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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쌀 '싹쓸이', 더 보내달라"…일본 쌀값이 폭등한 이유 [스프]

[온더스팟] 문준모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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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저편엔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깊이 있고 생생한 글로벌 지식뉴스를 전해드립니다.

1년 새 2배 넘게 오른 일본 쌀값이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급기야 3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산 쌀까지 수입하게 됐습니다. 도쿄 문준모 특파원 연결해 일본 쌀값 고공행진 실태와 향후 전망 알아봅니다.

일본에서 한국쌀 완판, 추가 수출도?

Q. 자국 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일본이 우리나라 쌀을 수입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현지에서 잘 팔리고 있나요?

A.

2011년과 2012년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 쌀이 구호용으로 일본에 건너간 적은 있는데 일반 소비자 판매용으로 일본에 본격 수출된 것은 35년 만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직접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한국 슈퍼마켓에 가봤더니 전남 해남군에서 생산된 우리 쌀이 매대에 진열돼 있었습니다. '땅끝 햇살'이라는 브랜드, 1kg당 9,700원 꼴이었습니다.

외국쌀이 일본에 수입되면 '종량세'가 붙어서 한국에서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는 건데요. 그래도 바로 옆에 진열된 일본 쌀 고시히카리가 1kg당 10,340원 정도라서 상대적으로 우리 쌀이 조금 저렴하긴 했습니다. 이 쌀은 농협에서 2톤 정도를 시범 수출한 건데 열흘 만에 소진돼서 농협 일본 온라인 쇼핑몰에는 품절 문구가 뜰 정도였습니다.

히로 | 일본 소비자

쌀값이 올라서 파스타 등을 대신 먹기도 해요. (한국 쌀이 싸다면) 사 먹어 보고 싶어요.

이런 반응에 힘입어서 우리 쌀 추가 물량 10톤이 곧 풀리고 추가 10톤의 수출 시기도 조율 중입니다. 총 22톤이 수출되는 건데 농협 측에서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김상길 | NH농협무역 전무

저희가 (일본에) 회사 세운 지가 35년쯤 됐는데요. 그동안은 이런 일이 벌어질 일이 없었죠. 그 가격대에도 잘 판매는 됐습니다. 사실은.

Q. 그렇군요. 그런데 가격 경쟁력으로 보면 우리나라 쌀이 그렇게 많이 싸 보이지는 않는데 완판까지 되는 이유는 뭔가요?

A.

한마디로 일본 쌀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죠. 도쿄 중심가 슈퍼에는 쌀이 없는 경우는 그렇게 없는데 도쿄 일부나 지방의 경우에는 가끔씩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쌀값도 오르는 건데요.

일본 소비자

3,300엔에서 3,500엔까지 하더라고요. 슈퍼에서도 '1인당 1~2개까지만'이라고 적혀 있어요.

일본 소비자

말은 안 했지만 (쌀이) 비싸서 부모님께 얻기도 해요.

일본 정부가 쌀값 잡겠다면서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서 비축미 21만 톤을 풀었고, 지난주에 또 3차 입찰을 해서 비축미 10만 톤이 또 이달 중에 일반 슈퍼마켓에 유통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쌀값은 아직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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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하는 일본 농림수산성에서는 전국 슈퍼마켓 1천여 곳을 조사해서 일본 쌀 평균 가격을 매주 발표하는데요. 지난 월요일 발표에 따르면 5kg당 4,200엔, 우리 돈으로 4만 2천 원으로 16주 연속 오른 걸로 조사됐습니다. 1년 전 같은 시기엔 2,088엔이었는데요. 1년 새 2배 넘게 오른 셈입니다.

비축미도 풀었는데.. 투기 세력이 가로챘나?

Q. 비축미를 그렇게까지 풀었는데 쌀값이 왜 안 잡히는 거죠?

A.

