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 과잉에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 재편을 위해 정부가 본격적인 교통정리에 나섭니다.
기업 간, 기업 내 자발적 사업 재편이 속도감 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판을 짜고, 구조 개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각종 금융, 자금, 세제 등 지원을 집중합니다.
오늘(17일) 관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석유화학산업 구조 재편 방안'을 마련해 관계부처, 업계와 최종 조율에 들어갔습니다.
늦어도 이달 중 대책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중동·중국 등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며 3∼4년째 불황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화그룹과 DL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여천NCC가 적자 누적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로 부도 위기에 몰리며 추가 출자, 유상증자와 같은 긴급 수혈을 받는 등 풍전등화 상황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통해 진행한 컨설팅 용역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영업손익과 재무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현재의 불황이 이어진다면 3년 뒤에는 기업의 절반은 지속이 불가능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정부는 작년 말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BCG그룹 보고서, 업계 간담회 등을 통해 석유화학 산업의 사업 재편을 유인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이달 산업부가 발표하는 구조 개편 방안은 기업의 자발적 사업 재편 추진을 추동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사자인 기업들이 각자 중장기 사업계획과 손익계산을 통해 자발적으로 사업을 정리·조정하거나 인수·합병(M&A) 등 '결단'을 내리면, 사업 재편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정부가 각종 제도·행정 지원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위기에 대응해 최근 LG화학이 대산·여수 공장의 석유화학 원료 스티렌모노머(SM) 생산 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나주 공장 알코올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는 등 자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이 대산 에틸렌글리콜(EG) 2공장을 비우고, 여수산단 내 2공장의 일부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우기도 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함께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NCC 설비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업부는 지난달부터 문신학 1차관이 10여개 석화기업 대표를 각각 개별적으로 만나 각사의 사업 재편 계획을 취합해 정부 지원 방안을 구체화해왔습니다.
이번 대책 발표에서는 개별 기업의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수치도 제시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글로벌 공급 과잉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물량 조절이 불가피한 만큼, 업계 논의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생산 설비 가동 계획이 정리될 전망입니다.
앞서 산업부는 석유화학 업계 사업 재편 방향으로 설비 폐쇄,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설비 운영 효율화, 신사업 M&A 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업계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정리했습니다.
기업들의 신속한 사업 재편을 촉진하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 신사업 M&A 추진 시 기업결합심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 컨설팅을 지원하고, 사업 재편을 위한 정보 교환에 대한 사전 심사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 문턱을 낮춘다.
과거 일본이 1980년대 오일쇼크 여파로 위기에 몰린 석유화학 산업의 재편 과정에서 M&A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한시 유예한 것을 참고해 업계 요구 사항인 공정거래법 규제를 완화하는 카드도 대책에 포함할지 마지막까지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재편이 원활히 추진되려면 기업 간 협의가 필요한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이런 협의를 금지한다"며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석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납사·납사 제조용 원유에 대한 무관세 기간 연장, 에탄 등 원료 확보를 위한 터미널 및 저장탱크 건설을 위한 인허가 '패스트 트랙' 지원, 공업 원료용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수입 부과금 환급 등도 지원합니다.
3조 원 이상 규모의 정책금융자금 지원과 분산형 전력 거래 활성화를 통한 전기요금 선택권 확대, 규제 합리화에도 나섭니다.
특히 공급 과잉 상황에 처한 석유화학 산업의 근원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부가가치·친환경 화학소재 품목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등 지원도 추진합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최근 산업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석유화학산업의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업계가 합심해 설비 조정 등 자발적 사업 재편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