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 '경고 조치'..."속에서 천불이 난다"
틀림없이 '제명' 못해도 '출당권고'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결론은 '경고'였습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오늘 전한길 씨에 대한 2차 징계위원회를 열어 '경고 조치'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난장판이 됐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 상황을 다시 잘 살펴봤더니, 전한길 씨가 '배신자' 연호를 선동한 게 아니라 당원석에서 나온 배신자 연호를 '우발적'으로 함께 했던 것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규정 위반이 있다면, 아직 책임당원(당비 납부 석 달)이 되지 못한 전 씨가 당원석으로 무단으로 옮겨갔던 부분 정도라고 봤습니다. 반성하고 재발 방지 약속도 했으니 징계가 아닌 '주의'로 끝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래도 엄중하게 당의 뜻을 전해야 하니까 징계 범주에 들어가는 경징계 '경고'로 결론이 났다는 게 여상원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의 설명입니다.
징계를 요청한 송언석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오히려 머쓱해질 상황입니다. 앞서 송 비대위원장은 엄중 조치를 요청하면서 "전 씨는 방청석 연단에 올라 집단적인 야유와 고함을 공공연히 선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엄중하다"라고 일갈했던 터였습니다.
전한길 '경고 조치' 입장 물었더니
안철수 당 대표 후보 "속에서 천불이 난다. 쫒아내야 할 미꾸라지를..."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 "노코멘트, 의도적 무시라고 써달라"
합동연설회 현장에서 전 씨와 대척점에 섰던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에게 입장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놔두시라"고 답을 피하더니, "의도적 무시, 악의적 방임(malign neglect)" 정도로 써달라고 했습니다. 건드릴수록 악취만 더 커지니 무시하겠다 뭐 이런 취지였습니다. 격한 반응은 안철수 당 대표 후보에게서 나왔습니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SNS에 썼습니다. 전한길 씨는 "소금을 뿌려 쫓아내도 모자란 존재, 끊어내야만 (당이) 살 수 있는 존재"인데, 한 줌도 안 되는 극단 유튜버와 절연도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거냐고 했습니다.
당 지도부의 '알리바이 만들기'?
당 지도부가 엄중 조치를 요구했는데 윤리위가 '경고' 즉 경징계로 끝냈다? 정상적인 당이라면 난리가 날 일이지요. 당 지도부의 암묵적 동의나 승인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내지 않았습니다. 지난 8일 난장판 합동연설회 직후에 나온 당 지도부의 '엄중 조치' 요구 자체가 여론을 의식한 '알리바이 만들기'에 불과했거나, 오늘 최종 결론까지 일주일 동안 수면 아래에서 뭔가 많은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전한길 씨 문제, 이른바 '전한길의 늪'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가 정무적 판단을 내렸어야 합니다. 당이 탄핵 찬반 문제로 쪼개져서,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배신자" 구호가 나오고 고성과 물병까지 날아드는 상황 자체에 대해서 윤리위원회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사실관계를 따져서 적절한 징계 수위를 정하는, 기술적인 역할에 스스로를 묶었습니다. 전한길 사태에 정무적 판단은, 윤리위에 넘길 일이 아니라 당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결론을 내렸어야 할 일입니다. 최근 비슷한 예가 민주당에서 나왔죠. 이춘석 전 법사위원장의 차명거래 파문이 났을 때 민주당에서 윤리위를 열었던가요? 탈당도 받아주지 않고 바로 제명 조치를 했습니다. 엄중한 상황에서 책임있는 판단을 내릴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당 지도부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김근식 후보가 자신을 먼저 모욕했다는 측면에서)라던 전한길 씨, 또 "그 겨울 당을 지킨 고마운 분"으로 전 씨를 추켜세웠던 장동혁 후보의 기세가 더욱 거세질 것 같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후보, 충청·호남 합동연설회 中
"전한길 씨는 그 겨울 우리 당을 지키자고 한 사람이다.
이들을 나가라고 외치는 게 부끄러운 것"
전한길 씨, 오늘 징계위 출석하면서
"전대에서의 소란은 최고위원 후보가 (나를) 저격했고 오히려 피해자인데,
가해자로 잘못 알려졌다."
전한길 '장동혁 지지' 선언...깊어지는 '전한길의 늪'
전당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의 선택은 장동혁 후보라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제는 공개적 지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오늘 징계위 출석을 위해 당사에 나온 전한길 씨가 장동혁 후보 지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미묘했습니다.
김문수 후보가 마침 당사에서 농성중입니다. 어제 김건희 특검이 통일교 관련성에 대해 확인하겠다며 당원 명부 압수수색에 나선 것에 항의하는 농성이었는데, 전한길 씨의 '장동혁지지 발표'는 바로 김문수 후보 면전에서 이뤄졌습니다. 농성 장소에서 10m쯤 떨어진 곳에서 입장을 밝힌 뒤, 전 씨는 김문수 후보에게 다가가 어색한 악수를 나눴습니다.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가 장동혁 쪽으로 쏠리는 걸 경계해 온 김문수 후보로선 씁쓸하고 찜찜한 상황입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계엄과 탄핵, 대선 패배까지 겪고도 당의 중심과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윤희숙 두 번의 혁신위는 당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한 채 끝났고, 중도 보수 성향 지지층이 빠져나가면서 아스팔트 우파들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 수사도 본격적으로 국민의힘을 향하고 있습니다.
김건희 특검은 통일교 관련성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건진법사 전성배 씨와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 모 씨를 고리로 이뤄졌던 통일교 집단 입당 및 대선자금 지원 의혹이 그것입니다. 이름이 적시된 권성동 의원은 사실상 잠수중입니다. 어제 압수수색은 그 연관성을 찾기 위해 당원 명부를 확보하려 한 것입니다. 계엄 당일 국회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한 내란 특검의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를 했던 의원들이 곧 소환될 겁니다. 채 해병 특검도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을 불러서 조사했습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이 벌어졌던 2023년 8월 당시 임 의원은 국가안보실 2차장이었습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위법적인 이첩 사건 회수 지시로 이어진 과정을 밝히는 데 있어서 임종득 의원이 키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한길의 늪'은 국민의힘의 이런 위기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메타포입니다. 특검이 김건희 씨 구속의 이유로 든 표현이 "시장경제 원리와 정당 민주성, 정교분리 등 기본 사회 질서를 훼손했다."였습니다. 이렇게 엄중한 과오를 묻고 있는데, 국민의 힘이 지금처럼 해서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