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살인으로 세계 제일 되겠다"…황당한 꿈꿨던 온보현, 충격적인 살인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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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8일 방송된

'죽음의 드라이브-그 남자의 살인일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광규, 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빈, 배우 이미도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세계 제일의 살인마를 꿈꾼 남자

오늘 다룰 이 사건에 대해 듣기 위해 '꼬꼬무' 제작진이 꽤 많은 형사님들께 연락을 드렸는데,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하셨어. 거절의 이유는, '그 사건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하지만 제작진이 오랜 기간 설득한 끝에, 몇 분의 형사님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형사들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 이야기. 지난 30년 간 형사들도 어디서도 한 적 없는 이야기야. 대체 어떤 사건이길래 그런 걸까?

모든 건, 바로 이 수첩 한 권에서 시작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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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 23일 금요일 오후 4시 2분.

어쩌면 이 글로 인하여 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범행일지를 작성한다.

기다려라. 꼭 나의 목적을 달성하여 이 부분 세계 제일이 되리라.

살해목표 인원 38명. 목표인원 초과될 수 있음. 50명으로 변경될 수 있음.

-누군가의 범행일지 中

이 범행일지의 주인, 어떤 사람 같아? 오늘의 이야기는, 세계 제일의 살인마를 꿈꾼 한 남자. 그리고 30년간 그를 잊지 못한 형사들의 이야기야.

▲ 이상한 자수

때는 1994년 9월, 서울 서초경찰서 유치장이야. 건장한 남자들 열댓 명이 좁은 유치장을 가득 채웠어. 근데 다 같은 범죄자라기엔 분위기가 좀 요상해.

"그래서 다이너마이트는 어디서 구했어?"

"아 진짜. 어제 다 말씀드렸잖아요!"

질문을 하는 남자들은 서초서 강력4반 형사들. 그리고 대답을 하는 남자들은, 얼마 전 검거된 범죄조직이야. 형사들이 유치장 안에서 범죄자들을 심문하고 있는 거야. 강력4반이 검거한 이 조직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사무실로 쉴 새 없이 들이닥쳐서 완전 아수라장이야. 그래서 형사들이 기자들을 피해 유치장으로 들어간 거야. 대체 어떤 조직이었길래, 이 난리가 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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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길 포기하려고 인육 먹었다."

"이렇게 빨리 잡혀서. 돈 많고 사람 무시하는 것들 못 잡아서 한이 맺힐 뿐이야."

'꼬꼬무'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지존파'야. 살인공장을 짓고, 인육을 먹는 등 인면수심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조직이지. 이런 놈들을 상대하느라 강력4반 형사들은 벌써 일주일째 유치장에서 합숙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 그런데 그때, 경찰서 앞으로 택시 한 대가 서더니, 사무실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어.

"여기가 지존파 검거한 경찰서 맞나요? 자수하러 왔습니다. 지존파랑 같은 유치장을 쓰고 싶은데요."

다짜고짜 자수를 할 테니 지존파와 같은 유치장에 넣어달래. 이 남자, 왜 이러는 걸까. 당시 형사님의 이야길 직접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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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그 지존파 사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있을 시점에, 여기가 지존파 잡은 곳이 맞냐, 자기가 지존파보다 좀 더 흉악하고 더 낫다, 그걸 비교하기 위해서 왔다, 그래서 걔들과 같이 유치장이 되든 뭐 구치소에 됐든 같이 넣어줘라, 그렇게 요구를 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기수,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이 남자가 주장한 혐의는 다름 아닌, 연쇄살인. 심지어 공범도 없이 혼자 범행을 저질렀대. 그러니 6명이서 범행을 저지른 지존파보다 본인이 더 대단한 범죄자라는 거야. 심지어, 정식 조사를 받기 전에 기자회견부터 하겠대. 한 형사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지. 근데 경찰서를 맴돌던 기자들이 이 말을 듣고 순식간에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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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38세)대로 죽이고 싶었습니다. 38명 죽이려고 했다가 내가 50명까지도 초과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죠."

"정신병력? 없습니다."

수십 명을 살해하려 했다는 그의 주장에 기자들도 황당해했어. 한 형사도 처음엔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어.

▲ 살인마의 범행일지

그런데 남자에게서 한 수첩을 건네받은 후, 한 형사의 표정이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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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9월 11일 저녁 8시 30분경.

