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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봉사 눈 뜨자 찾아온 고통…새로 쓴 고전, 파격의 심청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연출가 요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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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은 누구인가? 심봉사는 어떻게 됐을까? 국립창극단의 화제작 <심청>을 연출한 요나 김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판소리 가사를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지만, 시간과 맥락을 새롭게 엮어낸 그의 무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죽음을 다시 보여주고, 그 장면을 심봉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것이지요.

무책임하게 딸을 희생시킨 아버지가 뒤늦게 죄책감 속에서 눈뜨는 순간, 그것이 바로 요나 김이 만든 '개안(開眼)'의 장면입니다. 전래 동화의 권선징악 결말을 걷어낸 파격, 그 뒤에 숨은 치열한 고민은 무엇일까요? 커튼콜 279회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이병희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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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의 스토리는 그대로 있는 건가요?

연출가 요나 김 :

스토리라는 게 각자 읽어내는 방식인데요. 판소리 오바탕 중 하나인 심청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창하면 거의 4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거를 바탕으로 유명한 눈대목이라고 부르는 대목들이 있는데, 제가 다 읽어보면서 픽을 했어요. 내가 원하는, 내 얘기에 맞는. 대신 그 사이사이에 문맥들을 바꾼 거죠. 토씨 하나 바꾼 건 없습니다. 그 대신 위치나 시간대 같은 것을 바꾸고, 눈대목을 연기하는 방식이라든가 부르는 방식, 극적인 문맥 같은 것을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을 한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전의 기본적인 스토리가 남아 있죠. 딸이 눈먼 아버지를 위해서 자기를 팔아서 희생을 하고 아버지는 그다음에 어떻게 되는가 정도의 스토리는 남아 있는 거예요. 원래 심청전에서는 눈을 한동안 못 뜨다가 뺑덕어미한테 버림받고 황성에서 용궁에 빠졌다가 살아 돌아온 딸의 초대로 황성의 메인 잔치, 3천 명이 모인 자리에 가서 눈을 뜨고, 거기 왔던 3천 명의 맹인도 눈을 뜨고 모두 행복해졌다는 게 기본 스토리잖아요.

인당수에 빠지는 데까지는 고전 스토리 거의 그대로 갔어요. 물론 많은 것을 빼고 재배치하고 문맥을 바꾸고, 영화를 찍듯이 새로 편집한 거예요. 그렇지만 관객들이 기본 스토리는 따라갈 수가 있죠. 그런데 인터미션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모든 이야기를 심봉사의 시선으로 다시 보고 싶었어요. 우리도 심봉사를 무해하고 나약하지만 착한 아버지로 알고 있잖아요.

사실 심봉사는 누구인가를 또 여쭤보고 싶더라고요. 근데 인터미션 때까지 그걸 하는 건 너무 부담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그다음부터는 무조건 심봉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딸을 팔아먹은 다음에 뺑덕어미와 다시 살면서 그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 어린 딸을 찬물에 외롭게 죽게 한 다음에 과연 이 남자는 행복했을까. 여기서 본질이 딱 드러나게 되는데 '스토리가 무엇인가요'가 굉장히 무서운 질문이에요.

2막에서 어쨌든 우리가 기대하는 부분이, 심청이 빠지고 하늘이 감동해서 용궁에 갔더니 심청을 위해 연회를 베풀어 주고 죽은 어머니도 만나게 해 주고 소원을 다 들어주고 거대한 연꽃에 넣고 바다로 띄워서 올라가게 하고, 그걸 때마침 발견해서 황제에게 진상하고, 황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에 빠져서 황후가 돼요. 그래서 모든 게 행복해지고.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결말이잖아요. 죽으면 부활하는 패턴이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모든 세계 동화의 패턴이기도 한데.

우리가 동화에 대한 니즈가 있죠.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에. 그리고 심청 같은 희생자를 보낸 우리의 양심의 가책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용궁이라는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죄책감도 잠재우고, 그 아이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착하게 살면 나중에는 복이 온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위로받고 싶은 니즈가 있는데, 과연 현실이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저는 용궁은 가본 적도 없고 무대 위에서 용궁을 구현한다는 게 부조리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궁 신은 다 커트를 해버렸어요.

그리고 심청이 죽은 다음 현실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가 자기 딸을 보내고 난 다음부터 방탕하게 살다가 돈을 벌었으니까, 공양미 300석이 요즘 돈으로 1억이 넘더라고요. 그야말로 팔자가 핀 거죠. 그러다가 점점 자기의 과오와 실수와 잘못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사람들이 동화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이 너무 팍팍하니까. 그렇지만 무대에서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제일 공감하고 제일 현실적으로 느꼈던 인물이 심봉사거든요. 저도 딸이고 여자지만 심청이라는 존재와는 전혀 동일시가 안 됐어요. 그런데 심봉사는 너무나 실수를 많이 하고 뒤늦게 후회를 하거든요. 개안, 눈을 뜬다는 것은 진짜 의학적으로 눈만 뜬다는 게 아니라 나의 잘못을 깨닫는 은유로서 사용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많은 실수를 하고 큰 잘못을 짓잖아요. 그래서 깨달았을 때 또 아픔과 비극이 있잖아요. 그래서 2막은 평소 심청전을 아시는 분에게 또 다른 스토리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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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

심청이 빠지는 장면을 2막에서 다시 한번 보여준단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셨어요?

연출가 요나 김 :

네, 저는 그것이 제일 먼저였어요.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것은 이 작품의 중심이잖아요. 그 아이의 죽음. 근데 이 죽음이 어떻게 방치된 죽음이었는지, 어떻게 우리에게 다시 읽히는지 한 번 더 봐야 된다. 심봉사의 시선으로 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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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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