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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퍼덕 누워도 굴러도 예술이 된다…발레 카멜리아 레이디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무용평론가 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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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리아 레이디' 연습 (조연재, 변성완) / 사진 제공 국립발레단 

'발레계의 교황'으로 불리는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한 '카멜리아 레이디'는 현 국립발레단장 강수진 씨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재직 시절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리 사교계 여성 마르그리트와 젊은 귀족 청년 아르망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려낸 작품이죠. 마르그리트의 드레스 색깔에 따라 각각 퍼플, 화이트, 블랙 파드되로 불리는 주인공들의 2인무는 말 한마디 없이 두 사람의 심리와 감정을 오롯이 전달합니다. 바닥에 철퍼덕 눕거나 구르는 동작도, 가만히 서 있거나 그저 바라보는 눈길도 이 작품에선 예술이 됩니다. 움직임 하나, 시선 하나에 담긴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카멜리아 레이디'가 왜 무용수들이 꿈꾸는 작품인지 이해하게 되죠. 다음 달 국립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 공연을 앞두고 무용 평론가 정옥희 씨와 함께 '카멜리아 레이디'의 매력을 알아봤습니다.

골라듣는 뉴스룸 커튼콜, 정옥희 편 풀영상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

대사가 없는데 저렇게 몸으로만 어떻게 마치 대사가 있는 것처럼 표현을 할까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제가 눈여겨본 점은 코르티잔

(상류층 남성과 계약을 맺고 부유한 생활을 보장받는 대가로 쾌락을 제공하는 여성)

이니까 남들을 대하는 것이 굉장히 능수능란하고, 관습적인 제스처들을 하는 것들이 있는데 거기에 남자가 관습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완전 진심으로 달려들고, 좀 거칠기도 하고 숙맥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약간 어이없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 감정이 너무 잘 전해지는.

김수현 기자 :

 '어머 얘 왜 이래' 하는(웃음). 턱을 이렇게 하는데 '어머 얘 너무 귀여운데' 그런 느낌도 있고.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리고 이제 다른 파드되랑 연결해서 나중에 보다 보면 이 무용수들의 높이 차이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느껴지거든요.

이병희 아나운서 :

높이 차이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네, 키의 높이가 처음에는 여자가 좀 뻣뻣하게 서 있고 남자가 완전 엎드려서 '당신 좋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순종하는 듯한 위계 차이를 딱 보여주는데 두 번째로 가면 좀 동등해지고, 세 번째로 가면 여자가 더 엎드려서 매달리는, 관계가 변화하는 것들이 그런 키 높이에서 보이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남자가 참 잘 누워요. 그냥 철퍼덕 누워서(웃음).

정옥희 무용평론가 :

 맞아요. 사실 발레에서는 바닥에 잘 내려가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일상적인, 전혀 무용 같지 않은 그런 걸 할 때 좀 무방비로 당하게 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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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춤으로 표현됐다 뿐이지 그냥 드라마나 영화 보는 느낌인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아, 근데 저거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이 마르그리트한테 너무 가혹하다' 이런 느낌?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근데 그거를 같은 코르티잔이라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을 수도 있고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마르그리트는 항상 의식하고 알아차리고 거기서 갈등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나름 돈과 사랑 중에 계속 사랑을 택하잖아요, 항상.

김수현 기자 :

그렇죠.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러나 그래봤자 나는 코르티잔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이 마음속에 갈등이 있는 게 보여요. 화이트 파드되 시작할 때 목걸이 던졌을 때, 다른 코르티잔이 딱 주워서 넣고 가잖아요. 그게 물론 춤추려면 무대를 비워야 되니까 소품을 없애는 기능도 있겠지만 '코르티잔은 결국은 돈을 좇는 존재야'라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데 그래서 '마르그리트가 이들과 좀 달라' 이런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기자 :

그때 딱 '가라' 그러니까 또 남자는, 아르망은 약간 뒤로 움찔움찔하면서 그러잖아요. 그런 게 너무 이렇게 섬세하게, 보면 그런 장면도 참(웃음).

정옥희 무용평론가 :

 곱씹게 되죠.

이병희 아나운서 :

잘 그렸다, 너무.

김수현 기자 :

