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軍심戰심

장관부터 대변인까지 오로지 육사 출신…'기형적 국방' 반복할 텐가 [취재파일]


김용현 장관, 김선호 차관, 조창래 국방정책실장, 성일 자원관리실장, 그리고 신원식 안보실장, 인성환 안보실 2차장, 김종철 병무청장, 석종건 방사청장… 12·3 비상계엄 이전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졌던 사람들의 면면입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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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에서 선서하는 김용현 전 장관을 비롯해 뒤쪽의 차관, 정책실장, 자원관리실장 등이 모두 육사 출신이다.

예비역의, 예비역에 의한 국방은 이전 정부에서 볼 수 없던 기현상입니다. 김용현 군부의 육사 순혈주의가 이 정도입니다. 조금 더 확장해서 보면 육해공군 예비역 장성들이 국방부와 관련 기관의 수장 자리를 독차지함으로써 발생한 폐단은 큽니다. 그들은 20대 때부터 30~40년 동안 형, 동생 하는 끈끈한 준혈연적 관계라서 기관 내, 그리고 기관 간 견제와 감시, 토론, 의사결정의 투명성, 자정능력 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비리, 부조리는 은근슬쩍 덮이기 일쑤입니다. 12·3 계엄의 감행도 육사 순혈주의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국민의힘은 외면하고,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를 향해 일찌감치 줄을 선 예비역 군인들의 지향도 김용현 군부의 순혈주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비역 장교 수백명이 대선 캠프에 뛰어들고 승리 뒤 논공행상으로 한 자리씩 꿰찬다는 것이 그들의 구상입니다. 예비역 군인들의 캠프 결집을 방관하면 견제와 감시, 토론 없이 무작정 덮고 가는 김용현표 그들만의 국방이 재현될 우려가 큽니다.

● 김용현표 국방의 유례없는 순혈주의

국방부의 힘은 정책과 전력의 관리에서 나옵니다. 장관을 필두로 차관, 국방정책실장, 자원관리실장 등이 맡습니다. 김용현(육사 38기), 신원식(육사 37기), 이종섭(육사 40기) 등 3명의 국방장관은 1980년 어깨 맞대고 육사에 다녔습니다. 그들을 보좌한 김선호(육사 43기) 차관도 3~6년 터울의 육사 후배입니다. 국방부의 브레인인 국방정책실장은 육사 45기 동기인 조창래, 허태근이 사이좋게 바통 터치했습니다. 자원관리실장를 담당한 조현기와 성일은 각각 육사 46기와 43기입니다. 전하규 대변인(육사 46기)까지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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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기틀을 놓은 이래 유례가 없는 국방부의 육사 출신 전성시대입니다. 이전 정부에서는 차관이나 정책실장, 자원관리실장, 대변인에 문민을 기용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에서는 신범철 차관만 1년 여 홍일점 문민으로 기록됐습니다. 김용현, 신원식 국방장관 시절로 한정하면 오로지 육사 출신 예비역 장군이고, 문민은 아예 씨가 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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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종철 병무청장, 김용현 전 장관, 석종건 방사청장

국방부 관련 기관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군의 가교 역할인 안보실 2차장을 맡은 인성환(육사 43기), 임종득(육사 42기), 신인호(육사 42기) 등이 하나같이 육사 출신입니다. 방사청도 석종건(육사 45기), 엄동환(육사 44기) 등 육사 출신이 청장에 임명됐습니다. 병무청장은 김종철(육사 44기), 이기식(해사 35기) 등입니다. 이기식 전 청장은 해사 출신이지만 용현파 군부의 일원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종철 현 청장은 김용현에 이어 경호처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둘은 함께 입틀막 경호를 완성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 신상범 원장(육사 41기), 한국국방연구원 김정수 원장(육사 43기), 군인공제회 정재관 이사장(육사 38기),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최병로 상근부회장(육사 38기) 등도 있습니다. 대선 캠프에서 뛰었던 공로로 강구영(공사 30기)과 이건완(공사 32기)은 각각 한국항공우주산업 KAI 대표이사와 국방과학연구소 ADD의 소장이 됐고, 공사 출신으로 용현파 군부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 국방 순혈주의의 폐해

