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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사 소행 보니 욕설이 절로"…'심청' 다시 쓰자 벌어진 일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연출가 요나 김


오프라인 본문 이미지 - SBS 뉴스

요나 김이 연출한 국립창극단의 <심청>은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오페라 연출가인 그는 옛 판소리 가사를 한 글자도 바꾸지 않으면서, 캐릭터와 장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전혀 다른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심봉사 역을 맡은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딸을 팔아넘기는 밉상 아버지 연기를 보여주다가도,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절절한 연기로 리허설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낯선 언어와 음악에도 불구하고 독일 스태프들까지 울게 한 이 무대는, 우리 고전의 힘을 보여줍니다. 새롭게 만나는 심청, 요나 김의 생생한 이야기로 즐겨보세요.

김수현 기자 :

사실 요즘 오페라를 새롭게 연출하면 가사를 바꾸지는 않아요. 배경과 설정이 바뀌는 거죠.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얘기가 탄생하는데, 원래 오페라 연출하시지만 현대 오페라 연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고요. 판소리의 중요한 대목에 전혀 손을 안 대셨거든요. 가사는 완전 옛날 거예요. 근데 상황은 달라진 거죠. 그게 오페라를 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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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요나 김 :

그렇게 느끼셨을 거예요. 그리고 현대 오페라 연출 방식이라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들었는데, 소위 레지테아터라는 개념. 그런데 이 방식이 굉장히 오래된 방식이에요.

김수현 기자 :

오래됐죠. 요즘 들어서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죠.

연출가 요나 김 :

외국에서는 그걸 시작한 게 70년쯤은 됐을 거예요. 우리나라도 점점 그걸 의식하기 시작하고 고전을 대하는 방식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럴 타이밍이기도 하고. 저는 그게 굳이 현대의 오페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 안 하고 고전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고 19세기가 됐든 18세기가 됐든 과거의 작품을 한다는 게, 우리가 그 당시 사람이 아니고 자료만 있을 뿐인데 당시의 감성이 이럴 것이라고 상정할 뿐인 거잖아요. 한복을 입고 나와서 옛날에 그랬을 것이라고 하지만, 요즘 우리가 만든 한복이거든요. 그러리라는 추측이 맞는지도 알 수 없고. 그래서 저에게 설득력 있는 방법은 지금 나의 시선으로 고전을 바라보고 그것이 어떻게 나에게 읽히는가가 유일한 작업 방식인 거예요. 다른 거는 가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저는 고전의 힘을 믿어요. 이번에도 토씨 하나 안 바꿨지만 숨어 있는 많은 맥락들과 많은 층위(dimension)들이 있고 그걸 끄집어냈을 뿐이에요. 제가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게 아니라 재해석, 재창조,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인데 고전이 없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고전을 사랑하는 방법이 고전과의 대화였으면 좋겠어요. 저는 고전과 대화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전을 받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비스무리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거는 박물관에 있는 이미지들이잖아요. 저는 고전을 만날 때 살아있는 존재처럼 만나서 나랑 한번 대화를 해보자, 질문하고 제 나름의 답을 내면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다르게 해본 적이 없어요.

심청 또한 제가 했던 작업 방법을 버리고 새로 할 수가 없었던 거죠. 이게 제 작업 방식이자 제 존재 방식이니까. 그 대신 한 가지 오페라와 달랐던 거는 제가 이 극본을 쓸 때 눈대목을 스스로 혼자 골랐거든요. 자신은 없지만.

김수현 기자 :

잘 고르셨다고 김성녀 전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연출가 요나 김 :

감사합니다. 그 단어들을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어렵잖아요. 자막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고어들, 그리고 배경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되는 단어들, 현재 전혀 사용되지 않는. 주석을 읽느라 리서치 할 때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이해해야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사전 작업이 제일 컸어요.

김수현 기자 :

가사를 바꿀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연출가 요나 김 :

전혀 바꾸고 싶지 않았어요. 옛날 말들을 찾아내는 맛이 있더라고요. 또 아름다운 거예요. 말랑말랑하게 예쁘다는 게 아니라 그 힘과 비밀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문이 닫힌 성처럼 파헤쳐 보고 싶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고전의 포스죠. 고어의 멋이 있잖아요. 그걸 그대로 두고 싶었어요.

제가 한국어가 안 들리는 외국에서 살잖아요. 그거를 쓸 때 거의 1년 전 여름이었는데, 토씨 하나 건드리고 싶지 않다, 너무 소중한 거예요. 그 대신 나머지 미장센은 내 식으로 해야지, 거기서 어떤 포텐이 터지는지 볼까? 그러면서 혼자 많이 재밌었어요.

