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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영화 '해피엔드'에서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스프]

[주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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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영화 '해피엔드'(Happyend)의 초기 제목은 '지진'(Earthquake)이었다. 이 영화에서 지진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재앙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미세한 떨림과 균열, 일본 사회의 갈등과 붕괴라는 함의도 포함한다. 그러나 이 제목은 너무 직접적이고 투박하다. 영화를 연출한 소라 네오 감독은 오랜 고민 끝에 더 문학적이며 상징적인 '해피엔드'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유타, 코우, 아타, 톰, 밍은 고등학교 음악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게릴라 디제잉 클럽에 다녀온 날, 다섯 친구는 흥에 취해 새벽까지 학교 동아리방에서 자신들만의 음악에 빠져든다. 유타는 학교를 나서면서 교장이 애지중지하는 노란색 스포츠카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한다. 절친 코우를 꼬셔 차를 세로로 세운 후 도망친다. 교장은 이를 테러라 규정하며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되고, 급기야 학교에 AI 시스템을 도입해 학생들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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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는 학생을 통제하려는 학교와 자유를 갈구하는 학생들의 대립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감독의 시선은 학교 안에만 머물지 않고 동시기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도 주목한다. 극우화된 일본 사회에는 차별과 혐오, 갈라치기가 만연하다. 총리 키토는 "불법입국한 외국인과 반일 세력에 의한 흉악범죄가 대지진 때마다 증가한다"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지진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까지 발동한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인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근미래로 설정돼 있다. '해피엔드'는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면서도 CG 사용을 최소화했다. 도쿄의 빌딩 숲과 붉은빛의 네온사인 그리고 전광판에 등장하는 경고 시그널만으로도 근미래적인 분위기를 낸다. 푸른색과 붉은색을 테마로 한 촬영과 테크노와 일렉트로닉, 엠비언트 음악도 감각적인 무드를 형성한다. 몇몇 효과적인 장치와 설정만으로도 설득 가능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구축하며 이야기에 몰입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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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가 제시하는 근미래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실제로 과거 영화들이 명명했던 그 시기가 도래했거나 이미 지나갔음에도 현재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건 과거에 비해 퇴보하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이 삶의 편리함을 가져왔을지언정 사회의 진화와 성숙까지 가져다주진 않았다. 사회를 이끄는 리더와 구성원 모두 선하거나 현명한 것은 아니란 것을 과거와 현재를 통해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지진이라는 환경적 재난과 AI 감시라는 사회적 통제를 피부로 체감하는 유타와 코우는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유토는 쉬이 바뀌지 않는 맞서지 말고 이 안에서 우리만의 행복을 찾자는 주의며, 코우는 사회에 반항하고 투쟁하며 불합리를 극복해보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처지가 다르다. 재일한국인(자이니치) 4세인 코우는 학교 안과 밖에서 자신이 이방인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다. 유타와 함께 사고를 쳐도 코우는 경찰에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 사회와 집단에 만연한 차별과 적대감으로 인해 언제든 테두리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신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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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는 유토는 비겁한가. 영화는 자기만의 방식과 용기로 세상에 목소리를 유토를 보여주며 관객의 속단과 오판을 거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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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미 망해버린(것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성장통을 겪은 유타와 코우는 더 이상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란히 걸어갈 수 없다. 나만의 자아와 가치관이 확립된 그들은 행복의 기준도 달라져 버렸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엔딩 시퀀스는 따스함과 동시에 쓸쓸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청춘은 스스로의 길을 찾아나가는 시간이라는 니체의 말을 되새겨보면 유타와 코우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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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는 일본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사회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백한 청춘영화다. 학교라는 소우주, 친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성장영화다. 이는 유토와 코우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있었던 시절이다.

영화를 아우르는 주요한 정서는 우정이다. 사랑을 알기 전 맞이한 가장 뜨겁고 순수했던 감정이다. '해피엔드'는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순간들을 아름다운 영상과 감각적인 음악으로 기린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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