독산동 입구에서 여자 1명.

12일 새벽 5시 30분경 산속으로 데리고 들어감.

테이프, 끈 이용하여 온몸 묶음.

94년 9월 14일 오후 9시경.

가락동에서 여자 1명.

허벅지, 배, 목 등 약 5차례 찔러 죽임.

-살인마의 범행일지 中

수첩엔 22페이지에 걸쳐서 그가 주장한 살인의 구체적인 과정이 적혀 있었어. 이 일지의 내용들, 정말 다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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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들을 때는 사실상 뭐 믿기지도 않고, 더군다나 지존파 사건을 하고 있는 판에 그런 황당한 얘기를 하면서 자수를 하니까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그러면 어떠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증거 자료나 그 상황을 얘기하다 보니까. '아 이건 범행인 것이 맞구나'…"

-한기수,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일지엔 피해자들의 이름과 나이도 기록돼 있었어. 한 형사는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 거짓말로 꾸며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남자의 일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기 시작해. 그랬더니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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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9월 12일 저녁 8시 30분경.

양재동 사거리 부근에서 여자 1명.

죽음 확인 못 함.

-살인마의 범행일지 中

다른 피해자들은 범행 이후 처리 과정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이 여성만 '죽음 확인 못 함'이라고 적혀있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 형사는 곧바로 남자에게 이 내용을 물었어.

"아, 산에 묶어두고 왔는데. 아마 죽었을걸요?"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홍 씨. 수첩에는 여성의 이름과 나이까지 적혀 있었어. 서초서 형사들은 서둘러 이 여성의 신원을 조회했어. 그리고 9월 13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실종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어. 대체 이 여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실종신고가 접수됐던 그날로 돌아가볼게.

▲ '죽음 확인 못 함' 홍 씨를 찾아라

때는 남자가 서초경찰서를 찾기 보름 전, 서울 용산경찰서야. 한 중년 부부가 "딸이 사라졌다"고 신고를 했어. 20대 중반의 딸이 어제저녁 외출한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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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바로 사라진 예비신부 홍 씨야. 홍 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어.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가출을 했을 리도 없고, 갑자기 연락두절이 될 이유가 없다는 거야. 그녀의 마지막 행적은 서초동에 있는 문화센터였어. 9월 12일 밤 8시 30분경 수업이 끝나고 센터를 나선 뒤로 행방이 묘연해. 용산서 형사들은 곧바로 홍 씨의 행적을 추적했어. 그리고 실종 다음 날, 그녀의 카드에서 현금 41만원이 인출된 내역을 확인해. 홍 씨의 카드에서 돈을 뽑은 사람의 얼굴이, 은행 CCTV에 찍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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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누군지 알겠어? 아까 자수하겠다며 서초경찰서를 찾아온 그 남자야. 근데 이상한 점 없어? 다른 사람의 카드에서 돈을 뽑으면서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긴커녕, 아주 여유로운 표정이야.

형사들은 곧바로 홍 씨의 가족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줬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래.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 강력사건일 확률이 커. 그런데도 용의자는, 자신의 얼굴을 보란 듯이 노출했어. 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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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다 노출하고 이렇게 현금을 인출했을까 상당한 의문점을 가지게 됐던 것이죠. 범인도 그것까지 다 본인이 (의도적으로) 노출을 해가면서 범행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 얼굴이 나와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대담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한 마디로 '잡을 테면 잡아봐라'야. 조 형사도 형사생활 하면서 이렇게 대범한, 아니 오만한 놈은 처음이었대. 근데 지금 용의자를 추적할 단서는 달랑 이 사진 한 장뿐이야. 용산서 형사들은 사진을 들고 은행과 문화센터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 그야말로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어. 형사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야.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을 납치하는데 어떻게 목격자 한 명이 없을 수가 있을까?

"일단 강력반에 투입되는 형사들 모두 그 많은 시간 동안 범인의 소재를 찾지 못하니 피를 마르는 그런 심정이었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야속한 시간만 흐르고 홍 씨가 사라진 지 열흘이 지났어. 그러다 은행 인근 다방에서, 사진 속 남자를 안다는 주민을 만났어. 전 직장동료인데, 급한 사정이 있다며 본인 집에서 며칠 머물다 갔다는 거야.

