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마치고 미처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우연히 듣게 된 외도 증거 대화 녹음에 대해 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내 A 씨는 지난 2020년 밤 11시쯤 남편 B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시 B 씨는 직장 동료인 여성 C 씨 차를 타고 귀가 중이었는데, 아내와 통화를 마친 뒤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A 씨가 남편과 C 씨와의 대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A 씨는 이 대화가 외도의 결정적인 증거라 생각했고, 자동 녹음 기능으로 녹음된 해당 대화를 남편과의 이혼 소송과 C 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외도 증거로 녹음 파일을 제출한 A 씨에게 돌아온 것은 타인 간 대화 내용 누설 혐의였습니다.
타인의 대화를 동의 없이 듣고 이를 녹음해 제출했다는 이유였는데요.
명예훼손과 협박 등 혐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A 씨가 해당 대화를 들은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처음부터 외도 증거 수집을 하기 위해 대화를 듣고 또 녹음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인데요.
증거능력 인정 여부 판단을 위해 재판부가 녹음 내용을 검토하는 것 역시 사생활 비밀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 법체계에서는 대체로 형사소송과 달리, 민사소송법상 가사소송의 경우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법칙을 조금 더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형사재판에서는 불법 녹음으로 인정이 돼도, 민사 또는 가사 재판에서는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많은데요.
하지만 일부 사건의 경우 민사 재판이라도 불법 녹취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휴대전화에 스파이앱을 몰래 깔고, 이를 통해 얻게 된 통화 녹음을 아내가 제출한 사례에서는 지난해 대법원이 해당 녹음 내용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대법원은 나머지 증거들을 토대로 부정행위를 인정해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영상편집 : 문이진, 디자인 : 석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