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 시신 첫 발견 날짜는 4월 10일…진실화해위 조사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점

3·15 의거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이 얼굴에 관통해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된 고 김주열 열사의 추모식을 하루 앞둔 가운데 김 열사의 시신 발견 시점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하루 빠른 1960년 4월 10일로 확인돼 관심을 끕니다.

오늘(1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의거 당시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주둔한 육군 특무부대 501부대(현 국군 방첩사령부)의 '표류체 발견 보고'라는 제목의 정보 보고에는 김 열사 시신 발견 시기는 기존 4월 11일이 아닌 10일로 기록됐습니다.

보고서에는 "4293.4.10 1330경 (4월10일 오후 1시 30분쯤으로 추정) 마산시 중앙부두 해변 표류시체 발견 보고 장소로부터 200메타 남방지점에서 사후 20여 일의 백색 ○○○○(판독불가) 운동사쓰를 착용한 학생으로 추측되는 남자 표류 시체를 발견하였은 바 우측 안부에 칼빙탄창형의 철물이 박혀 있으며 두발은 5부정도로서 타살시체로 인정되면 3·15소요사건에 행방○○○○(판독불가) 하겠습니다."라고 표기돼 있었습니다.

즉, 특무부대는 1960년 4월 10일 김 열사 추정 시신을 보고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전화 통신문이나 관계 당국의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3·15의거를 포함한 2기 조사를 오는 5월 26일 마무리합니다.

이후 6개월간 종합보고서를 작성 후 11월 26일 2기 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광고 영역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오는 11일 제65주년 4·11민주항쟁기념 및 김주열 열사 추모식을 시신 인양장소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4·11민주광장에서 개최합니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 열사는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교) 1학년이던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후 4월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3·15 의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