자, 드디어 용의자의 신원이 나왔어. 이름은 온보현. 나이는 38세. 범죄기록을 확인해 보니, 무려 전과 13범이야. 근데 온보현의 범죄기록을 확인하던 후배 형사가 깜짝 놀라. 온보현이 이미 지명수배된 수배자라는 거야.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홍 씨를 납치한 걸로 보여. 온보현은 어떤 혐의로 지명 수배가 된 걸까?

▲ '전과 13범' 온보현이 또 지명수배된 이유

홍 씨가 실종되기 열흘 전쯤, 서울 잠실에서 사라진 여성이 있었어. 노래방을 운영하는 40대 김 씨야. 근데 이 사건, 관할서가 전북 김제경찰서야. 여성이 사라진 건 서울인데, 왜 김제서에서 수사를 했을까? 당시 김제서 형사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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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에서 이렇게 납치를 당해서 김제로 와서 그 피해를 당하고 거기서 탈출해서 신고한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기억으로는 거의 반나체, 반라에 가까웠고 온몸에 상처가 있는 상태였었고. 참 육안으로 볼 때도 굉장히 황급히 어디에서 탈출한 그런 상태였습니다."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노래방 주인 김 씨는 서울에서 납치된 뒤, 전북 김제까지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어. 김 씨는 서울에서 김제까지 무려 3시간이 넘도록 '택시'에 갇혀 있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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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탈출한 현장에서 버려진 택시가 발견됐어. 김 씨가 노래방 문을 닫고 이 택시에 탄 건 새벽 1시경이었어. 그런데 택시가 목적지를 그냥 지나치는 거야. 당황한 김 씨가 차문을 열려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열리지가 않아. 그 순간, 택시기사가 조수석에 앉은 김 씨에게 흉기를 들이대더니 순식간에 김 씨를 결박했어. 그리고는 이걸 내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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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소리를 지르거나 구조요청을 못 하게 하려고, 놈은 이 사탕을 김 씨의 입에 가득 채워 넣었어. 테이프로 입을 막으면 밖에서 누군가 수상하게 볼 수도 있으니까, 머리를 쓴 거지. 이후 택시는 한참을 달려 김제의 한 야산에 도착해. 놈에게 이끌려 험한 산길을 오르던 김 씨가 뭔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어. 현장엔 1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덩이가 있었는데 눈에 띄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위장까지 해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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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보니 구덩이가 딱 파여 있는 거예요. 사람이 행방불명되는 거 알지 않느냐고, 그게 다 암매장시켜서 없어지는 거래요. 그러니까 완전하게 범죄를 하기 위해서는 암매장을 시킨대요. 근데 영원히 여기서 내가 잠들 자리라고 그러더라고요 여기서."

-노래방 주인 김 씨

구덩이에 도착한 뒤 놈은 김 씨를 성폭행했어. 그리고 빨랫줄과 테이프로 김 씨를 결박하고, 머리에 비닐봉지까지 씌워 구덩이로 밀어 넣었어. 이렇게 모든 게 끝이구나 싶던 그 순간,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주변이 조용해졌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납치범이 자리를 비운 거야. 김 씨는 죽을힘을 다 해 발버둥 쳤고, 그러다 빨랫줄을 풀었어. 그렇게 겨우 결박을 푼 김 씨가 무작정 산길을 내달려 신고를 했던 거야.

사건을 접수한 김제서 형사들은 현장에서 발견된 택시부터 조사했어. 근데 이것도 뭔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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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이상한지 알겠어? 숫자 7을 잘 봐봐. 위조된 번호판이야. 원래 숫자 '1'을 '7'로 바꾼 거야. 택시 회사에 확인해보니, 도난 택시야. 새벽 시간에 차고지에 있던 택시를 훔친 거라 목격자도 없대. 김 형사는 지난 5년간 이 택시회사에서 근무했던 기사들의 이력서를 한 장도 빠짐없이 수거했어. 뭔가 짚이는 게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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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훔칠 때는 거의 범죄 수법을 보면, 거기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절도 행각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회사에 몸 담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 가지고 그 이력서를 다 보니까, 사진이 다 첨부가 돼 있기 때문에. 확인을 시켜보니까, 피해자가 그중에 한 사람을 지목을 했어요. 인상착의가 비슷하다고."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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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지목한 사람이 바로 온보현. 온보현은 1년 전 이 택시회사에서 근무했던 전직 택시 기사야. 근데 근무 태도가 불성실해서 세 달 만에 쫓겨났대. 이후 범행을 결심한 온보현이 이곳에서 택시를 훔쳐 김 씨를 납치했던 거야.

