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북한이 러시아로 파병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지난달 28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등 매체 보도를 통해서입니다. 이날 노동신문은 1면 기사로, 조선중앙TV는 오전 9시 방송이 시작하자마자 북한군의 파병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서면입장문을 보내, 쿠르스크 해방 작전이 승리적으로 종결됐으며 작전에 참전한 북한군 부대들이 높은 전투정신과 군사적 기질을 과시했음을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군 파병을 인정한 데 이어 북한도 파병 공식화에 나선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에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파병 감사 성명을 노동신문에 싣는 등 러시아 파병을 본격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 파병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파병 사실을 밝히지 않아 왔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우크라이나 군에게 포로로 잡힌 북한군까지 생겨났지만, 러시아 파병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북한이 왜 갑자기 파병을 인정하고 나온 것일까요?
북한이 주장하는 파병 논리 보니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북한이 주장하는 파병의 논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난달 28일 북한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북한이 파병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해 점령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이 상황이 북러 간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동반자관계 조약' 제4조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북러 조약 제4조는 '자동군사개입 조항'으로 "쌍방 중 어느 일방이 …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도록 돼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공격해 러시아가 무력 침공을 당한 만큼 '자동군사개입 조항'의 발동 여건을 갖췄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인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참전을 결정하고 러시아 측에 통보했습니다. 북한은 참전 과정을 설명하면서 "로씨야 련방(러시아 연방) 경내에서 진행된 공화국 무력의 군사활동은 유엔헌장을 비롯한 국제법과 조로(북러)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반 조항과 정신에 전적으로 부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침략 당사자 러시아 도와준 것은 정당화될 수 없어
물론, 북한의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먼저, 유엔헌장은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우크라이나가 공격해 무력 침공을 당한 러시아를 도와줬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번 전쟁은 엄연히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따라서, 침략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를 도와준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또, 북한과의 일체의 군사협력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의해 금지돼 있습니다. 북한을 도와주든 북한으로부터 도움을 받든 어떤 종류의 군사협력도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북한이 어떤 이유를 들이대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국제법 위반입니다.
북한은 왜 파병을 인정했을까
북한이 왜 파병을 인정했을까 하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북한의 파병 논리로 보면 북한군의 파병 목적은 달성됐습니다. 우크라이나에게 공격당한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 지역을 탈환했기 때문입니다. 무력 침공을 당한 러시아를 도와줬다는 북한의 명분으로 보면,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들어가 추가적인 전투를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종전이 되지 않은 만큼 북한군이 잔류하면서 다른 임무를 부여받게 될지는 모르나, 주요한 전투 임무는 끝난 것으로 보이고 파병은 이제 마무리 수순으로 보입니다.
파병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면 상황을 한번 정리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 국내적으로 전사자 가족들이 생겨났고 부상병들도 곧 귀국할 것이기 때문에 파병 사실을 끝까지 감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파병 소문이 이미 퍼질 만큼 퍼져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평양에 '전투위훈비'를 건립하고 참전용사의 가족들을 특별히 우대하고 보살피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희생된 군인들의 묘비 앞에 조국과 인민이 안겨주는 영생기원의 꽃송이들이 놓일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국내 정치적으로 전사자와 부상병 가족들을 다독이면서 민심을 수습하겠다는 차원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렇게 파병을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파병의 명분을 대외적으로 주장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군 포로는? 김정은 러시아 갈까?
북한의 파병 공식화와 함께 추가로 짚어볼 부분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의 처리 문제입니다. 북한이 공식적인 참전국이 된 만큼 북한이 포로의 송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전 중에 붙잡힌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국제법 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북한군 포로가 송환될 경우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만큼, 국제법의 예외조항을 활용해 북한군 포로를 우리나라로 데려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김정은이 언제 러시아를 방문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군 파병으로 더욱 공고화된 북러 관계로 볼 때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오는 9일 러시아 전승절을 전후해 김정은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지난달 28일 "북러 정상의 접촉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혔고, 우리 정보당국도 관련 첩보가 입수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은 좀 더 있다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