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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 오빠들 그대론데?' 산들바람과 함께 돌아온 90년대 오빠들 [스프]

[취향저격] (글: 장은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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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오빠들이 돌아왔다, 5월의 산들바람과 함께. 이 세 명의 쓰리샷이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중년의 X세대 입장에서는 눈물 나게 반가운 일이다. 윤상, 김현철, 이현우.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뮤지션 세 명이 함께 음원을 내고 전국투어를 한다니. 오 마이 갓. 만사 제치고 이건 꼭 가야 해! 미디어에서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90년대생들이 온다>라는 책 제목처럼 직장에선 90년대생들과 MZ세대에게 치이고 집에서는 퉁퉁거리는 GenZ와 매일 북새통 속에서 사는 입장에서 이들의 귀환이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엄마도 니들처럼 좋아했던 오빠들 있었거든, 니들이 이 환상의 트로이카를 알기나 해?' 요즘 아이들에겐 <복면가왕>에 나와 앉아 있는 라이즈 앤톤의 아빠로, 심야 라디오 디스크 쇼의 DJ로, 드라마에서 실장님 담당이던 미식가 출신 배우로 알고 있는 이 오빠들을 어찌 설명해 주랴, 지금 아이돌급 인기는 저리 가라 할 만큼 당대 최고였던 김현철, 윤상, 이현우.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OTT도 없던 그 시절, 본격적 아이돌 1세대가 등장한 90년대 중후반 이전에 이미 우리의 아이돌이었고 우리의 슈퍼스타였던 에지 있고 스타일리시했던 이들을. 교회 오빠 김현철, 화실 오빠 윤상, 그리고 미국 오빠 이현우. 이사 갈 때마다 절대 버리지 않고 싸 들고 다녔던 보물 1호 레코드판 속에서 바삭거리는 비닐을 벗기고 턴테이블에 올려본다. 이게 얼마 만이야. 예능 프로에서의 모습 말고 90년대 진짜 내 '취향저격'이었던 이들의 노래를 들으러 출격 준비.

X세대가 함께 열광한 무대 : 그래, 이게 바로 90년대 '갬성'이라니까.

쇼케이스와 뮤지컬 공연이 자주 열리는 도심 한복판 1,4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그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5월의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길게 늘어선 중년의 팬들은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결혼식장 꽃길처럼 꾸며놓은 공연 배너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90년대 여학생들로 돌아간 얼굴이었다. 남자 팬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아내와 함께 오거나 남자 팬클럽 멤버들끼리 온 조합도 눈에 띄었다. 90년대 내가 유일하게 돈 주고 샀던 LP의 주인공이라거나, 늘어지게 들었던 테이프가 아직도 서랍 속에 있다거나, 중고 사이트에서 이들의 음반과 테이프를 어렵게 구했다는 X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태생적으로 덕후 DNA가 풍부한 필자 역시 90년대 20대가 된 뒤론 잠시 덕질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10대 소녀가 대학생이 되고 취직하고 IMF를 겪고 그리고 결혼하고...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이처럼 바삐 살며 잠시 접어두었던 덕질 유전자는 또 한 번의 인생 최대 위기였던 코로나를 만나며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전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트로트 프로그램의 한 가수를 응원하며 삶의 평안을 되찾았고 덕질이 삶의 활력소임을 깨달았건만 이 트로트 스타의 하늘을 찌르는 아이돌급 인기에 공연 티켓팅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피켓팅을 치르다 보니 몇 년간 단련된 손가락 실력으로 어느새 1열의 포도알(R석 좌석)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하하... 1열 센터라니. 그래, 오랜만에 레전드 무대를 보러 가는데 1열 정도는 돼야지! 지근거리에서 제대로 감상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설렜다.

