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뭐가 달라?…CBDC 완전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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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 4월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디지털화폐의 실거래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실용화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셈입니다.

이번 테스트에서 검증되는 CBDC는 가계, 기업 등 일반 경제주체가 쓸 수 있는 '범용'(retail) CBDC가 아니라 금융기관 간 거래에 사용되는 '기관용'(wholesale) CBDC입니다.

따라서 테스트에 참여한 일반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CBDC가 아니라 '예금 토큰'(tokenized deposit)입니다.

한은에 따르면 CBDC는 중앙은행이 제조·발행·유통하는 디지털화폐입니다.

기존 법정화폐와 동일한 화폐가치를 가지며, 단지 형태만 기존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한국은행법'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한은만 화폐의 발행권을 가지고 있으며 한은이 발행하는 한국은행권은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으로 통용됩니다.

한국은행권의 디지털 형태인 CBDC가 범용과 기관용으로 나뉘는 것은 이중통화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상품과 서비스 거래에서는 현금, 즉 법화로 대금을 지불하면 거래가 종결됩니다.

이러한 대가 지불 행위를 '지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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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에선 신용카드, 직불카드, 모바일뱅킹, 인터넷뱅킹 등 현금이 아닌 다른 지급수단이 많이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모바일뱅킹으로 계좌이체를 할 경우 구매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몇 번 누르면 판매자의 계좌로 돈이 송금되지만, 그 배후에선 여러 금융기관이 관여한 복잡한 처리 절차가 진행됩니다.

우선 구매자가 자신이 거래하는 A은행에 '지급지시'를 요청하고 A은행은 청산소인 금융결제원에 거래 정보를 전송합니다.

금융결제원은 이를 다시 판매자가 거래하는 B은행에 전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A은행의 구매자 계좌에서 돈이 빠지고 B은행의 판매자 계좌에선 돈이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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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결제 과정

그러나 실제로 은행들 간에 돈이 오간 것은 아닙니다.

금융결제원은 그날 하루 A·B은행과 그밖에 금융기관 간 발생한 모든 거래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주고받을 차액을 산출하고 이 정보를 한은에 보냅니다.

이때 금융결제원이 차액을 확정하는 과정을 '청산'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차액이 지급되는 것은 거래일 다음 날 A·B은행 등이 한은에 개설한 당좌예금계좌를 통한 이체를 통해서입니다.

이렇게 청산 과정에서 확정된 차액을 지급해 거래를 완결시키는 것을 좁은 의미의 '결제'라고 부릅니다.

결국 계좌이체는 겉보기엔 예금이 오가는 단순한 거래 같지만, 실제론 다음날 은행들이 한은에 예치한 당좌예금으로 최종적으로 정산해야 비로소 완료되는 것입니다.

이때 한은의 당좌예금계좌에 있는 돈의 주된 재원은 지급준비금입니다.

지급준비금은 은행이 예금자의 지급 요구에 응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돈인데, 금융기관 간 지급결제에 쓰인 것입니다.

CBDC가 범용과 기관용으로 나뉘는 것은 CBDC가 통화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즉, 범용 CBDC는 예금과 같은 민간 화폐처럼 일상적인 지급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돈이고, 기관용 CBDC는 한은의 당좌예금계좌에 있는 지급준비금 역할을 하는 돈입니다.

한은이 이번에 실거래 테스트를 하는 대상은 기관용 CBDC입니다.

일반인이 직접 쓸 수 없는 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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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일반 참가자들에겐 예금 토큰이 제공됩니다.

즉, 이번 테스트에서 일상 거래에 이 예금 토큰이 사용되고, 이 거래의 최종 결제는 기관용 CBDC로 이뤄집니다.

이에 따라 테스트에 참여한 은행들은 발행한 예금 토큰 잔액의 7% 이상을 기관용 CBDC로 보유해야 합니다.

이 7%는 현행 지급준비율 중 요구불예금에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한은 설명에 따르면 예금 토큰이란 은행 예금을 분산원장 상에서 디지털 형태의 자산으로 토큰화한 것입니다.

'토큰화'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형태의 증표로 만든다는 것으로, 예금 토큰은 쉽게 말하면 특정 기능을 탑재할 수 있는 디지털 예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이용자는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에서 전자지갑을 개설한 뒤 본인 계좌를 이 전자지갑과 연계하면 예금 잔액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현재 예금 토큰을 사용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매장은 한정돼 있지만, 예금 토큰의 강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앞서 말한 프로그래밍 기능입니다.

한은은 이번에 예금 토큰에 바우처(특정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금액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발급되는 증서) 기능을 넣어 사용하는 것을 테스트 중입니다.

기존의 바우처 사업에선 통상적으로 별도의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고 바우처의 지급결제 절차도 복잡했다면, 예금 토큰을 활용할 경우 예금 토큰에 바우처 기능을 탑재해 결제만 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처리됩니다.

