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저희 작품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가 됐어요. 쉽지 않은 여정과 고난이 분명히 있었지만 충분히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런 작품이 잘 되어야 또 다른 작품들도 도전할 수 있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로 북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운 장성호 감독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한 과정을 복기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영화 '킹 오브 킹스'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성호 감독은 북미 개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약 두 달 만에 모국에서 영화를 선보이게 된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킹 오브 킹스'는 토종 애니메이션으로 북미에서 흥행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 4월에 개봉한 이 작품은 극장 매출 6000만 달러(약 815억 원)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꺾고 할리우드에서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가 됐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가 국내도 아닌 북미에서 대박을 터트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를 만든 장성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모팩스튜디오의 대표이자, 한국 VFX(시각 특수효과)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한 그는 오랫동안 영화 연출에 도전할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장성호 감독은 "2015년부터 기획을 시작해 개봉까지 총 10년이 걸렸다"면서 "처음부터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 우리 기술을 활용해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려면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장성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할리우드를 공략할 소재였다. 그는 "애니메이션은 오리지널 작품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천하의 디즈니도 오리지널 작품 중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픽사가 나오고 나서야 오리지널이 잘 됐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극장에서 겨우 900만 불(약 122억 원)을 벌었다"고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장성호 감독은 "관객들에게 친숙한 원작 베이스로 가야겠다고 해서 소재를 찾았다. 미국은 청교도가 세운 나라다. 이 소재로 시장에서 충분히 반응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이 잘 만들어지면 큰 상징성을 갖겠다고 생각했다"고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킹 오브 킹스'는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를 바탕으로 한다. 찰스 디킨스가 자신의 아들 월터에게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의 역사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장성호 감독은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보편적 공감대와 이야기가 가진 힘을 꼽았다. 그는 "예수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소재로 비쳐서 특정 종교인들의 반응만 있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일반적인 관객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우리 영화는 보편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그래서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흥행 비결을 꼽았다.
장성호 감독은 "예수 이야기가 되게 어렵기도 하다"며 "그분이 하신 말씀 대부분이 비유와 은유가 많다. 어린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내용은 설명하기 쉽지 않아서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거의 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탄생부터 부활까지 다 보고 나온 것 같이 느껴야 하니 한 가지 주제에 집중했고 그 답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디킨스가 어린 아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구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찰스 디킨스는 글을 읽지 못하는 대중을 위해 낭독회를 열심히 해서 인기를 얻은 작가다. 그 방식을 끌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자신의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얼마나 진심으로 할까, 아이 입장에서도 그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시간 여행하듯 가서 모험과 판타지 요소까지 끌고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북미에서도 그런 형식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느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킹 오브 킹스'의 성공은 국내 애니메이션의 기술력, 성경 기반의 스토리, 보편적인 메시지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진 덕분이지만 더빙 캐스팅의 힘도 컸다.
영어 더빙은 케네스 브래너, 우마 서먼, 마크 해밀, 피어스 브로스넌,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포레스트 휘태커, 벤 킹슬리, 오스카 아이작 등이 참여했고, 한국어 버전에서는 이병헌, 진선규, 이하늬, 양동근, 차인표, 권오중, 장광 등이 참여했다.
이에 대해 장성호 감독은 "이상할 정도로 캐스팅 운이 좋은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도 굉장히 놀라운 배우들이 캐스팅이 됐다. 현지 영화인들도 저보고 어떻게 그런 캐스팅을 했냐,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캐스팅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좋은 소재라 반응해 주셨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어 더빙 캐스팅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영화 반응이 좋아서 된 줄 아시는데 그전에 이미 캐스팅을 완성했다. 저희 영화에 관심을 가졌었던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의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캐스팅을 마쳤다. 배우 분들한테 제안을 하면 거의 곧바로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다"라고 덧붙였다.
북미를 시작으로 유럽 등 약 40여 개국에 개봉한 이 작품은 오는 7월 16일 국내 관객과 정식으로 만난다.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