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잠 입고 '6·25 썰' 푼다…92세 전직 장관의 유튜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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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노신사가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70년 아래의 24학번 후배들과 함께 서울 성북구 고려대 교정을 거닙니다.

대학 동기들의 근황을 묻는 말에 "다 죽었다"는 답이 돌아오자 어쩔 줄 몰라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지난달 11일 유튜버 활동을 시작한 이용만(92) 전 재무부 장관이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입니다.

이 전 장관의 유튜브 채널 '이용만 해주세요'는 개설 20여 일 만에 구독자 1만 9천 명을 넘어서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언론과 만난 이 전 장관은 "퇴물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게 뭐가 있겠느냐"고 쑥스러워하면서도 "20대 손주와 대화한다고 생각하며 유튜브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영상 시청자의 3명 중 2명(68.5%)이 18∼34세 젊은 층입니다.

취업난에 어쭙잖은 위로 대신 "썩어빠진 정신상태 가지고는 안 된다. 성실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단언하는 이 전 장관의 모습에 오히려 힘을 얻는다는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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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독자는 "꼰대들의 '라떼 타령'과 다른 이유는 저분이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해온 분이기 때문"이라며 "불평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오신 분인 만큼 우리 세대에 쓴소리하셔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댓글을 적었습니다.

이 전 장관은 "배고프다는 감각을 모르는 후손들에게 할아버지가 옛날에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라며 "얼마 전 둘째 손자의 친구가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고 '너희 할아버지 아주 멋지다'고 말했다더라"고 웃어 보였습니다.

1933년생인 이 전 장관은 격동의 현대사 속 안보와 경제의 최전선에서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인물로 평가됩니다.

이 전 장관은 17세 때인 6·25 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뒤 학도병으로 참전해 어깨와 척추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도끼로 어깨를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총알이 조금만 비껴가도 죽었을 것"이라며 "지금도 척추에는 총탄이 박혀있고 왼쪽 어깨는 기우뚱하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최장수 재무부 이재국장(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무를 담당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습니다.

민주화 이후인 1991년 재무부 장관에 발탁돼 중소기업의 금융 지원에 힘썼습니다.

이 전 장관이 경제 관료로 승승장구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신군부 집권 직후에는 당시 공기업 사장이었던 전두환 씨 처삼촌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가 공무원 숙정(肅正) 명단에 올라 해직되기도 했습니다.

이 전 장관이 선보이는 유튜브 콘텐츠는 무궁무진합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만든 김치볶음밥 레시피부터 '멘토'였던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의 일화까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 전 장관은 인터뷰 내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지칠 줄 모르고 과거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처럼 술술 풀어냈습니다.

숫자와 날짜, 장소, 사람 이름에서도 전혀 막힘이 없었습니다.

이날도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사무실로 출근해 조간신문 서너 개를 훑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체육관에서 1시간 30분씩 러닝머신 등 운동을 즐기는데 의사조차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이 전 장관이 끝없는 도전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입니다.

"의욕과 성실함, 집념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아이 다섯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입학식과 졸업식 한번 못 가보고 바쁘게 일했던 것들이 지금의 발전된 나라로 나타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후손들이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더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놓고 가는 게 꿈입니다."

(사진=촬영 최원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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