훨씬 더 많이 있지만 모두 열거하면 읽기에 지루할까봐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육사 중심의 순혈주의는 많은 폐해를 낳았습니다. 먼저 국방의 정책 분야입니다. 홍범도 장군을 자유시 참변의 주범으로 왜곡한 국방부의 '홍범도 장군 설명 문건', 재판과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해병대 채 해병 사태의 '진실'이라며 내놓은 '해병대 사건 진실 문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올려놓은 정신전력교재 등이 국방정책실의 작품입니다. 국민의 인식을 제 멋대로 바꿔보자는 몇몇 육사 출신들의 비뚤어진 아이디어가 필터링 없이 공식 정책으로 등장한 희대의 사건입니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근간을 흔드는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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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7년 사이 현역 중장 시절의 강구영 현 KAI 사장(가운데)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오른쪽)

전력 분야도 만만치 않습니다. 김용현 전 장관의 군대 친구 강구영 대표가 이끄는 KAI는 폴란드·말레이시아 수출에서 FA-50의 반국산화를 추구했습니다. 전투기의 눈이라는 레이더로 LIG넥스원의 국산은 멀리하고 레이시온의 미국제를 선택했습니다. 폴란드와 2022년 가을 수출 계약을 맺었지만 폴란드 수출형 FA-50PL 버전은 언제 나올지 미지수입니다. 감항인증 등 시험평가는커녕 임무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도 안됐습니다. 수출 시한 준수, 가격 인상이 첩첩산중으로 대기 중입니다.

방산수출 전체를 놓고 봐도 우울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덕에 폴란드 방산수출 잭팟을 터뜨렸지만 한해 반짝했고, 작년은 100억 달러로 반토막 났습니다. 올해 방산수출도 1분기가 지나도록 잠잠한 것이 전망이 썩 밝지 않아 보입니다.

민간의 한 군사전문가는 "자정능력 없이 군의 기득권과 시각만 반영하는 일처리가 굳어져서 생긴 폐단들이다", "기관 내, 그리고 기관 간 토론, 견제, 감시가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지만 육사 출신 중심의 순혈주의에 막혀 실패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국방부의 한 고위직 공무원은 "육사 선후배들끼리 저녁 술자리와 골프장에서 암암리에 형님, 동생 하며 부조리한 결정들을 했다고 보면 된다", "국회, 언론, 감사원 등 외부의 감시망도 은밀하고 복잡한 국방 시스템의 속살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문민화를 통한 내외부 감시망 복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 김용현표 국방의 재림을 꿈꾸나

사정이 이런데도 민주당 일각에서 "국방부는 문민이 70% 이상 차지할 정도로 이미 문민화가 완성됐다", "문민 국방장관은 시기상조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국민의힘은 제쳐두고 민주당에 모여드는 셈빠른 예비역 장성들이 주도적으로 유포하는 주장입니다. 대선에서 이기면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한 예비역들의 빌드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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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70% 이상이 문민으로 꾸려진들 장관, 차관, 실국장이 예비역들이라면 국방부는 문민화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정원의 70% 이상이 군인이더라도 장관과 차관, 실국장이 문민인 국방부가 오히려 문민화에 가깝습니다. 국방부 의사결정의 권한이 문민에게 이전돼야 국방부의 문민화는 완성됩니다. 그래서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들이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는 김용현표 국방부와 현재의 국방부는 문민화됐다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문민이 국방부의 책임적 자리에 앉아 합참을 위시한 군 전체를 지휘·통제하는 것이 민주주의 문민통제입니다. 민주주의 문민통제에서 예비역 장성들의 자리는 거의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김용현표 국방이 망쳐놓은 민주주의 문민통제의 복원을 위해 예비역들은 후선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문민과 현역 군인들에게 안보를 맡기는 것이 선배 된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전 국민이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 위주의 순혈주의가 빚은 농단과 12·3 계엄을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김용현표 국방의 재림은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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