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오산 고가차도 옹벽 곳곳 건설폐기물…"물 고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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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채움재 안으로 보이는 암석들

지난 7월 발생한 경기 오산시 가장교차로 고가도로 옹벽 붕괴 사고가 부실 시공으로 인한 배수 문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건설 폐기물 등 부적절한 자재를 옹벽 안에 매립한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붕괴 사고가 기본을 무시한 시공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오늘(24일) 오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와 오산시, 경찰 등이 현장 합동조사를 진행할 당시 무너진 옹벽 뒤편의 토사 사이에서 비닐 재질의 건설 폐기물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옹벽 뒤 공간을 채우는 '뒤채움재'로는 물이 잘 빠지는 자재를 사용해야 하나, 되레 물이 고이도록 하는 폐기물들이 뒤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사고 당일과 같이 폭우가 쏟아지면 옹벽 내부의 토압에 수압이 더해지면서 순식간에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실제 지난 7월 16일 오후 7시 4분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는 옹벽이 토압을 이기지 못한 듯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 나오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 영상을 보면 옹벽 중앙 부분이 점차 볼록해지다가 폭발하듯 터진다"며 "이는 배수 불량으로 인해 기존 토압에 수압이 더해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고 양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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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물이 잘 빠지는 모래와 자갈을 뒤채움재로 사용해야 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라며 "내부에 비닐과 같은 건설 폐기물을 함께 넣었다면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뒤채움재로 사용된 암석의 크기가 적절했는지를 둘러싸고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국가건설기준센터(KCSC)가 제작한 표준시방서와 이번 사고 현장의 설계도서는 모두 뒤채움재의 입경을 100㎜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현장 합동조사 당시 무너진 옹벽 뒤편 토사 속에서 포착된 암석 가운데서는 입경(입자의 직경)이 400㎜가 넘는 것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뒤채움재로 입경이 지나치게 큰 암석이 사용될 경우 흙과 돌 사이의 공간이 많이 생겨 다지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암석의 모서리 등이 옹벽의 지지력을 높여주는 보강재(지오그리드)를 훼손해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시공사인 현대건설 측은 붕괴 지점은 서로 다른 시공 구간이 만나는 접경부로, 각 구간에 설계상 허용된 암석의 크기가 서로 달라 당장 부실시공 여부를 예단할 순 없다는 입장입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난 19일 언론에 "흙쌓기 구간의 경우 최대 500㎜의 암석까지 사용할 수 있다"며 "현장에서 발견된 암석이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부실시공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입경이 400~500㎜ 정도이면 작은 바위 정도의 크기이고 무게도 상당할 것"이라며 "현장에서 뒤채움 및 흙쌓기 구간을 통틀어 이런 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옹벽 내부에 큰 암석이 들어갈 경우 암석 곳곳에 난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면서 토사에도 빈틈이 생긴다"며 "사고 직전 옹벽 위 도로가 내려앉은 현상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달리 박 교수는 "옹벽에 들어가는 암석은 너무 커서도 안 되지만, 작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현장에서 나온 암석의 크기만을 두고 판단하기보다 표준시방서 등 관련 자료를 토대로 매뉴얼 준수 여부를 가리는 게 중요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붕괴 지점은 현대건설이 2006∼2012년 시공한 양산∼가장 구간(4.9㎞) 도로로, LH가 발주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 사고 현장에서는 종전에 무너진 40여m 구간 옆으로 20여m 구간이 추가로 붕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비슷한 시기 지어진 옹벽의 시공 전반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찰은 사고가 난 옹벽의 부실시공 의혹과 도로 유지·보수의 적정성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며 붕괴 원인을 밝혀낼 계획입니다.

1군 건설사가 시공한 공중이용시설에서 기본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일상 속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수곤 전 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 발생 전부터 붕괴한 옹벽과 관련해 시민들이 여러 이상 징후를 지적한 걸 보면 배수 문제가 적지 않은 시일에 걸쳐 이어졌을 듯하다"며 "이와 관련한 경위를 밝히는 것이 사고 원인 규명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오산시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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