자, 용의자 특정도 됐으니 이제 검거만 하면 돼. 김제서 형사들은 바로 온보현의 집을 급습했어. 하지만 집안 어디에도 온보현이 없어. 이미 도주한 거야. 형사들은 온보현 주변 인물부터 고향, 전 직장까지 전부 뒤졌어.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어. 그래서 지명수배를 했던 거야.

▲ 범인을 잡을 단서

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볼게.

9월 1일. 서울에서 노래방 주인 김 씨가 택시로 납치됐어. 김 씨를 전북 김제로 끌고 간 용의자는 온보현이야. 그리고 약 열흘이 지난 9월 12일. 서울 서초에서 예비신부 홍 씨가 사라졌어. 그런데 그녀의 카드로 돈을 뽑은 사람 역시 온보현이야. 아까 예비신부 홍 씨가 강남 한복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했던 거 기억하지? 혹시 이번에도 온보현이 택시를 이용해 홍 씨를 납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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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피해자 홍 씨도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서는 택시를 탔을 거다, 같은 동일 사건으로 저희들은 추정을 했던 것이죠. 그 사건 연관성으로 봐서 (피해자 김 씨가) 살아 있기 때문에. 홍 씨도 살아 있지 않겠냐… 그런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범인을 찾는데 최선을 노력을 다 했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용산서 조 형사는 김제서 사건을 확인하고 오히려 안도했어. 어찌 됐든 노래방 주인 김 씨가 생존했잖아. 홍 씨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최후의 카드를 꺼내. 바로 공개수배. 하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아. 자칫 공개수배를 했다가 궁지에 몰린 온보현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최악의 경우 홍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이 점 때문에 홍 씨의 가족들이 공개수배를 반대했어.

그런데 조 형사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던 그 무렵, 또 다른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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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의 고속도로 인근 배수로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거야. 경찰 조사 결과, 날카로운 흉기로 복부를 여러 차례 찔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어. 곧이어 시신의 신원도 확인이 됐어.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여성, 배 씨였어. 배 씨는 9월 14일 서울 가락동 인근에서 귀가하던 중 실종됐어. 그리고 다음 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북 김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거야. 김천경찰서에선 용의자 특정조차 못 하고 있었어. 늦은 밤, 서울에서 실종된 여성이 수백 km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됐어. 앞서 발생한 노래방 주인 김 씨 사건과 유사한 지점이 있지? 이번에도 범행에 택시가 사용된 거라면, 서울에서 김천까지의 이동 과정이 설명이 돼.

그리고 또 한 가지. 아까 온보현이 은행 CCTV에 버젓이 얼굴을 노출했던 거 기억나? 배 씨의 시신은 공개된 장소에 보란 듯이 유기됐어. 한 마디로 잡을 테면 잡아 봐라. 배 씨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자기과시형의 범죄자로 보여. 그렇다면 이 사건도, 온보현의 짓일까?

만약 배 씨를 죽인 범인이 온보현이 맞다면, 이거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커. 온보현이 노래방 주인 김 씨를 납치했을 때 이런 얘길 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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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다가 암매장시킬 구덩이 다섯 군데 파놨대요. (제가) 처음이 아니라 엄청 많이 했대요 자기 말로. 엄청 많이 해서 완전범죄를 위해서 구덩이를 파서 많이 했대요. 그게 완전범죄라고."

-노래방 주인 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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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수법 같으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발성으로 할 수 있는, 제2의 제3의 범행이 또 저지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그렇게 판단했죠."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만약 온보현이 배 씨를 죽인 거라면, 예비신부 홍 씨는 물론 또 다른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몰라. 그렇게 94년 9월 27일, 온보현에 대한 공개수사가 시작됐어.

▲ 공개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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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회사 여사원이 택시 운전사에게 납치된 뒤 보름이 지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 폐쇄회로TV에 잡힌 20대 여사원 납치 용의자 온보현 씨입니다."

