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관계의 여성을 살해하고 숨진 30대가 경찰의 분리 조치로 지인 집에 머물고 있던 피해자를 납치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앞서 가정폭력 신고로 가해자와 분리되길 원했던 피해자는 경찰이 지정한 임시숙소가 아닌 지인의 집으로 대피했는데, 피해자의 거처를 알아낸 가해자가 직접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전날 사망한 이 사건 피의자 A 씨가 납치살인을 벌인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어제 오전 7시쯤 앞서 가정폭력 신고로 인해 분리 조치돼 있던 사실혼 관계의 30대 여성 B 씨가 3월부터 머문 화성 동탄신도시의 오피스텔로 찾아갔습니다.
A 씨는 오피스텔 공동현관문 옆에 적힌 비밀번호를 눌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 대기하면서 B 씨가 외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어 오전 10시 19분께 때마침 외출하기 위해 집을 나선 B 씨를 제압한 뒤 자신이 타고 온 렌터카에 강제로 태웠습니다.
A 씨는 B 씨의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두건을 씌웠으며, 양손을 묶어 꼼짝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차를 몰고 6㎞가량 떨어진 화성 동탄신도시 내에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 단지로 이동, B 씨를 내리게 했습니다.
A 씨는 오전 10시 41분께 B 씨를 끌어내려 집으로 가던 중 B 씨가 달아나자 곧바로 뒤쫓아 가 아파트 단지 내 주민 통행로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A 씨는 범행 후 아파트 자택으로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흉기에 찔린 B 씨를 본 주민 신고를 받은 소방 당국은 현장에 출동해 B 씨를 병원으로 옮기는 한편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습니다.
B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습니다.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A 씨가 B 씨를 살해한 후 자택으로 달아난 것을 확인하고, 집 현관문을 개방해 오전 11시 35분께 사망한 A 씨를 발견했습니다.
A 씨는 유서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남기는 말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후속 수사를 통해 B 씨가 A 씨를 여러 차례에 걸쳐 신고한 이력 및 A 씨가 분리 조치된 B 씨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정황을 파악했습니다.
조사 결과 이 사건 피해자 B 씨는 총 세 차례에 걸쳐 A 씨를 신고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첫 번째 신고는 지난해 9월로 B 씨는 "남자친구(A 씨)가 유리컵을 던졌다"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연인 사이에 발생한 교제폭력 사건으로 보고, A 씨와 B 씨를 분리한 뒤 B 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B 씨는 사건 이튿날 B 씨가 A 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피해자 안전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B 씨의 요청을 수용하되, 특수폭행 사건인 점을 고려해 A 씨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두 번째 신고는 지난 2월로, 단순 말다툼 사건인 데다 폭행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종결했습니다.
B 씨 역시 안전 조치 등을 거부했습니다.
문제는 세 번째 신고였습니다.
B 씨는 지난 3월 3일 "A 씨에게 폭행당하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앞선 사건보다 사안이 중하고, B 씨가 피해를 호소함에 따라 100m 이내 접근 금지 및 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 제한 등의 '긴급임시조치'를 했습니다.
스마트워치도 지급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 보호 임시숙소'에 입주할 것을 권유했으나, B 씨는 "지인의 집에 머물겠다. A 씨가 그곳 주소를 모르고 있다"며 지인의 오피스텔을 거처로 삼았습니다.
이후 두 달 이상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A 씨가 B 씨를 찾아가 납치살인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B 씨에 대한 피해자 안전 조치를 담당한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임시숙소를 적극 권유했는데, 그는 '대피할 주거지가 있다'며 거부했다"며 "3월 신고 이후 매주 한 차례 피해자에 대한 모니터링했고, 가장 최근인 지난 8일에도 안전을 확인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사건 당시 B 씨는 경찰로부터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찬 상태가 아니라 가방 속에 넣어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스마트워치가 정상 작동하는 점에 미뤄 B씨가 미처 스마트워치를 통한 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수사 결과대로라면 피해자가 임시숙소 입주를 거부한 채 지인의 오피스텔로 대피해 결국 주소가 노출됐고, 사건 당시에는 가방 안에 있던 스마트워치를 누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복 범죄로 인한 가정폭력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온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피해자 안전 조치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피해자의 주거지를 알아낸 정황 등을 계속해서 수사해 나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A 씨의 휴대전화와 PC 등을 포렌식해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수사할 방침입니다.
다만 A 씨의 사망으로 인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예정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