김수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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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봤을 때 김준수 씨가 심봉사를 했는데 원래 판소리에서와 똑같은 얘기를 해요. '내가 300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속하고 왔는데' 그 얘기를 딸한테 하는 거예요. 똑같이 판소리에서 나오는 대사예요. '내가 300석 하면 눈이 떠진다고 하더라' 그 얘기를 딸한테 전하는데 몇 번을 반복하거든요.

근데 처음에는 그냥 '내가 어쩌다가 그렇게 돼버렸어' 이러는데, 나중에는 굉장히 강압적인 어조로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대사 자체는 토씨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근데 김준수 씨가 그걸 하는데, 나중에 제가 짜증이 나는 거예요. '저놈 새끼는' 딱 그런 느낌이에요. '자기 딸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길래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하고 이기적일 수 있지?'

사실 전래동화를 봤으면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하고 왔는데' 그러면 그 말 듣고 고민하는 정도로 쓱 넘어갔을 건데, 거기서 '사람이 왜 저러냐, 딸 생각은 전혀 안 하는구나'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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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요나 김 :

고전을 읽을 때 '공양미 3백 석을 약속했는데 어떡하지? 이거 안 되면 벌을 받아서 어떡하나' 이런 장면이 나왔는데, 서로 붙잡고 울고 끝나거든요. 그다음에 팔려가요. 저는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문장을 반복시켜 봐야겠다.

김수현 기자 :

반복하니 느낌이 확. 그리고 김준수 씨가 연기를 그렇게 하니까 확 왔어요.

연출가 요나 김 :

소화를 해 주죠. 훅 지나가는 부분이 다른 액션의 동기를 주잖아요. 그 이음선들이 분명했으면 좋겠더라고요. 다음 장면이 갈 수 있는 방향을 정하는 대사들이잖아요. 그 대사를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본 다음에 다음 장면이 나와도 설득력이 있게 하는 거였어요.

근데 심봉사가,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하죠. '나 어떡해, 빚을 졌는데' 이러면서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거잖아요. 딸이 '아버지 내가 도와드릴게요' 할 것을 기다리는. 답을 안 하니까 화가 나는 거야. 나중에는 강압적으로 화를 내면서, 이런 느낌이 딸을 테스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니가 내 딸인데 감히 안 도와줘?' 화를 내고, 그럴수록 딸은 더 침묵하게 되고. 그래서 저는 심청에게 침묵해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혼자 막 감정이 올라가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두 번 반복하는 게 있는데 2막에서는 딸의 '추월만정' 아시죠? 원래는 심청이 황후가 돼서 비단옷을 입고 산호주렴을 차려 입고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슬퍼서 우는 거잖아요. 편지를 썼는데 눈물이 나서 눈물이 번져서 수묵화가 됐다는 거야. 밖에는 기러기가 날고. (웃음)

그걸 읽는데 음악이 너무 슬픈 거예요. 이럴 리가 없지, 제가 의심이 많아요. 딸을 팔아먹고 나서 점점 곤궁에 처하게 되잖아요. 뺑덕도 가버리고 '결국 너밖에 없었구나'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심봉사가 '어쩌면 내 딸이 부자가 돼서 어디선가 살아 있을 거야. 나를 그리워할 거야'라고 하는 아빠의 로망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딸이 나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드니까 '구원됐을 거야, 어떻게 살아 남아서 나도 잘 살 수 있을거야' 그러면서 '얘가 나를 그리워하겠지' 하니까 자기도 눈물이 나는 거예요. 가증스러운 눈물인데 그 순간에는 또 슬플 거 아닙니까? 그 감정 자체는 진실이에요. 근데 상황 자체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걸 해 봤는데 우리 소리꾼들이 기가 막힌 게 준수 씨, 유태평양 씨 각자 결은 너무 다른데 둘 다 강렬해요. 처음에 제가 디렉션을 주니까 너무 당황해하는 거예요,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딸이 없는 딸 방에 가서, 옷만 걸려 입고 신발만 남아 있잖아요. 딸이 자주 사용하던 라디오 버튼을 누르면 그 노래가 나오거든요. 그걸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장면인 거예요.

근데 리허설할 때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서. 준수 씨가 정말 기가 막힌 메소드 액터인 거예요. 리허설 무대는 가까우니까 보이잖아요.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라디오로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우리가 전부 그걸 보고 있는데 흡입력이 너무 대단한 거예요. 카메라맨이 그걸 찍다가 울기 시작하니까 눈물이 번져가고 제 옆의 독일 스태프들 다 울고, 완전 통곡의 장으로 변했다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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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

그 소리와 연기가 확 와닿았다는 거잖아요.

연출가 요나 김 :

그래서 '역시 내 말이 맞았구나' 생각한 게, 저는 한국말이잖아요. 그리고 이 노래 방식이라든가 이런 음악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이잖아요. 제 스태프들이 저와 긴 시간 동안 오페라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제 스타일을 알지만, 이거는 또 다른 거잖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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