"경찰은 오늘 온보현 씨를 전국에 공개 수배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서울 전역에서는 택시를 대상으로 불심검문이 이뤄졌어. 이때 동원된 사람 중엔, 우리가 잘 아는 사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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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발생하던 당시에 저는 경찰서에서 CSI 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택시를 이용한 범죄이기 때문에 가스 충전소에서 잠복을 한다든지 이런 사건 수사에 동원이 됐습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우리가 잘 아는 '프로파일러 권일용' 이전, '형사 권일용'이던 시절에 이 수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대. 그럼 뭐가 나왔을까? 수사는 답보 상태야. 온보현은 도대체 어디 있고, 무슨 생각인 걸까? 모든 비밀은 그 수첩 안에 담겨있어. 지금부터 권일용 프로파일러와 함께, 30년 전 풀지 못한 그날의 수수께끼를 풀어볼게.

노래방 주인 김 씨가 김제 구덩이에서 탈출한 9월 1일 새벽. 온보현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거 기억나? 사실 그가 자리를 비운 건 산 아래 세워둔 택시에서 김 씨의 금품과 흉기를 챙기기 위해서였어. 이후 구덩이에 돌아간 온보현은 김 씨가 탈출한 걸 확인해. 그 후 온보현은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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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품 검사 후 산 속 현장으로 가 보니 도망가고 없음.

차를 그곳에 두고 숨어 지켜보니 김제 경찰서에서 현장조사.

나 자신 스스로 자수하기 전까지는 절대 잡지 못 한다.

김제 경찰서 바보 녀석들.

-온보현의 범행일지 中

온보현은 일부러 현장에 택시를 버렸어. 그리고 경찰이 택시를 조사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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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온보현이의 범죄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동성입니다. 순식간에 자기가 이동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이 자신감과 오만함 때문에 그 증거들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나를 추적하는 데 쉽지는 않을 거야'라고 하는 자기 확신에 빠지는 거죠. 그래서 그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을 해요."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가짜택시를 이용하면, 범행과 동시에 도주가 가능하고, 여러 지역에 걸쳐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경찰의 추적도 쉽지 않아. 게다가 택시는 대중교통이야. 강제로 태워 납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증거나 목격자를 남기지 않아. 그렇게 온보현은 자신의 범행도구로 '가짜택시'를 선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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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보현은 김제 현장에 택시를 버린 후 곧바로 다음 범행을 준비해.

3~4일 놀면서 다음 범행 생각하다 지나가는 택시 세워 운전 연수 좀 시켜달라 하여

미사리에서 5시간 연수받고, 기회가 와 차량 몰고 도주함.

-온보현의 범행일지 中

온보현이 두 번째 택시를 훔친 거야. 이후 아예 이 택시에서 생활했어. 그의 범행주기도 '단 하루'로 급격히 짧아져. 일지에 보면 이때부터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해.

▲ 피해자 홍 씨의 행방

9월 12일 밤 8시 30분. 그의 가짜택시가 향한 곳은 서울 서초동이야. 거리의 사람들이 그의 택시를 향해 손짓해. 온보현은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을 살폈어. 그러다, 홀로 택시를 잡는 젊은 여성을 발견했어. 온보현은 단지 제압하기 쉽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어. 피해자들 입장에선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타깃이 된 거야. 이날도 또 한 명의 젊은 여성이 그의 가짜택시에 탑승해. 이 여성 누군지 알겠어? 사라진 예비신부 홍 씨. 홍 씨를 납치한 온보현은 그녀의 신용카드를 빼앗고 경기도의 한 야산까지 끌고 가. 그리고는 노래방 주인 김 씨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손과 발을 묶고 머리에 비닐봉지까지 씌웠어. 그런데 잠시 후, 온보현이 뜻밖의 얘길 꺼내.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알았지? 한 명 더 데려올 테니까."

정확한 의도를 알 순 없지만 온보현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어. 온보현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 홍 씨에게도 기회가 온 거야. 당장 이 지옥을 벗어나야 해. 홍 씨는 탈출에 성공했을까?

자, 다시 홍 씨 납치사건을 수사 중인 용산경찰서야. 공개수사가 시작되고 수사 인력도 40여 명으로 늘었어. 대규모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던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여기 서초서인데요. 온보현이 자수를 했습니다."

