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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참배는 거르면서…김정은이 3년 연속 참배한 이 사람 [스프]

[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지금 김정은에게 필요한 정치적 이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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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지난달 15일 김일성의 113회 생일을 맞아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김정은 총비서가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는 보도는 없었습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북한의 주요 기념일마다 최고지도자가 참배하는 곳이었지만 김정은이 참배를 거른 것입니다.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나 기일 같은 주요 기념일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거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집권 이후 주요 기념일 참배를 거르지 않던 김정은은 2020년대 들어 참배를 띄엄띄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해에도 7월 8일 김일성 사망일이나 12월 17일 김정일 사망일에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지만,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이나 4월 15일 김일성 생일 때에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지 않았습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의 주요 기념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상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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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주요 기념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현철해 묘소에는 3년 연속 참배

그런데, 김정은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참배 행사가 생겼습니다. 바로 2022년 5월 사망한 현철해의 기일 참배입니다.

현철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를 모두 보좌했던 인물로, 특히 김정은으로의 후계체제를 강력히 옹호했던 사람입니다. 북한이 현철해가 사망한 뒤 만든 기록영화(우리식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현철해는 김정일의 후계가 김정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절대불변의 신념'을 갖고 "무력기관에 장군님(김정일)께 올리는 모든 보고문건을 김정은 동지께 먼저 보고 올려 결론을 받는 사업체계"까지 세워 놓았다고 돼 있습니다.

김정은이 공개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 당시 김정은은 군 대장 칭호와 함께 새로 생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오르며 김정일의 후계자임을 공식화했는데, 당시 현철해는 김정은의 손을 꼭 잡고 몇 번이나 "이젠 됐습니다, 이젠 됐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이후 이때를 기억하면서 "남다른 그(현철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김정은 세습을 지지했던 노간부의 충성에 감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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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 김정은 옆에 현철해가 앉아 있다.

이런 관계로 김정은은 현철해가 사망했을 당시 파격적인 예우를 했습니다. 현철해가 입원한 병원에 몇 번이나 병문안을 가는가 하면, 현철해가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찾아가 현철해의 임종을 지켰고, 장례식 날에는 김정은이 직접 현철해의 운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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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현철해 장례식 때 직접 운구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철해 사망 1주기인 2023년 5월 북한은 현철해를 위한 대규모 추모대회를 열었고 노동신문 3개 면에 걸쳐 현철해 추모 소식을 전했습니다. 북한이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같은 최고지도자가 아닌 사람의 사망일에 대규모 추모식을 연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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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2023년, 2024년에 이어 올해도 현철해 기일을 맞아 현철해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최고지도자가 부하직원의 기일을 챙긴다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부하직원의 사망 이후 3년 연속 묘소를 참배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아버지인 김정일 사망일 참배는 거르기도 하면서 현철해 사망일 참배는 빼놓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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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해 3주기인 올해 현철해 묘소를 찾은 김정은

김정은 참배의 정치학

김정은이 주요 기념일에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거르기 시작한 것은 2020년 4월 제기됐던 건강 이상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김정은에게는 사망설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는데, 이러한 억측의 계기가 됐던 것은 김정은이 2020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때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김일성 생일 때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돼 있었고, 집권 이후 김정은이 김일성 생일 참배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김정은이 참배를 하지 않자 무엇인가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던 것입니다.

이 당시의 경험은 김정은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고지도자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경우 북한 체제의 불안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은데, 최고지도자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꼭 있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2020년 건강 이상설 이후에도 건강 문제에 대해 많이 고심하는 듯했던 김정은은 이후 의무적으로 해 왔던 주요 기념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한두 번씩 거르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던 행사를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주요 기념일 의무 공개 활동 부담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현철해에 대한 김정은의 참배는 김정은의 정치적 수요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현철해에 대한 참배를 3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은 자신으로의 권력세습을 강력히 지지해 준 데 대한 감사의 차원도 있겠지만, 현철해에 대한 초특급 예우를 통해 현철해처럼 충성을 다하면 죽어서까지 보답을 받는다는 신호를 간부들에게 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고모부(장성택)라 하더라도 반기를 들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지만,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죽어서까지 예우를 받는 모범을 통해 간부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려는 용인술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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