콘서트의 시작은 'A Breeze of Memories', 이번 콘서트를 위해 김현철과 윤상이 함께 작곡했고 이현우와 김현철이 사이좋게 작사했다. 그런데 곡 초반에 전주가 흘러나오고 윤상의 보컬을 거쳐, 이현우가 관객석을 보고 감격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자신의 파트를 놓쳤고 라이브로 황급하게 부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 또한 라이브 콘서트의 묘미인지라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를 두고 김현철은 이 영상을 찍으신 분이 계시면 제발 널리 퍼뜨려 달라면서 두고두고 놀렸다. 세 사람의 합은 그만큼 오래된 세월이 있기에 가능했던 장면이었다. 그 덕에 관객들도 즐거워하며 이들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반가움과 신선함,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 Goodies)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이들의 공연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단순히 90년대 가요사를 추억하는 뮤지션들의 합동 무대가 아니라 현재도 이들의 음악 여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Breeze of Memory'의 가사처럼 추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작고도 큰 모든 것들이 하루하루 모여서 미래의 바람으로 우리에게 불어올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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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공식 유튜브 채널 'A Breeze of Memories'

이현우의 재발견, 윤상의 나이테, 윤활유 김현철, 최고의 세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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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순서에 나와 노래만 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김현철이 노래할 때 윤상이 건반을 연주하고 이현우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할 때는 또 연주와 코러스를 해주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함께 즐기는 모습, 그리고 가수도 뮤지션도, 아티스트로서 그들을 사랑했던 관객들과 함께 중년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 시간 속에서 팬도 가수도 그 모든 게 함께 어우러진 무대였다. 기타, 베이스, 건반과 드럼 모두 이들과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왔던 최고의 세션 팀과 뮤지션들이 함께하기에 귀가 즐겁다.

김현철은 라디오 DJ를 하면서 음악 작업을 하고 윤상 역시 후배 양성을 하면서 실험적인 음악을 해온 프로듀서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에 비해 이현우는 배우로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까닭에 가수로서의 진가를 발견하기 힘들었다면, 이번 기회에 파워풀하고 리듬감 폭발하는 이현우의 락킹한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레게풍의 'My Way'나 발라드 '비가 와요', 한대수 원곡의 '행복의 나라로' 무대는 맏형이지만 폭발적인 에너지와 무대 매너를 보여준 이현우의 재발견이었다.

이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무대. '이별의 그늘'을 불러주지 않아서 앙코르곡으로 아껴두었나 싶었는데 불이 꺼지고 음악이 흐른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윤상의 무대, 마치 구도자처럼 두 손을 꼭 모으고 경건하고도 진지하게 지금까지 걸어온 음악의 나이테를 보여주는 윤상의 무대는 그야말로 다시 못 볼 명장면이다. '달의 몰락'이나 '왜 그래'로 신나는 무대를 만들고 윤활유처럼 이 셋을 연결하는 김현철의 매끄러운 진행 속에서 마지막으로 김현철이 만들고 윤상이 피처링한 곡 '사랑하오'를 셋이 함께 부르며 마무리된 이들의 무대. 레전드는 역시 레전드로 남을 만하다. 프로듀서로서의 모습도 좋지만 이들이 노래하는 무대가 가끔은 이렇게 우리 세대를 찾아와 다독여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낡은 테이프, 레코드판에서 발견한 쪽지, 그 청춘의 기억 : 여전히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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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명의 인연의 접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이현우의 1집을 작업한 윤상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며 서로의 존재를 알아본 김현철과 윤상. 1980년대 말 한강 이남 천재 뮤지션이 김현철이라면 강북을 주름잡은 천재 뮤지션은 윤상이란 말이 있었듯 데뷔 후 이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며 유학도 가고 잠시 음악을 접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갔다.

2000년대 초반 윤종신을 포함한 노총각 뮤지션 4인방은 '사색동화'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결혼을 했고 약속이나 한 듯 셋 다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지금의 K-POP 아이돌처럼 뜨겁고 빠른 속도로 달구어지는 팬 문화는 아니지만, 1990년대 우리의 사랑은 서툴고 느렸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은 '아재'가 된 오빠들도 자신들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찬찬히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걸어왔기에 지금은 음악계 수많은 후배에게 '뮤지션의 뮤지션'이라는 헌사와 존경을 받는 대선배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잠시나마 1990년대 동네 레코드 가게에 LP를 사러 가던 방송반 열일곱 살 여고생으로 타임머신을 태워준 산들바람에게 감사한다. 63빌딩에서 열렸던 콘서트와 뮤직라이프, 하이틴 잡지, MBC 정동 사옥의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80년대가 저물며 한국의 대중문화가 활짝 꽃피던 90년대 혜성처럼 등장했던 분위기 있던 세 명의 오빠들의 보여준 세련된 음악의 클래스는 여전하다. 이들의 음악은 인스턴트와는 급이 다른 위엄이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뮤지션과 세월을 맞으며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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