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거리에서 한 노인이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이동하고 있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6.2도까지 치솟은 어제(10일) 오후 4시쯤 종로구 한 고물상은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실은 어르신들의 발길이 분주했습니다.
70대 남성 A 씨가 열댓 걸음을 걷고는 힘에 부친 듯 잠시 멈춰 서더니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A 씨 옆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아스팔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 탓에 정신이 없는 듯했습니다.
A 씨는 "폐지 줍는 일도 점점 경쟁이 치열해져서 쉴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가져간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나도 꼼짝하기 싫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돈이 없는 게 죄니 어쩌겠소."
A 씨는 1시간여 전 편의점에서 산 얼음 컵 음료를 리어카에서 꺼내더니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4시간 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모은 폐지를 팔고 손에 쥔 돈은 3천 원 남짓, A 씨는 "단골 고물상들도 곧 문을 닫아서 이렇게 한가롭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비가 오면 야외 노동이 불가능하고 폐지의 상품성도 떨어지는지라 장마가 끝났다는 소식이 잠시 반갑기도 했지만, 곧 찾아온 기록적 폭염은 이들의 건강, 나아가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권 모(77·여)씨는 굽은 허리를 펴며 "오늘 같은 날엔 조금만 리어카를 끌어도 머리가 핑 돈다"며 "정 못 참겠으면 잠깐 (에어컨 바람을 쐬러) 은행이라도 들르는데 '리어카를 여기에 세우면 어떡하느냐'는 핀잔을 듣고 쫓겨난다"고 했습니다.
2023년 8월 광주에서는 폐지를 줍고 귀가한 60대 여성이 다음날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진 바 있습니다.
이 여성의 사망 당시 체온은 41.5도였습니다.
갈수록 떨어지는 폐짓값은 폭염 속 이들을 더 지치게 만듭니다.
한국환경공단 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폐지(폐골판지) 가격은 2022년 6월 1㎏당 137원이었지만 3년 만에 35.3% 하락해 지난달 88.7원이었습니다.
A 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움직였는데 돈이 안 되는 것만 모아서 일한 값도 안 나온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키보다 높이 손을 올리며 "이만큼은 모아야 100㎏은 모으는 건데, 쉽지가 않다"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은 한국 노인 빈곤의 상징적 모습입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는 노인은 3천7명, 월 평균 소득은 89만 5천 원이었습니다.
47%가 80대 이상이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은 23%였습니다.
60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률(9.1%)의 2.5배나 됩니다.
경제적 생존을 위해 폭염 속 온열질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폭염에도 폐지를 줍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운 이들에게는 여름철만이라도 실내 일자리 연계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