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기록 종목입니다. 100분의 1초라도 앞서는 사람이 금메달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상식이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선수가 은메달을 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수영에서 터치 패드가 도입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1960년 로마올림픽 수영에서 무슨 일이?
육상의 꽃은 남자 100m이고 수영은 남자 자유형 100m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헤엄치는 사람을 가리는 경기인데 1960년 로마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남자 자유형 100m의 우승 후보는 미국의 랜스 라슨과 호주의 존 데빗, 두 선수이었습니다. 데빗은 세계 기록 보유자로 당시 23살이었고요, 라슨은 20살의 떠오르는 신예였습니다.
1만여 명의 관중이 야외 경기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레이스는 시종 치열했는데요, 초반에는 뜻밖에도 브라질의 마누엘 산토스가 선두로 치고 나가 50m를 가장 먼저 돌았습니다. 이후에는 약 5명의 선수가 뜨거운 경쟁을 펼쳤습니다. 75m쯤에서는 3레인의 데빗이 조금 앞서는가 했는데 80m 이후부터 4레인의 라슨이 무섭게 치고 나왔습니다. 데빗은 필사의 추격전을 펼쳤는데요, 라슨과 데빗 두 선수가 거의 동시에 벽을 쳤습니다. 당시 중계 캐스터는 "데빗과 라슨이 정말 거의 똑같이 들어옵니다. 누가 우승했다고 말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언뜻 보면 미국의 라슨이 조금 앞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장에 있던 관중 거의 대부분도 라슨이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데빗도 경기 직후 라슨을 축하해줬습니다. 선수들은 직감적으로 알거든요. 라슨은 훗날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10분이나 15분 동안 제가 올림픽 챔피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속에서 우승을 즐기고 있다가 나와서 몸을 말리니까 심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심판위원장이 2위를 금메달리스트로 결정
그런데 당시에는 지금 같은 터치 패드가 없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인 당 3명의 계시원이 서서 스톱워치를 누르는 방식으로 기록을 측정했습니다. 3명의 계시원이 측정한 데빗의 기록은 55초20으로 모두 같았습니다. 하지만 라슨은 좀 달랐습니다. 한 계시원은 55초00, 다른 2명의 계시원은 55초10으로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규정에 따르면 같은 두 기록이 인정되기 때문에 라슨은 55초10, 데빗은 55초20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러니까 라슨이 0.1초 빨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1960년 로마올림픽의 수영 심판은 초시계를 그대로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규칙을 보면 양측에 12명씩의 심판이 서서 육안으로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를 판단했는데요, 1등을 정하는 심판은 3명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누가 1등이냐고 묻자 2명은 데빗이, 1명은 라슨이 먼저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2등을 정하는 다른 3명의 심판에게 누가 2등이냐고 묻자 2명은 데빗이라고 했고 1명은 라슨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3대 3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이렇게 심판들이 육안으로 판단했을 때 동등한 결과나 나올 때는 초시계, 즉 스톱워치를 따르도록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심판위원장이었던 서독의 한스 런스트로머가 역사에 길이 남을 잘못된 판단을 했습니다. 그는 "존 데빗이 먼저 들어온 것을 봤다. 금메달은 데빗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데빗의 우승을 자의적으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 찍힌 사진을 보면 런스트로머는 5m 이상 떨어져 있어 정확하게 순위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런스트로머의 말도 안 되는 결정에 미국은 항소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라슨은 "정말 치열한 접전이었다. 75m쯤에서 데빗이 조금 앞선다고 느꼈지만 결승선까지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혼신의 힘으로 마지막 스퍼트를 했고 데빗을 15cm쯤 앞서 1위로 들어온 것 같다."고 훗날 회상했습니다.
느린 화면을 보면 라슨은 언더 워터, 즉 물 아래에서 벽을 터치한 반면 데빗은 오버 워터, 즉 물 위에서 터치했습니다. 이럴 경우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오버 워터, 즉 물 위에서 터치한 게 훨씬 잘 보입니다. 금메달을 도둑맞은 라슨 선수는 시상식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습니다.
라슨의 기록을 0.1초 느리게 변경해 은메달로 확정
더 황당한 것은 라슨의 기록을 55초10에서 55초20으로 더 느리게 변경한 것입니다. 데빗의 기록이 55초20인데 금메달리스트의 기록이 은메달리스트보다 느리면 안 되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공식 기록을 55초20으로 만드는 짓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한 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때 공식적이지는 아니지만 실험적으로 전자 장비를 도입해 기록을 측정했다고 하는데요. 결과는 라슨이 55초10, 데빗이 55초16으로, 라슨이 0.06초 빨랐습니다. 그러니까 라슨의 기록은 수동 스톱 워치와 같았고 데빗은 스톱 워치보다 0.04초 빠르게 나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처럼 전자 장비를 썼으면 라슨이 금메달이 확실했다는 것이지요.
라슨은 로마 올림픽 남자 400m 혼계영에서 접영 주자로 유일한 금메달 1개를 따내 억울한 마음을 다소나마 달랬는데 지난해 1월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슨의 희생이 전자 패드 도입 결정적 계기
희대의 논란 이후 스포츠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실수를 하는 사람 대신 전자 센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부터 초시계와 심판의 육안으로 순위를 가리는 규정은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는 판정 논란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전자 패드 도입으로 고마워해 할 선수들이 많은데요. 그 대표적 선수가 역대 수영 사상 최고 선수인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입니다. 펠프스는 2004년 아테네부터 2016년 리우까지 올림픽 금메달 2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총 28개의 메달로 역대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한 대회에서 8개의 금메달을 따내 이 부문 역대 최고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종전 기록은 펠프스의 대선배인 마크 스피츠가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수영 7관왕이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