우선 비축미 방출 규모부터 보면, 요즘 일본의 1년 쌀 소비량은 700만 톤 정도 됩니다. 한 달에 60만 톤 정도가 필요한 건데 환산하면 지난달에 풀린 21만 톤은 10일 남짓이면 다 소비되는 정도여서 가격 추세를 바꿔 놓을 정도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풀린 비축미 전부가 소비자에게 가 닿질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3월 말 기준으로 슈퍼마켓 등 소매점에 도달한 비축미는 426톤입니다. 첫 번째로 풀린 비축미가 14.2만 톤인데 그것의 0.3%밖에 안 됩니다. 이걸 두고 처음에는 투기 세력이 쌀을 가로채서 가격이 더 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추측도 나왔는데요.

호소카와 | 농장 대표

지금까지 거래가 없던 업자에게 연락이 옵니다. 중국 쪽입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물증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쌀 부족에 대한 불안감 탓에 생산자, 도매업자, 소매업자, 소비자까지 각 유통 단계별로 재고를 쌓아두고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에토 | 일본 농림상

쌀은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데 시장에 나오지 않는 것은 어딘가에 쌓여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정부가 유통 단계별 재고량을 조사해 보니까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생산자 단계에서 9만 톤, 도매업자 3만 톤, 소매업자와 외식업계에서는 7만 톤, 소비자도 4만 톤 정도를 쟁여놓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만 합쳐도 23만 톤인데 3월에 풀린 비축미 21만 톤보다 무려 2만 톤이나 더 많습니다. 이게 1월 말 기준이니까 3월에 풀린 비축미까지 해서 시장에 풀리지 않은 재고가 더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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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렇게 단계별로 재고를 쌓아놓고 있는 이유가 있나요?

A.

쌀 부족이 하루이틀 만에 끝날 게 아닐 거라는 심리적인 요인이 큰 것 같습니다. 마트에 쌀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인데, 복합적인 이유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2023년 여름 폭염으로 작황이 좋지 못한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기에 난카이 대지진 경보로 쌀 사재기가 늘었다, 전례 없는 엔저 현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쌀 수요가 급증했다, 이런 여러 추정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2023년 작황의 영향은 실제로 있는 것 같지만 쌀 사재기나 관광객 증가가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크게 증가한 건 맞습니다. 2021년 100만 명도 안 됐는데 2024년 약 3,700만 명 정도로 최다를 기록했죠.

하지만 2010년대 그러니까 코로나 전을 되돌아보면 2019년에도 약 3,190만 명까지 관광객 수가 크게 늘었거든요. 하지만 당시 쌀값 급등은 없었고 지금의 절반 수준을 유지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수요 급증으로 쌀값이 올랐다기보다는 공급이 부족했고 앞으로도 부족할 거라는 심리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쌀값 폭등 근본적 이유는? "한국 부동산 떠올려 보세요"

Q. 일본에서 쌀이 부족하게 된 게 "한 해 작황이 안 좋아서다"라는 설명이 썩 납득은 가지 않는데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A.

일본 언론에서는 감반 정책을 구조적인 요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감반 정책은 쌀값 붕괴를 막기 위해서 1970년대 도입된 제도인데요. 일종의 쌀 감산 정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부가 매년 생산량 목표를 정해서 지자체별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조절해 왔거든요. 쌀을 경작하다가 다른 작물로 전작을 하면 보조금을 주기도 하고요. 1960년대 빵 소비가 늘어나고 식생활이 바뀌면서 쌀 소비량이 주니까 국가 주도의 감반 정책이 도입됐던 겁니다.

그런데 1993년 기록적인 서늘한 여름 날씨로 80년 만에 흉작을 기록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후 쌀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감반 정책은 2018년 명목상으로는 폐지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감반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정부가 수급 전망을 발표하면 그에 따라서 각 지역에서 알아서 생산력을 맞추고, 다른 작물로 전작을 하면 주는 보조금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 결과로 쌀 농가 규모는 크게 감소했습니다. 쌀을 경작하는 농가는 2005년 약 140만 호에서 2020년 약 70만 호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같은 기간 쌀 생산량은 906만 톤에서 776만 톤으로 130만 톤이 줄었습니다. 이렇게 생산량을 너무 줄이다 보니까 폭염 등으로 인한 흉작 같은 각종 변수에 대응할 수 없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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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러면 감반 정책을 중단하고 쌀 생산량을 늘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A.