맞아요. 십자가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장면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그러니까 마르그리트는 어쨌든 죽어가기 전에 한 번 찾아온 건데, 그렇지만 또 자꾸 가려고 하는데 또 붙잡고. 처음에는 남자가 되게 딱딱하게 냉랭하게 그렇게 굴다가 결국은 또...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 오랜 오해와 해묵은 감정이 만나서 얘기한다고 풀어지지가 않잖아요. 해결하려고 하지만 둘이 계속 삐그덕 삐그덕하는 것들이 잘 보이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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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뒤에 가면 다시 사랑을 하긴 합니다(웃음). 저런 안무를, 저런 동작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저는 되게 궁금해요. 안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러니까요. 그래서 발레라고 하면 정해져 있는 동작들, 학교에서 배웠던 동작들이 이미 확연하게 있는데 그거 말고 굉장히 일상적인 움직임들, 혹은 가만히 서 있는 거, 그냥 손 한 번 뻗는 거, 누구 한번 쳐다보는 걸로 압도적인 말을 하는 게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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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게 아마도 발레의 움직임을 딱 우리가 아는 동작 말고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예술로 보게끔 확장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 같고,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오히려 더 작게 압축해서 손동작 한 번으로 다 말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보통 고전발레에서는 주인공이 가운데 있고 제일 조명 받고, 주인공들이 춤추고 나머지들은 가만히 있는 구도가 많은데 여기서는 오히려 파드되는 둘이 춤을 추지만 다른 장면들에서는 주인공들이 별로 안 하고 가만히 있어요. 나머지 군무들이 막 움직이는데 그렇다고 무대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무대 위에서 뭔가 있어요. 그냥 가만히 있는데 그게 존재감을 더 많이 발휘하는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이 장면이 지금 누구의 시선에서 펼쳐지고 있고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지만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게 막 읽히는 효과가 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그러면 지금 상상을 해봤는데 존 노이마이어가 처음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안무를 할 때 여자 무용수를 들어 올리고 돌리고 이런 거는 '이렇게 동작을 해 봐' 이거를 어떻게 알려줄까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보통은 자기가 무용수로서 경험했던 것들에서 우러나오기도 하고, 또 무용실 안에서 무용수들이랑 같이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해보면서 나오는 것들이 있죠.

그래서 특히 처음에 안무할 때 원작을 했던 초연 무용수들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게, 안무가와 함께 작업을, 정말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해서 수동적으로 동작 짜주면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이걸 만드는 공동 창작자라고 보기도 해요.

김수현 기자 :

복잡하게 들어 올렸다가 이렇게 했다가 또 비틀어가지고 (웃음) 그런 거를 어떻게 알려주지? 저는 보면서 막 그런 생각이...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게 남성 안무가들이 조금 유리한 점이죠. 왜냐하면 남성들이 여성을 많이 서포트해서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몸으로 체험한 감각들이 있어서, 그거를 상상하는 게 조금 더 유리한 점은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아, 그렇구나.

이병희 아나운서 :

근데 그냥 앉아서 '아, 안무를 이렇게 해봐야지' 이렇게는 안 되겠네요. 연습실 같은 데서 진짜 뛰어보고 '아, 다음엔 이렇게 돌리자' '다음에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하면서 짜겠네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맞아요. 이미 계획을 짜놓고 하는 사람도 있고, 프티파 같은 경우는 딱 계획을 머릿속에 해놓고서는.

김수현 기자 :

아, 머릿속에서 이미 다 해놓고.

정옥희 무용평론가 :

 네. 바둑알로 체스판에서 해보면서. 왜냐하면 굉장히 시각적으로 딱 떨어지는 고전적인 춤을 많이 했으니까. 근데 이런 작품들은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풀릴지 모르기 때문에 무용실에서 같이 하는 거죠.

이병희 아나운서 :

음악 틀어 놓고 '아, 여기는 뭐 이렇게' 하겠네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네. '동작이 이렇게 연결이 되나?' 이런 것들을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죠.

김수현 기자 :

그럼 그런 걸 기록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있나요? 요즘은 이제 다 영상이 있지만 예전에 했던 것들은...

정옥희 무용평론가 :

 예전엔 오히려 쉬웠어요. 왜냐하면 그 동작들이 정해져 있으니까.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면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 이런 작품들은 오히려 어렵죠. 그래서 영상의 힘을 받고, 뭐 기록도 하지만.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무보라는 게 있다고는 들었거든요. 이렇게 기록하는 게.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근데 무보라는 것이 모든 춤의 모든 움직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특정 장르 안에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충실한 방식으로 기록을 하는데, 모든 움직임을 담아내는 무보도 있거든요. 근데 그러면 엄청나게 복잡해지니까 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실용성은 좀 떨어지고. 그래서 완벽한 무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요즘은 어쨌든 영상이 있으니까.

정옥희 무용평론가 :

 맞아요.

김수현 기자 :

근데 영상이 있다 해도 처음에 안무할 때 '이거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거다' 이런 거를 알지 못하면 사실은 그게 제대로 따라 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게.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래서 오리지널 안무가가 와서 코칭하고 안무가에게 직접 배웠던 무용수들이 와서 코칭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죠. 체현된 지식을 전달하는 거기 때문에. 그냥 우리가 비디오 보고 흉내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는 거죠.

이병희 아나운서 :

그럼 처음에 안무 짤 때도 혼자서 하기는 어렵겠네요? 같이 상대 여자(무용수)랑 이런 걸 봐야지 '이다음에 이렇게 하자' 뭐가 나올 거잖아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그거는 안무가마다 스타일이 다른 것 같긴 해요. 어느 정도는 좀 생각을 해 오는 것도 있고, 와서 해보면서 계속 바꾸는 사람들이 있고. 되게 다르죠.

이병희 아나운서 :

무용은 이런 게 좀 신기한 것 같아요.

정옥희 무용평론가 :

 맞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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