아까 맨 처음, 온보현이 지존파를 검거한 서초경찰서를 찾아갔던 거 기억나지? 그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태연히 범행을 이어오던 온보현이 갑자기 자수를 한 거야. 용산서 형사들 심정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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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그렇게 애타게 찾는 그런 속에서, 그나마 다행히 범인이 자수를 했다니까. 용산에서 발생된 홍 씨를 찾는데 모든 것이 수사의 목표가 됐었죠. 실낱 같이 혹시라도 살아 있지 않겠나, 가족 입장이나 형사 입장이나 그런 마음이었었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온보현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금은 당장 홍 씨를 찾는 게 우선이야. 용산서 형사들은 온보현의 신병을 인계받아 곧장 홍 씨를 두고 왔다는 사건 현장으로 향했어. 가는 동안에도 온보현은 서초서에서 했던 것과 같은 주장을 했어.

"확인을 못 했는데, 죽었을 거라니까요."

하지만 조형사의 생각은 달랐어. '제발 살아만 있어라' 간절한 마음으로 산길을 올랐어. 잠시 후, 수많은 기자와 경찰 그리고 온보현이 사건현장에 도착해. 그리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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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새벽 4시. 홍 씨가 시신으로 발견됐어. 그녀가 실종된 지 15일 만이야. 실종 당시 입었던 검푸른 바지와 하늘색 남방을 입은 홍 씨는 머리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 발견됐어. 사인은 뇌실질손상. 둔기 등으로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거야.

사건 당일, 온보현이 자리를 비우자 홍 씨는 결박을 풀기 위해 몸부림쳤어. 그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근데, 몸부림을 칠수록 숨쉬기가 쉽지 않아. 얼굴을 덮은 비닐봉지 때문에 호흡도 힘들어. 그래도 홍 씨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힘을 냈어. 그러자 아주 조금씩 손목을 묶은 끈이 느슨해져. 그렇게 겨우 한쪽 손을 뺀 그 순간,

"아, 그렇게 한 거구나?"

바로 온보현이었어. 그가 산을 내려간 게 아니었어. 사실 이전 김제 사건에서 온보현은 꽤나 분노했어. 완전범죄를 자신했는데, 노래방 주인 김 씨가 탈출해 버렸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납치한 홍 씨에게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운다며 거짓말을 한 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어떻게 결박을 푸는지 관찰한 거야. 이날 홍 씨가 결박을 푸는 걸 확인한 온보현은 삽으로 홍 씨를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그대로 방치한 채 현장을 떠났어.

마지막까지 딸의 무사귀환을 빌었던 예비신부 홍 씨의 가족들.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끊은 채 깊은 슬픔에 잠겼어. 홍 씨가 문화센터 앞에서 납치됐던 거 기억나? 문화센터에서 연극수업을 듣고 나오던 길이었대. 회사원이었던 그녀가 연극수업을 듣기 시작한 건, 자원봉사로 만난 아이들 때문이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극공연을 직접 보여주려고. 홍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고 그녀의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어.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딸아이 생각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 애가 쓰던 방의 물건들도 모두 치우고 하루빨리 잊으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악몽이 더욱 뚜렷하게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택시 한 번 잘못 타 목숨을 잃는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피해자 홍 씨의 부모

홍 씨가 살아있기만 바랐던 조 형사는 현장을 보고 망연자실했어. 그리고 또 한 번, 깜짝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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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장을 봤을 때는 진짜 섬뜩했거든요. 어떤 의식을 치른 것처럼 양손을 한 나무에 묶고 다리도 나무에 묶어놓고.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섬뜩한 현장이었는데, 온보현은 거기에 대한 죄의식이라든지 전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속죄하는 마음에라도 머리 숙여 용서를 비는 게 좋지 않겠냐 (물었지만) 전혀 그런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온보현은 피해자에게 사죄하기는커녕, 기자들에게 이걸 물었대.

"오늘 신문에 제가 탑입니까? 지존파가 탑입니까?"

도저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놈이야.

