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 영부인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공개 소환됐습니다. 민중기 특검이 수사에 착수한 지 35일 만입니다. 국회에서 보좌관 명의의 계좌로 주식거래를 했다고 의심받는 이춘석 의원에 대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명 처분을 내렸습니다. 법사위원장 후임으로는 6선의 추미애 의원이 내정됐습니다.
영부인에서 피의자로..."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김건희 여사가 탄 승합차는 예정보다 10여 분 늦은 오전 10시 11분쯤 민중기 특검 사무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검정색 옷과 구두를 신은 김 여사는 조사실로 이동하기 전에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김건희 여사
"국민 여러분께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수사 잘 받고 오겠습니다"
김 여사는 다소 초췌해 보였지만 긴장하거나 당황한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잠시 대기실에 머물다 별도의 티타임 없이 곧장 조사실로 들어갔습니다. 점심식사는 직접 싸 온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영상 기록을 남기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영상 녹화 없이 8시간째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는 역대 대통령 부인으로는 처음으로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검찰이나 특검의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참고인 신분이었고 비공개 또는 서면조사 형식이었습니다.
'5대 의혹'에 집중...구속영장 청구하나?
특검은 김 여사 측에 보낸 출석요구서에 이번 소환조사의 목적을 명시했습니다. 16개 특검 수사 대상 가운데 주변 조사나 증거 수집이 상당 부분 이뤄진 5대 의혹이 조사 대상입니다.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개입 의혹
▲ 정치 브로커 명태균 관련 '공천개입' 의혹
▲ 건진법사 관련 부정청탁 의혹
▲ 나토 순방 당시 고가 장신구 착용 의혹
▲ 윤 전 대통령 '주식 손해' 허위 발언 의혹
이 가운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가담 의혹의 수사 속도가 제일 빠른 편입니다.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이모, 김모 씨 등 주가조작 선수들, '전주' 손모 씨 등 9명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후 재수사를 벌인 서울고검이 김건희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지한 정황이 담긴 육성 녹음파일을 새로 확보해 특검에 넘겼습니다.
이와 관련해 특검은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발언도 수사 선상에 올려놓았습니다. 토론회에서 주가조작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이야기했다면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
"(2010년) 증권회사 직원한테 주문을 낼 수 있는 권한만 줬는데 그거 4개월 딱 하고 그 사람하고 끝났고, 저희 집사람은 오히려 손해 보고 그냥 나왔습니다"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인 윤모 씨가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고가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백 등을 건네며 교단 현안을 청탁했다는 의혹도 절반의 퍼즐은 맞춰진 상태입니다. 수사를 통해 해당 명품들이 전성배 씨에게 전달된 사실까지는 파악했는데 종착지인 김건희 여사에게 건너간 증거를 잡아야 합니다.
6천만 원짜리 목걸이...'모조품' 증거 제시하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에 대해서는 김 여사의 진술이 오락가락했습니다. 나토 순방 당시 재산신고 목록에 없던 6천만 원짜리 목걸이를 착용한 경위에 대해 처음에는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나중에는 "모조품"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김 여사의 오빠 김진우 씨의 장모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모조품 목걸이가 발견됐는데, 특검은 김 여사가 진품을 숨기고 모조품을 대신 갖다 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김 여사는 여기에 대해서도 합당한 해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김건희 여사는 오늘 특검에 출석하면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한껏 낮췄습니다. 그러나 김 여사의 행적을 보면 과연 그가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강한 의문이 듭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범죄들을 되돌아보라"
곧 조사를 받게 될 브로커 명태균 관련 의혹만 봐도 그렇습니다. 김 여사는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명 씨로부터 불법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은 대가로, 그해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명씨와 가까운 김영선 전 의원이 공천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4.10 총선에서 친분이 있는 김상민 전 검사를 경남 창원 의창에 출마시키려고 힘을 썼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허위이력 등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확산되자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약속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입니다.
문금주 민주당 원내대변인
"헛웃음만 나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남편의 권력만 믿고 저질러놓은 상상 초월의 범죄들을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특검은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여사에 대한 심도 깊은 집중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특검 가운데 가장 많은 16가지 의혹들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최장 150일간의 조사 기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한두 차례 소환조사 뒤에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결국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를 언제 떠나게 될지는 김 여사에게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최대한 특검 조사에 협조하면서 시간을 끌지 않는다면 그만큼 조기 구속의 필요성이 적어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특검이 다른 선택을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건희 여사 측이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는 쪽으로 전략을 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특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립니다.
거센 후폭풍에 '제명'...대통령 "엄정 수사하라"
이 한 장의 사진이 더불어민주당에 거센 풍파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춘석 의원이 국회 안에서 보좌관 명의의 계좌로 주식거래를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제 한 언론매체를 통해 차명거래 의혹이 확산되자 이춘석 의원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고 민주당을 탈당했습니다.
'꼬리 자르기' 아니냔 비판에 정청래 대표는 '제명'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민주당 당규에는 징계 혐의자가 탈당할 경우 '제명'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또 탈당한 자에 대해서도 징계 사유에 대한 조사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비상 징계처분을 할 수 있다는 비상 징계 규정에 따라 최고위원회 의결로 제명 등 중징계를 하려고 했으나 어젯밤 이 의원의 탈당으로 징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을 제명 조치토록 하겠습니다"
취임 이후 '코스피 5000' 시대를 강조해 왔던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
"이 대통령은 차명 거래, 내부 정보 이용 등 이 의원의 주식 거래 의혹과 관련해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진상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공평무사하게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