범용 CBDC는 디지털 형태의 법화가 이 예금 토큰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단, 범용 CBDC는 그 자체가 법화이기에 범용 CBDC로 지급하면 해당 거래가 종결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범용 CBDC가 활성화되면 은행의 예금이 감소하고 은행의 신용공급(대출) 여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범용 CBDC가 은행 예금을 대체함으로써 민간 은행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기관용 CBDC는 지급준비금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민간 은행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 기존의 이중 통화체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보고서 '다양성의 포용, 함께 발전하기'(2024년)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86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전체의 94%가 CBDC의 연구·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은의 경우 2022년까지 범용 CBDC를 연구·개발하다가 이후 기관용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BIS의 설문에서도 기관용 CBDC로 무게 중심 이동이 드러났습니다.

선진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기관용 CBDC에 대한 실험이 급증했고,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들도 기관용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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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범용 CBDC의 경우 설문에 참여한 중앙은행의 3분의 2가 개인별 보유 한도를 두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예를 들어 CBDC 형태의 유로인 디지털 유로는 보유 한도로 3천 유로, 영국의 디지털 파운드는 1만∼2만 파운드 수준의 한도가 제안된 바 있습니다.

이는 범용 CBDC가 민간은행의 예금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로 풀이됩니다.

중앙은행들은 기관용 CBDC에 대해선 상호운용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자국 내 지급결제 시스템뿐 아니라 다른 나라 지급결제 시스템과의 연계까지도 염두에 둔 접근입니다.

또한 상당수 중앙은행이 프로그래밍 기능을 갖춘 지급결제가 가능한 방향으로 기관용 CBDC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CBDC의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에는 스테이블코인의 부상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 그대로 '스테이블'(stable·안정적)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와 일대일로 가치를 연동시키는 디지털 자산으로 테더(USDT), 서클(USDC) 등이 대표적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준비 자산 중 대부분이 미국 국채로 구성돼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확대될수록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도 늘게 되는 구조입니다.

즉 국채 발행을 통해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으로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을 지킬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가상화폐의 약점인 변동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에 따라 '자산 기반'과 '알고리즘 기반'으로 나뉩니다.

자산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실물 자산과의 일대일 교환을 통해 가격을 유지합니다.

1USDT 또는 1USDC를 발행사에 주면 1달러로 바꿔줍니다.

발행사는 이런 환전 요구에 응하기 위해 미 달러화나 국채 등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합니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별도의 담보 없이 사전에 설정된 규칙에 따라 시장 상황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함으로써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폭락 사태를 불러 일으켰던 가상화폐 테라가 대표적입니다.

테라는 자매 가상화폐 루나와의 교환과 소각이라는 방식을 통해 1달러 가치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현재는 자산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주류며, 지난해 5월 말 기준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1천610억 달러(약 229조 원)였습니다.

가상화폐는 스테이블코인과 다릅니다.

가상화폐는 크립토(Crypto) 또는 코인(Coi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장 격인 비트코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탄생했습니다.

대형 은행과 같은 중앙화된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 문제가 제기되면서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를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 비트코인입니다.

금융시스템에서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장부를 '원장'이라 불리며, 은행 등 특정 기관이 이를 독점적으로 관리합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가 이 원장의 사본을 보유합니다.

이를 가리켜 '분산 원장'이라고 합니다.

이 원장이 블록체인인데, 거래 내역이 담긴 블록이 시간 순서대로 사슬처럼 연결돼 있어 '블록체인'이라고 불립니다.

블록체인과 분산 원장으로 무장한 가상화폐가 중앙화된 금융시스템의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변동성이 큰 까닭에 아직 실질적인 '화폐'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에서 '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라는 말을 쓰지만 현행법에선 '가상자산'으로 취급됩니다.

국제적으로는 BIS 등에서 '암호자산'(cryptoasset)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각국 중앙은행에 위기감을 던져줬던 사건은 페이스북(현 메타)의 '리브라'(현 디엠) 발행이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2023년)과 '우리나라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안에 관한 연구'(2024년) 논문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2019년 6월 '리브라'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 주요 7개국(G7)은 관련 대응을 위한 워킹그룹 결성을 전격 결정했습니다.

이어 G7 워킹그룹은 그해 10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영향 조사'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G7 보고서를 토대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에 적절하게 대처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G20 정상회의는 국제금융감독기구 협의체인 금융안정위원회(FSB)에 규제 체계 수립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FSB는 이듬해인 2020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G20 정상회의는 정상선언문을 통해 "적합한 설계를 거치고 적용 가능한 표준을 준수해 모든 관련 법률, 규제와 감독 요건이 적절히 갖추어질 때까지 소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이 개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주요 국가들이 '리브라 죽이기'로 비칠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리브라의 잠재적 파급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전 세계 사용자 29억 명을 보유한 페이스북이 주도하고, 비자와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 유력 지급결제 서비스 사업자가 참여한 탓에 리브라는 단기간 내에 글로벌 결제, 송금 수단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입니다.

메타는 이후 리브라의 명칭을 '디엠'으로 바꾸고 이미지 쇄신에 나섰으나 결국 2022년 1월 디엠의 매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리브라의 충격은 각국 중앙은행이 CBDC 개발에 나서며 디지털화폐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사진=금융결제원의 '지급결제 A to Z'에서 발췌, 한국은행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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