▲ 살인마를 꿈꾼 남자의 민낯

용산서 형사들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그의 범행일지를 토대로 질문을 시작했어. 가장 먼저 그의 범행 동기를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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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실 우리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제가 그냥 죽으면 우리 아버지 계속 시골에 갑니다. 내가 범죄를 해서라도 우리 아버지를 두 번 다시 시골에 못 가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이게 무슨 말일까. 온보현은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에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아버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거야. 이게 말이 돼? 설사 그런 불우한 환경에 있었다고 해도 절대 살인을 정당화할 순 없어. 게다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아버지를 증오한다면서 정작 그가 살해한 사람들 모두 본인의 어머니처럼 힘없는 여성들이었어.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와 똑같은, 아니 더 비열한 범죄를 저지른 거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온보현은 불과 보름 만에 총 6건의 범행을 저질렀어. 두 건의 살인을 포함해 납치, 강도강간, 사체유기 등 혐의도 아주 다양해. 근데 그의 수첩을 보면, 피해자를 대하는 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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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피해자 옆에는 "집 앞까지 태워다 줌"이라 써있고, 김천에서 발견된 6차 피해자 옆에는 "즉시 살해"라고 적혀있어. 두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 온보현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어.

"(5차 피해자는) 죽일 생각이었는데 아버지도 동생도 없다고 하고 얘기를 해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어 풀어주었다."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배 씨를 가락사거리 부근에서 태웠다. 내려주기 직전에 위협을 해서 성폭행을 하려고 했는데 핸들을 꺾고 반항했다. 그래서 차 속에서 칼로 5차례 찔러 살해했다."

온보현과 같은 연쇄살인마들은 피해자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대. 본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5차 피해자를 보며 현실에선 느끼지 못한 우월감을 느낀 거야. 반대로 본인을 무시하거나 반항하는 경우, 지나치게 흥분하고 과도한 폭력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열등감이지. 6차 피해자 배 씨를 잔혹하게 죽인 이유도 이 때문이야.

그런데 폭주하 듯 범행을 저지르던 온보현이 반항하는 배 씨를 죽인 이후, 갑자기 범행을 멈춰. 왜 그랬을까?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그날, 온보현은 배 씨의 저항으로 인해 손을 다쳤어.

"피해자가 소리를 질렀던 것이죠. 그러니까 순간 본인이 당황했던 거죠. 이렇게 갑자기 피해자가 저돌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죠."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그리고는 폭주하던 범행을 멈췄어. 범행 중 처음으로 다쳐서, 범행 의욕을 잃은 것으로 보였대. 그렇다면 온보현이 자수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온보현의 대답이 정말 상상을 초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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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뉴스 (공개수배) 보고, 제가 자살해서 죽으려고 중부고속도로 가다가 보도 상에 (피해자가) 3명으로 나오더라고요. 3명으로 나와서 제가. 제 모든 범행을 제가 처음부터 공개하기 위해서…"

본인은 총 6건의 범행을 저질렀는데, 공개수배에 단 3건의 혐의만 언급됐다는 거야. 게다가 세상은 여전히 지존파 사건으로 떠들썩해. 그걸 보면서 온보현이 자수를 결심했다는 거야. 온보현은 수첩을 꺼내 그간의 범행 과정을 적기 시작했어. 그게 바로 이 범행일지야. 사건이 있던 날마다 그때그때 기록을 한 게 아니라, 완전히 급조된 범행일지야. 그는 자신의 범행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범행일지를 쓰고, 자수를 했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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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렵고 힘들지만, 오히려 표현은 훨씬 더 강한 것처럼 하는 반대 행동을 나타내는 이런 방어 기제를 통해서, 자기를 스스로 위로하는 전형적인 그런 반동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자수를 하게 된 과정도 보면, 이미 자신이 노출돼 가지고 형사들이 계속 자기를 추적하는데 거의 가까이 다가왔다라고 생각하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나는 통제당하는 것보다는 내가 나를 통제할 거야라고 하는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사실은 두려우니까. 자기가 더 강한 척. 마치 악마인 척, 자신을 꾸민 거야. 세계 제일의 살인마를 꿈꿨던 남자의 초라한 민낯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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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겁이 없고 대범하고 이런 자가 아니고. 소심하고 사실 사회에 대한 어떤 불만들 감정 표현들을 제대로 적절히 못 하는 자거든요."

-권일용, 프로파일러, 전직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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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사건이 막 그 언론에 엄청나게 보도되면서 나오니까. 그 순간에 자기가 과시를 하려는 걸로 생각이 된 거지. 본인 자체가 세거나 뭐 기가 세거나 그렇게 저는 느끼지는 않고."

