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서 쓰러진 시민…베테랑 버스기사가 심폐소생술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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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시내버스 171번 기사 정영준씨

지난 11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연대 앞 버스 정류장에서 소란이 일었습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의식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것입니다.

놀란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머뭇거리던 그때, 막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더니 곧장 뛰어와 응급조치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28일)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흑기사처럼 나타난 그는 시내버스 171번 기사 정 모(62)씨였습니다.

1998년부터 운전대를 잡은 베테랑 버스 기사인 정 씨는 신호를 받고 좌회전으로 연대 앞 정류장에 진입하던 중 쓰러진 사람 주변으로 청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한 정 씨는 급히 내려 다가갔으나 쓰러진 이는 혀가 말려있고 호흡과 의식이 없었습니다.

정씨는 그의 혀를 펴 기도를 확보하고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심폐소생술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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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119에 신고하며 정 씨를 도왔습니다.

정 씨가 심폐소생술을 4분쯤 이어갔을 무렵, 쓰러진 남성은 '허억'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뱉어내더니 기침하고는 의식을 조금씩 회복했습니다.

호흡과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본 정 씨는 주변 학생들에게 쓰러진 남성을 119 구급대에 잘 인계해달라고 부탁한 뒤 버스에 올라 승객들에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버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들은 정 씨에게 손을 내밀며 "수고하셨다"고 격려했습니다.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리고는 다시 묵묵히 버스를 운행하는 그의 모습을 본 한 승객은 하차할 때 과자를 건네며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날짜가 좀 지났지만 칭찬하고 싶다", "몇 분 정도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하시고 나서 쓰러졌던 분이 의식을 찾는 모습이 보였고, 기사님이 안도하면서 버스로 와 출발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습니다.

정 씨는 "회사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매년 받아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마저 버스를 운행하면서 '배운 대로 하면 되는구나, 사람을 살릴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는 매년 4시간씩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대면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합니다.

연 12시간 이수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교육(온라인) 과정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정류장에서 쓰러졌던 남성은 의식을 회복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안전하게 이송됐습니다.

정 씨는 "굳이 알리지 않을까 하다 뿌듯한 마음에 결국 친구와 동료들에게 '내가 살면서 사람 한 명을 구했다'고 말도 했다"며 쑥스러워했습니다.

그는 "당시 버스에서 기다려주신 승객분들도 있는데 운행이 지체된 것에 대해 뭐라 하지 않고 격려해주셨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진=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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