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1월 군산 기지 상공을 비행하는 B-1B 폭격기. 사진의 우하단이 군산 기지 활주로이다.
2010년 11월 29일 미 해군 항모 조지워싱턴이 서해로 진입해 한미연합 해상훈련을 주도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에 대응하는 차원의 훈련이었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전 이후 남북,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 항모의 서해 연합훈련은 이후에도 2013년까지 몇 차례 더 실시됐습니다.
이후 미 항모의 서해 훈련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항모 동원 훈련이 주로 열리는 해역은 동해나 제주 남방입니다. 사실, 서해에 미 항모 들여서 얻을 군사적 이익이 별로 없습니다. 보여주기 차원의 무력시위 좀 하자고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초래해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도를 높이는 십상입니다.
무엇보다 서해안에는 미 해군의 핵 추진 항모보다 몇 배 강력한 전력이 이미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침몰하지 않는 한반도라는 거대한 불침항모입니다. 서해와 인접한 오산, 군산, 광주의 군 공항은 조밀한 한미 방공망의 우산 아래에서 공중급유 없이 중국으로 안전하게 미 공군 전투기를 날릴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미군 기지입니다.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최첨단·최신·최대의 사령탑입니다. 합치면 항모 서너 척도 우스운, 가공할 대중국 전력입니다. 대중국 압박에 초점을 맞춘 미국 인도태평양 정책에서 필수불가결한 자산입니다. 미군 장군들이 자꾸 동아시아 지도를 뒤집어 놓고 한반도를 항모에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한미동맹의 현대화 의지를 전달했습니다. 대북 전력인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국으로 확대해 한미동맹의 내실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 미국의 구상입니다. 한반도 불침항모를 가동하자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미국의 대중국 인도태평양 정책에서 한반도 불침항모의 전략·전술적 가치는 막대합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 역할 확대를 수용할 참이면 동시에 불침항모 사용료 청구서를 미국에 들이밀 필요가 있습니다. 트럼프 화법을 빌리자면 한반도의 대중국 불침항모는 공짜가 아닙니다. 미국이 방위비분담금과 국방비의 인상을 압박하듯 우리는 대중국 주한미군 기지 사용료를 청구할 지정학적 자격이 있습니다.
전력 증강 서두르는 서해안 미 공군 기지들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오산, 군산 등의 군 공항이 올 들어 유난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낡은 공격기를 치우는 대신 최첨단 무인기를 배치할 준비를 하고, F-16 전투기를 5세대 전투기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으며, F-35를 새로 들일 사전 작업이 한창입니다. 주한 미 공군의 전력을 한 단계 강화하는 조치로 풀이됩니다.
먼저, 무인기입니다. 멀지 않은 지역의 적 지상전력을 타격하는 A-10 공격기를 퇴역시키고, 장거리 정찰과 공격이 모두 가능한 최첨단 무인기 MQ-9A 리퍼를 오는 9월쯤부터 군산 기지에 3개월씩 순환배치한다는 계획입니다. 20대 이상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군이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할 때 동원했던 무인기입니다. 작전 반경이 1천km 이상이어서 군산 배치 시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이 리퍼의 사정권에 들어옵니다.
미군은 지난 6월 일본 미사와 기지에서 레이더 등 항공전자장비를 업그레이드한 F-16 전투기가 오산 기지로 돌아갔다고 발표했습니다. 4세대 전투기인 F-16가 5세대급으로 변신했다며 주한 미 공군의 전력 증강을 뽐냈습니다. 오산 기지에 60여대의 F-16을 모아서 슈퍼 비행대대를 창설한다는 주한 미 공군 계획의 일환입니다. 전투비행단의 규모와 공격력을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아울러 군산 기지의 F-16 전투기를 오산 기지로 옮기는 작업도 본격화됐습니다. 주한 미 공군은 "7월 28일부터 첫 번째 F-16이 군산 기지에서 오산 기지로 이전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31대의 F-16 전투기와 1천명의 장병들이 오산 기지로 재배치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F-16이 떠난 군산 기지의 빈자리는 향후 F-35 스텔스 전투기가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군 핵심 관계자는 "F-35 군산 배치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모종이 공사가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주한미군 감축설을 흘리면서 속으로는 주한미군 고도화에 힘쓰는 형국입니다.
"한반도 불침항모 제 값 받아야"주한 미 공군의 오산, 군산 기지가 유례없는 속도로 변모하는 데 대해 한미 연합사의 한 장교는 "중국을 겨냥한 움직임"이라고 단언했습니다. 한국의 대북 안보 필요성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대중 안보 필요성에 따른 전력 증강이라는 것입니다. 한반도 불침항모가 착착 전력화되는 것 같습니다. 리퍼, 업그레이드 F-16, F-35로 무장한 한반도 거대 불침항모는 중국의 수뇌인 베이징과 옆구리인 산둥, 장쑤, 상하이를 때려 대만 침공의 예기를 꺾는 데 제격입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대중국 억지 효과가 큽니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측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주장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국으로 확대함으로써 한미동맹을 일신하겠다는 미국의 속셈이 엿보입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국 현지에서 이런 내용을 기자들에게 직접 설명했습니다. 주한미군 역할 변화와 동맹 현대화에 어느 정도 호응해야 하기 때문에 언론에 일찍 공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주한미군은 지금까지 오로지 대북한 전력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한미군 역할을 확대한다면 주한미군 기지의 가치를 재고해야 합니다. 주한미군 기지들의 대중국 전략·전술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미군의 해외 기지 중 이만한 데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방위비분담금을 내듯, 미국은 주한미군 기지의 대중국 전략·전술적 가치만큼의 대가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셈법입니다.
한미동맹재단의 한 임원은 "주한미군 기지의 대중국 전략·전술적 가치를 엄밀하게 따지고 들면 천문학적 규모의 기지 사용료를 미국이 한국에 지불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역할 변화와 한미동맹 현대화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지에 연동해서 주한미군 기지의 전략·전술적 가치도 같은 수준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달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정부는 주한미군 기지의 대중국 전략·전술적 가치를 면밀하게 분석해 협상의 밑천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국방비와 방위비분담금 인상, 주한미군 감축 공세에도 훌륭한 방어 수단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