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 청년운동가 찰리 커크(31)가 유타밸리대학교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지 33시간 만에 용의자가 체포됐다. 9월 10일 오후 12시 20분쯤 유타밸리대학교 야외 행사장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커크가 목 부위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고,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22)은 9월 12일 체포됐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범죄를 넘어 미국 사회의 깊은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사형 요구, 혐오 발언으로 논란이 된 커크의 이력, 그리고 반복되는 정치 폭력의 구조적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사형 받길 원한다"…트럼프의 법치주의 무시 논란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사법 개입이다. 트럼프는 용의자 체포 직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형을 받길 원한다"며 "그는 최고의 인물이었다.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독립성과 적법절차 원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도 뉴욕 맨해튼 트럭 돌진 테러리스트 사이풀로 사이포프에 대해서도 유사한 발언을 했지만, 당시 연방법원은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할 수 있지만 직접적 사실 근거가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유타 주지사 스펜서 콕스도 "사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조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이런 발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극단적 발언으로 주목받은 '보수 스타'터닝포인트USA를 공동 창립한 커크는 2012년부터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활동해 왔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발언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12월 터닝포인트USA 연례회의에서 커크는 "매우 급진적인 견해"라고 전제하며 1964년 민권법 통과가 "큰 실수"였다고 발언했다. 이 법은 공공장소 차별 금지와 학교 통합을 규정한 미국 민권운동의 핵심 성과다.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권 법안 중 하나로 꼽힘.- 핵심 내용 :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 금지
- 적용 범위 : 공공장소, 학교, 직장, 선거 등 모든 영역
- 역사적 의미 :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 종료, 흑백 분리 철폐
흑인 여성들에 대한 그의 발언도 논란을 키웠다. 커크는 2023년 7월 자신의 쇼에서 TV 스타 조이 리드, 미셸 오바마,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고(故) 실라 잭슨 리 하원의원 등을 겨냥해 "소수 집단 우대 조치 없이는 이룬 성과를 거둘 만큼의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백인을 반대하는 무기로 변했다(anti-white weapon)"고 규정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문제에서도 그는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로이터는 커크가 트랜스젠더 권리에 반대했고, 그의 단체는 성전환 의료 서비스(gender-affirming care)에 반대하는 집회를 후원했다고 보도했다. 2024년 4월에는 성전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을 "잔혹 행위를 저지른 나치"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 2023년, 미국 감시 단체 Right Wing Watch가 공개한 그의 연설에서 커크는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랜스젠더 문제야말로 우리의 감각과 자연 법칙을 거스르고, 감히 신에게 중지를 치켜드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총기 문제에 대한 그의 시각도 극단적이었다. 2023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행사에서 그는 "수정 헌법 2조를 보호하기 위해 불행하게도 매년 일부 총기 사망이 발생하는 것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며 이를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총기 폭력, 정치적 동기 급증커크 피살은 급증하는 미국 정치 폭력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메릴랜드대학 연구원 마이크 젠슨은
"2025년 상반기에만 정치적 동기의 공격이 약 150건 발생해, 2024년 같은 기간보다 거의 두 배에 달했다"
고 밝혔다. 메릴랜드대학은 1970년부터 테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러한 폭력을 추적해 왔다. 젠슨은
"우리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더 광범위한 시민 불안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은 분명히 더 많은 시민 불안을 야기하는 일종의 화약고 역할을 할 수 있다"
고 덧붙였다.
2025년 6월 미네소타에서 주 하원의원 멜리사 호트먼과 남편이 피살되고, 상원의원 존 호프먼과 그의 아내가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정치인을 직접 겨냥한 치명적 공격으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2016년 이후 정치인과 정부 직원에 대한 공격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의 정치 폭력 사건들 상당수는 우익 성향 가해자들에 의해 발생했다고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캠퍼스와 SNS로 확산된 청년 보수 운동커크의 영향력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떻게 젊은 보수층의 아이콘이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커크의 영향력은 단순한 미디어 논객을 넘어 젊은 보수 층을 조직하는 데 있었다. 그는 대학 캠퍼스와 SNS를 무대로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동원하며, 젊은 세대 속에서 보수적 가치 확산의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AP통신은 커크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보수 운동에 뛰어들어 "청년층 보수 조직화"를 목표로 '터닝포인트USA'를 성장 시켰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 단체는 25만 명 이상의 학생 회원을 확보하며 미국 전역에서 보수적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영향력이 보수 진영의 정치적 결집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한다.
표현의 자유 vs 혐오 발언의 역설아이러니하게도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던 커크의 죽음을 둘러싼 여론은 새로운 검열 논란으로 이어졌다. 일부 인사들은 커크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직장에서 징계를 받거나 해고되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MSNBC의 정치 해설가 매슈 다우드(Matthew Dowd)다. 그는 사건 직후 방송에서 "커크가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 발언(hateful rhetoric)을 지속적으로 퍼뜨렸다"고 언급했다가, 발언이 "부적절하고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처럼
커크의 피살 이후 '표현의 자유'와 '혐오 발언에 대한 책임' 사이의 긴장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즉각적 정치 이용찰리 커크 사망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인 사건 동기나 용의자의 신원이 확정되기도 전에
"급진 좌파 미치광이들(radical left lunatics)"
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에겐 급진 좌파 미치광이들이 있다(We have radical left lunatics out there)”면서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beating the hell out of them)”
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트럼프는 이 발언에서 커크가 과거 여러 차례 Antifa와 같은 극좌 단체들과의 충돌로 인해 일부 대학 강연이 중단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러한 경험을 근거로 좌파의 혐오적·선동적 수사가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폭력과 극단주의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좌파는 살인의 정당(The Left is the party of murder)"
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올리며 좌파 책임론을 거들었다. 트럼프와 머스크 두 사람 모두 사건의 배경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기도 전에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우며 사회적 논란을 키운 셈이다.
커크 죽음이 남긴 것 : 더 깊어진 분열커크 피살 직후 실시된 YouGov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7%가 정치 폭력을 문제라고 인식했다.
응답자의 59%는 "매우 큰 문제"라고 답했고, 28%는 "어느 정도 문제"라고 응답했다. 특히
연령 별로 보면 65세 이상에서는 69%가 "매우 큰 문제"라고 답한 반면, 18–29세에서는 50%에 그쳤다.
또한 YouGov의 같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11%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이 "때때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젊은 연령층(30세 미만) 및 진보 성향 응답자들 사이에서 이 의견이 다소 더 높게 나타났다.
사건 이후 드러난 구조적 문제들찰리 커크 피살 사건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단면을 드러냈다. 대통령의 성급한 사형 요구는 사법 독립과 적법절차의 원칙을 흔들었고,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던 이들이 정작 비판적 목소리에는 탄압으로 대응하면서 이중성을 드러냈다.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젊은 세대일수록 정치 폭력을 상대적으로 더 용인하는 경향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운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즉각적이고 선동적인 반응은 사건의 진실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우며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정치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 사회라면 이를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사법 제도의 독립성, 표현의 자유의 비대칭적 적용, 세대 간 가치관의 균열 같은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미국 사회의 분열과 극단화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