최근 쌀 생산량을 늘려야 된다는 주장들이 언론을 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입장이 좀 미묘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쌀값을 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들이 있는데 쉽사리 손대지 못하고 있거든요. "말로는 쌀값 내리겠다고 하는데 속내는 쌀값 떨어지지 않길 바라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단적으로 이번에 방출되는 비축미에는 정부가 1년 이내에 같은 양을 다시 매입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당장은 공급이 증가해도 정부가 금세 다시 같은 양을 사들일 거라는 걸 알면 가격 하락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업자들과 개인들이 사서 쟁여놓는 것이고요.

명목상으로는 농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인데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정책 떠올려 보시면 쉽게 이해되실 텐데요. 어떤 정치인이든 나오면 집값 잡겠다고 하지만 유권자들을 고려하면 집값을 확 떨어뜨리는 정책을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Q. 그러니까 이 쌀값 하나에도 여러 가지 정치적인 계산들이 깔려 있어서 당장 생산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이런 얘기군요.

A.

표 떨어질까 봐 두려워서라도. 아직까지 농가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그걸 신경 써서 쌀값을 확 떨어뜨리는 대책을 쓰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밥 대신 우동 먹는데.. '먹튀' 사기까지 기승

Q.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게 쌀밥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 높은 쌀값에 대한 대응 어떻게 하고 있나요?

A.

기존 식비를 유지하려고 쌀 대신 다른 음식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직장인들은 절약형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을 해결합니다.

요코하마 시민

가능하다면 밥 대신 빵이나 우동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일본 직장인

어제 남은 양배추, 오늘 아침 반찬 소시지예요. 아마 100엔(1천 원) 안 들었을 거예요.

업계와 식당도 바뀌고 있습니다. 편의점 체인 로손에서는 쌀에 상대적으로 값싼 찰보리를 3 대 1의 비율로 섞어서 가격을 낮춘 신제품을 매대에 깔아놨고요. 도시락 업체에서도 쌀밥 대신 면을 넣은 도시락 상품을 새로 출시하는 등 대응 방안을 짜내고 있습니다.

Q. 이런 때를 악용해서 사기 범죄까지 기승이라면서요?

A.

조금이라도 저렴한 쌀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을 노려서 돈만 챙겨서 이른바 먹튀를 하는 겁니다. 요새 쌀 5kg에 4천 엔 정도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2~3천 엔 하는 상품을 올려놓은 다음에 소비자가 입금을 하면 매진됐다는 메시지를 남긴 다음에 연락을 끊어버리는 사례도 있어요. 실제로 존재하는 인터넷 쇼핑몰과 유사한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들어서 쌀을 저렴하게 파는 이벤트인 것처럼 속여서 돈만 받고 달아나기도 했습니다. 높은 쌀값에 사기 범죄까지 이래저래 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양상입니다.

'진짜 쇼핑몰' 운영 피해자

'이 쇼핑몰은 사기다'라는 이미지가 붙는 게 가장 큰 피해죠.

Q. 쌀값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있다면 언제쯤 안정이 될까요?

A.

아직은 쌀값이 내릴 것 같은 긍정적인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농림부 장관에 해당하는 일본 에토 농림상은 비축미를 풀어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데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면서 사과까지 했는데요.

일본 정부는 비축미를 오는 7월까지 매달 풀기로 하는 등 유통량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비축미가 소비자에게 지금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도달하게끔 하는 게 관건이 될 것 같고요. 무엇보다 정부가 쌀값이 안정될 거란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 올 햅쌀 출시 전까지는 단기간 내에 쌀값이 안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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