 새겨진 마방진을 의미)

, 제가 '이 전시회가 끝나면 저는 연극을 하겠습니다'라고 작심을 한 거예요.

제가 이름을 못 지으니까 고등학교 문학반 선배에게 '저 극단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그전에는 '이빨과 심장'이었어요. 나이가 40이 다 되니까 약간 과격해 보여서 이름 하나 지어달라고 하니까 '마방진' 어떠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김밥천국 가서 떡볶이, 라면, 김밥 다 사드리고. 제가 지은 이름이 아니에요.

김수현 기자 :

그래서 제가 계산해 봤잖아요. '진짜 이렇게 해도 대각선으로 해도 다 똑같네'

고선웅 연출가 :

가로세로 숫자의 합이 똑같다는 것. 제가 연극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게, 배우들이 한 칸인데 자꾸 한 칸을 삐져나오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미안하지만 한 칸이 좀 모자라요. 근데 정확하게 한 칸씩 다 차는 거죠. 숫자라는 개념으로 보면 원래 3이기로 했으면 3이 돼야 하고 1이기로 했으면 1이 돼야 하는데, 매일 공연을 하니까 일정 수준을 균일하게 유지해야 되는데 배우들이 조금씩 변해요. 욕심도 생기고 기복이 있단 말이죠. 그러면 그 기복을 채워서 표준을 지켜야 된다, 이런 마음으로.

김수현 기자 :

전에 인터뷰하신 거 보니까 한 칸에 대한 말씀을 하시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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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연출가 :

저도 N분의 1이에요. 우리는 다 합쳐서 1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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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진
사진 : 극단 마방진 인스타그램

김수현 기자 :

뭐 때문에 그렇게 연극을 하고 싶으셨을까요?

고선웅 연출가 :

몰라요. 계속 그냥 하다 보니까. 근데 저는 계속 재미있어요. 인간이 궁금한 것 같아요. 인간 속이. 살면 살수록 인간을 잘 모르겠어요. 캐릭터들을 계속 궁리하는 일이 저한테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인간을 알기 위한 방법이 연극 말고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고선웅 연출가 :

가령 뭐, 추천 한번 해주세요.

김수현 기자 :

모르겠어요. 다른 예술 분야도 있고.

고선웅 연출가 :

연극만 한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연극은 도예요. 도 닦는 것과 비슷해요. 만만치 않아요. 마음을 다스려야 될 것도 많고 마음을 추슬러야 할 것도 많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연극을 제작하는 배우나 연출을 말씀하시는 거죠?

고선웅 연출가 :

배우가 텍스트가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대사밖에 없으면 쳐야죠. 작가가 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도 그 배우를 믿어야죠. 연출이 못해도 배우는 이 사람 말을 들어야죠. 제작자가 돈이 없어서 내가 그리는 그림을 못 하게 해도 작품을 해야죠. 우리는 다 그 와중에서 그것을 조율해서 어찌 됐든 하나로 만들어야 되니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도 닦는 거죠.

김수현 기자 :

'마방진'은 연습을 할 때 어떤 식으로 하세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고선웅 연출가 :

자신들이 연습 많이 하고요. 그냥 툭툭 하는데 4시간은 절대 안 넘고, 그 친구들하고 사이도 좋고 '1시간 안에 얼른 읽으면 어때' 그러면 1시간 안에 읽고.

김수현 기자 :

20년 이렇게 같이 해와서 그런 거 아니에요?

고선웅 연출가 :

서로 '아' 하면 '어' 하죠. '탈출-날숨의 시간'이라는 작품을 할 때는 4일 연습하고 대본 다 외워야 할 시간이 없어서 런 갔어요. 앞에 30분 이상 막 뛰어야 되는데 자기들이 동선 다 암기하고 하는 게 있었죠.

김수현 기자 :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가요?

고선웅 연출가 :

물 흐르듯이 그렇게 돼요.

김수현 기자 :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고선웅 연출가 :

그렇진 않았겠죠. 하다 보니까 알게 된 거고, 지금은 진도도 빠르고. '나는 광주에 없었다' 같은 경우도 40명 가까이 나오는데도 엄청 속도감 있게 팍팍 정리되죠. 집중력이 좀 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훅훅 들어오는 게, 보는 관객도 '팍팍' 이렇게.

고선웅 연출가 :

신뢰를 가지고 20년 가까이 됐으니까 서로를 믿고 방식도 익숙하고 취향도 알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전달자냐 연기자냐' 같은 이야기를 하면 배우들이 '왜 내가 전달을 해야 되느냐, 납득할 수 없다', 대사를 전달하라고 하면 '내 감정은 그게 아닌데'. 배우들 설득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근데 극단 단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자연스럽게, 대사도 '시원시원하게 가자' 그러면 시원시원하게, '쩌렁쩌렁 가자' 그러면 쩌렁쩌렁 가고.

김수현 기자 :

이를테면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거는 아닌 거예요?

고선웅 연출가 :

아니죠. 돼야 하는데, 관객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그게 굉장히 어렵다니까요. 그래서 연극하는 사람들이 술도 많이 먹는 거예요.

두 사람만 있다면 그냥 얘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보고 있다는 전제를 갖고 나는 말을 하는데 저 사람이 내 대사를 꼭 들어야 돼. 근데 1천 석이야, 맨 뒤에 있어. 그럼 내가 굵은 소리로 크게 얘기해야 되잖아요. 이거 자체부터 위선이잖아요. 그냥 전달자가 되는 거죠. 이게 전달자지 어떻게 연기자가 돼서 둘만 하냐.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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