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알면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요즘 내가 놓치고 있는 흐름이 있는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트렌드 언박싱'.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선보인 스마트폰은 인류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용어가 나타내듯, 인간은 손안의 기술을 통해 새로운 진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문 앞에 서 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AI)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텍스트와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하고, 예술 작품을 창작하며, 음악을 작곡하고, 개별 소비자 맞춤형 신용평가 모델을 설계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진단과 치료 결정을 보조하며, 제약 산업에서는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처럼 AI는 인간의 창의성과 전문성을 보완하거나 때로는 능가하기도 하며, 전례 없는 속도로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제조업, 의료, 금융, 문화, 교육, 보안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이 미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렵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가 AI 중심의 대전환을 겪고 있다. 기업과 국가 모두 AI 역량 부족이 경쟁 우위 상실로 직결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보이고 있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국가까지 'AI 퍼스트' 전략을 선언하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AI가 불러일으킨 변화는 이제 기존 질서를 송두리째 흔드는 허리케인이 되었다.
하지만 시장과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자들은 기술 중심의 'AI 퍼스트' 접근법으로 속도에만 집착한 나머지 방향성을 놓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혁신은 문제를 재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이것은 AI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기술이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핵심이다.
성공한 AI 기업들의 공통점 : 문제에 대한 재정의
성공적인 AI 비즈니스들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 기술적 우수성보다 기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AI 기반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주목받고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업스타트
(미국의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기존 신용 점수 체계를 대체하는 AI 기반 대안 모델을 개발함)는 "신용 없는 청년은 정말로 위험한 고객일까?"라는 질문으로 신용평가 문제를 재정의했다. 기존 FICO 점수는 과거 금융 이력에만 의존해 신용이력이 부족한 청년층을 높은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업스타트는 이 문제를 '데이터 부족'이 아니라 '데이터 다양성 부족'으로 재정의했다. 학력, 전공, 직업, 소득 궤적 등 비전통적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더 공정하고 정확한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했다. 문제 정의가 바뀌자 해법도 달라졌고, 금융 소외 계층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랜딩AI
(제조 분야에 특화된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으로, 중소기업도 AI를 손쉽게 도입할 수 있도록 적은 양의 데이터만으로 고성능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함) 창업자인 앤드류 응은 "AI 솔루션을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가 필수적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AI 접근성 문제를 재정의했다. 기존에는 AI 도입을 위해 수천 개의 고품질 데이터와 복잡한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앤드류 응은 이를 '기술적 진입장벽'에서 '적은 데이터로도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AI'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했다. 단 50개의 데이터 포인트만으로도 정교한 품질 검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현해 중소 제조업체도 AI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런웨이AI
(영상·이미지·음악 등 다양한 창작 콘텐츠를 위한 AI 기반 도구를 개발한 스타트업으로, 노코드 방식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비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는 창작자들이 느끼는 기술적 거리감을 '창작 도구의 민주화'라는 관점으로 재정의했다. 당시 AI는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로 여겨져 예술가나 독립 창작자가 직접 활용하기엔 너무 복잡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수엘라와 공동창업자들은 이 문제를 '기술의 복잡성'에서 '접근성의 문제'로 재정의했다. 복잡한 머신러닝 모델을 비전문가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노코드 환경으로 구현해 창작의 민주화를 실현했다.
루닛
(의료 인공지능 솔루션 기업으로, 영상 분석 기술을 통해 암 조기 진단 및 판독 지원에 특화된 시스템을 개발)은 "의료 영상 판독이 의사의 경험성에만 의존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의료 진단의 근본적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기존에는 숙련된 전문의도 초기 폐암을 20~30% 확률로 놓칠 수 있고, 응급 환자의 CT 판독에 평균 8시간 이상이 걸렸다. 서범석 창업자는 이 문제를 '의료진의 한계'에서 'AI로 보강 가능한 객관적 진단 시스템'으로 재정의했다. 미세한 병변까지 탐지하는 AI 영상 분석으로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판독 시간을 대폭 단축해, 의료진 부족 지역에서도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이들의 성공 요인은 'AI 기술력을 얼마나 높이는가'가 아니라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한 통찰력에 있었다.
오픈AI의 '지브리 순간', 진정한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순간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여전히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제한적 틀안에서 AI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혁신은 사회 전반에서, 일상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2024년 초까지만 해도 생성형 AI의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과연 AI의 일상화는 언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지배적이었다. 오픈AI조차 5억 4천만 달러 수익에 7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며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왔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 기능이었다. 사용자들이 프롬프트에 '지브리 스타일'을 입력하면 감성적이고 따뜻한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생성되었고, 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ChatGPT 유료 구독자가 450만 명 증가했고, 전체 가입자는 5억 명을 돌파했다. 기술적 정밀함이 아니라 정서적 울림이 사용자 반응을 결정지은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지브리 스타일'이라는 언어를 통해 AI 사용법을 익히게 되었고, 또 지브리 스튜디오의 따뜻한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욕구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통계와 기술 너머의 진실
모두가 AI와 기술을 외치면서 모든 것이 빅데이터와 통계, 기술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을 움직이는 근본적 힘은 데이터 너머에 있다. 바로 사람들의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끄는 감정, 가치관이다.
에어비앤비가 호텔 산업을 뒤흔든 것은 '저렴한 숙박' 때문이 아니었다.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고 타인과 진정한 연결을 원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토스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기존 금융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깊은 불신과 피로감을 정확히 읽어냈다. '간편함'이라는 철학은 단순한 UX 원칙이 아니라, 금융 영역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인간적 배려였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전환도 마찬가지다. 기술적 가능성보다 현대인들의 시간 인식 변화를 먼저 예견했다. 계획적 소비에서 충동적, 감정적 소비로 패턴이 바뀐 것을 포착한 것이다.
AI 시대의 진짜 승부수, 기술이 아닌 통찰력에서
모든 것이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AI 시대에도, 결국 그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인간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AI 기술 자체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려면 사람과 사회의 문제와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통찰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오늘날의 AI 스타트업들은 단순한 기술 기반 기업이 아니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문제를 바라보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성장 공식을 뒤집고, 새로운 혁신의 물결을 만들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