- 한기수, 당시 서초경찰서 형사

▲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온보현이 검거되고 1994년의 가짜택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어. 그런데 두 달 후인, 94년 11월.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져.

서울 서초경찰서에 또다시 비상이 걸려. 20대 중반의 회사원 유 씨가 가짜 택시기사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는 신고야. 심지어 유사한 수법으로 보이는 택시 강도강간 사건이 3건이나 더 발견됐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온보현의 범행수법을 카피한 모방범죄들이 전국에서 쏟아지기 시작했어.

"수도권 일대에서 택시 강도짓을 하면서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해온 일당 두 명이 오늘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훔친 택시에 여자들만 골라 태워 상습적으로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을 해온 혐의로…"

-당시 뉴스 보도 中

훔친 택시의 번호판을 위조한 방법까지 그대로 따라 했어. 온보현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방범죄까지 이렇게 판을 치니, 마음 놓고 택시를 탈 수 있었을까? 오죽하면 당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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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택시 10계명

1. 뒷좌석에 앉아라

2. 창문을 열어놓으라

3. 배웅객을 활용해라

4. 연로한 운전자를 선호하라

5. 가능한 둘 이상 택시를 타라…

당시 사람들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져? 온보현과 몇몇 파렴치한 범죄자들 때문에 무고한 시민과 선량한 택시기사들의 피해가 컸어. 온보현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졌어. 그리고 얼마 후 온보현의 1차 공판이 열렸어. 그런데 법정에서 누군가 이렇게 외쳤어.

"이런 흉악범은 사형에 처해야 또 다른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마땅히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 바로 온보현 본인이었어. 변호인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변론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마치 검사라도 된냥 스스로 사형을 구형했어. 온보현의 이 말, 정말 유가족을 위한 것이었을까?

온보현에겐 어떤 처벌이 내려졌을까? 당시 1심 판결문이야.

"피고인의 범행수법은 너무나도 지능적이며 잔혹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그 동기에도 아무런 참작할 만한 점이 없고 비록 피고인이 범행 후 자수하였고 개전의 정이 엿보이기는 하나 피고인을 법정 최고형에 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 할 것이다. 위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1심뿐 아니라 2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고 형은 그대로 확정이 됐어. 이후 1995년 11월 2일, 사형이 집행됐어. 온보현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지존파와 같은 날 생을 마감했어.

온보현 사건 이후, 경찰 시스템에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겼어. '광역수사대'라고 들어봤지? 줄여서 '광수대'. 관할구역의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와 달리, 행정구역을 망라해 큰 사건을 전담하는 곳이지. 이 광역수사대가 생긴 것도 바로 온보현과 지존파가 검거된 94년 11월이었어.

오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많은 형사님들이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했던 거 기억나? 사실 온보현이 자수했을 당시 경찰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셌다고 해. 공조수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긴 거라고. 이 때문에 징계를 받은 분도 있어. 오늘 만난 두 형사님에게도 온보현 사건은 부끄럽고 또 아픈 사건이야. 그럼에도 두 분이 카메라 앞에 선 이유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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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아쉬웠던 것이, 더 손 빠르게 더 빠른 시간에 전국적으로 같은 내용으로 공조가 됐더라면. 피해자 한 분이라도 더 줄일 수 있었고 일찍 검거했을 텐데. 공조가 그 당시에 지금처럼 빨리 안 이루어져 형사로서 참 책임감도 느껴지고 어깨가 좀 무거웠습니다."

-김성수, 당시 김제경찰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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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94년도에는 모든 수사 시스템이 많이 좀 부족했습니다. 과학수사라든지 공조수사라든지. 가족분들한테 지금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조형근,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

두 분이 오랜 고민 끝에 30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 건, 아마 저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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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보여줄 게 있어. 온보현이 교도소에서 쓴 편지야. 편지를 받는 사람은 용산경찰서 조형근 형사야. 그는 유일하게 조 형사 하고만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해. 왜 조 형사는 온보현과 편지를 주고받았을까?

조 형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보현을 설득했어. 떠나기 전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라고. 온보현이 그 약속을 지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끝까지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고자 했던 형사님들의 진심만은 전해지길 바랄 뿐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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