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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깔본 남자 콧대 꺾은 테니스 여제 [스프]

[별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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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사를 수놓았던 명승부와 사건, 인물, 교훈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별별스포츠+', 역사와 정치마저 아우르는 맥락 있는 스포츠 이야기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회도 많지 않았고 상금도 남성에 비해 턱없이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73년 지구촌 스포츠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남성과 여성이 테니스 코트에서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지금까지 성대결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의 세기의 매치였습니다.

여성 인권 기수 vs 남성 우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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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

1943년 미국에서 태어난 빌리 진 킹은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만 무려 39회, 윔블던 우승은 통산 6회를 차지하며 1960년대와 70년대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슈퍼스타입니다. 바비 릭스는 1918년에 태어난 미국 남자 테니스 선수로 윔블던에서 우승했고 6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며 1940년대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유명 스타입니다.

1970년대 들어 여성의 인권 문제가 미국에서 큰 이슈로 등장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빌리 진 킹이 강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쉽게 말해 총대를 멘 것입니다. 테니스의 경우 남자 상금이 평균 8배 이상 많았기 때문인데요, 빌리 진 킹은 여성 차별이라는 불합리한 관행에 반기를 들고 나온 상징적 존재가 됐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바비 릭스는 여전히 여성을 깔보는, 무시하는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특히 말을 함부로 했는데요, 심지어 "여성의 실력이 떨어지니 적은 상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까지 대놓고 했습니다. 이에 여성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바비 릭스는 "내 나이가 지금 55살인데 지금도 30살의 빌리 진 킹을 가볍게 꺾을 수 있다"며 성대결을 먼저 제안했습니다.

'어머니날의 학살', 더욱 우쭐해진 바비 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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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코트 꺾은 바비 릭스
마거릿 코트 꺾은 바비 릭스

바비 릭스가 도발적 제안을 해오자 빌리 진 킹은 처음엔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바비 릭스는 호주의 마거릿 코트에게 성대결을 제안했습니다. 코트는 빌리진 킹보다 1살 많은 당시 31살이었는데요, 1970년 여성 최초로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 위업을 달성했고 통산 메이저 대회 24번 우승한 전설의 스타입니다. 1972년 첫 아이 출산 이후 코트에 복귀해 1973년 그해 호주 오픈과 프랑스 오픈 타이틀을 모두 획득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바비 릭스와 마거릿 코트의 성대결은 그해 5월 13일에 열렸고 CBS 스포츠가 중계를 했는데요, 예상과 달리 마거릿 코트가 무기력한 경기 끝에 6대 2, 6대 1, 2대 0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날 릭스는 드롭샷과 로브슛을 구사하며 코트를 완전히 무너뜨렸는데요, 하필이면 5월 13일 이날이 미국에서 '어머니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언론들은 이 경기를 '어머니날의 학살'이라고 불렀습니다.

1973년에 이뤄진 세기의 성대결

바비 릭스의 주가는 한층 올랐습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타임(Time)'지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더욱 기고만장해졌습니다. 릭스는 "여성 선수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50대 중반의 남자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남자의 여성의 능력 차이는 엄청나다.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말을 증명하지 않았느냐? 이제 빌리 진 킹도 가볍게 꺾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빌리 진 킹은 1972년 세계 1위, 성대결이 열린 1973년엔 세계랭킹 2위였는데요, 릭스가 강하게 도발해 오자 더 이상 성대결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부할 경우 패배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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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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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

남성 우월론자 바비 릭스, 여성 인권을 강조하고 성차별에 맞서온 빌리 진 킹, 두 유명 스타의 성대결이 성사되자 스포츠계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언론의 관심도 정말 뜨거웠습니다. 릭스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빌리 진 킹을 바로 옆에 두고 "집에서 음식하고 아이나 보라"며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세기의 성대결은 1973년 9월 20일 미국 휴스턴 애스트로돔에서 열렸습니다. 현장에 3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고 ABC가 중계했는데 하워드 코셀 등 쟁쟁한 스타 캐스터들이 총 출동했습니다. 미국에서 5천만 명, 전 세계 40개국에서 9천만 명이 생중계로 이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주 뒤인 10월 6일에 녹화 중계가 됐습니다.

여자 무시한 릭스 콧대 꺾은 빌리 진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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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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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진 킹의 심리적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훗날 그는 "내가 그 경기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50년 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여자 투어를 망치고 모든 여성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경기는 의외로 싱거웠습니다. 2시간 4분 동안 두 선수가 기량을 겨뤘는데 6대 4, 6대 3, 6대 3, 빌리 진 킹의 세트 스코어 3대 0 완승이었습니다. 원래 빌리 진 킹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는데, 이날은 굉장히 안정적인 플레이, 쉽게 말해 실수하지 않는 작전으로 나섰습니다. 화려한 기량을 보여주는 것보다 무조건 이겨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비 릭스가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어떻게 보면 무성의했습니다. 아무튼 콧대 높던 바비 릭스를 꺾은 빌리 진 킹은 벅찬 감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미국 여성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성을 올렸습니다. 집집마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크게 환호했습니다.

바비 릭스가 예상외로 너무 무기력하게 패배하자 이후 일부러 진 것 아니냐는, 쉽게 말해 승부 조작설이 나돌았습니다. 릭스가 원래 도박꾼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939년 윔블던 대회에서 자신의 우승에 베팅해 엄청난 거액을 벌어들인 전적이 있었습니다. 릭스가 일부러 졌다는 구체적 폭로는 성대결 40년 후인 2013년에야 나왔습니다. 핼 쇼라는 사람이 플로리다 주 탬파의 골프 클럽의 프로샵에 있을 때 두 명의 마피아가 비밀스럽게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마거릿 코트에게는 이기고 빌리 진 킹에게 일부러 지면 릭스의 도박 빚 10만 달러를 대신 갚아준다는 계획을 미리 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릭스의 지인들은 이를 전면 부인했고 빌리 진 킹도 "말도 안 되는 억측이다. 바비 릭스는 저를 반드시 이기고 싶어 했다. 그의 눈에서 승부욕을 봤다. 그건 확실하다"라며 일축했습니다.

상금 남녀 성평등 이룬 테니스

미국 프로골프투어 PGA와 여자프로골프투어 LPGA는 규모와 상금 면에서 여전히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테니스에서만 거의 성평등이 이뤄졌습니다. 1973년 성대결에서 빌리 진 킹이 이긴 이후 US오픈이 가장 먼저 남녀 상금 차별을 없앴습니다. 메이저 대회인 영국 윔블던, 프랑스 오픈, US오픈 등 나머지 3개 대회도 남녀 단식 우승 상금이 똑같습니다. 호주 오픈(2001년), 프랑스 오픈(2006년), 윔블던(2007년) 순으로 모든 메이저 대회 상금이 동일하게 바뀐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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