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불로 고립된 주민 대피시킨 개인택시 기사 천학봉 씨
"택시에 불이 붙었으면 아마 살기 어려웠을 겁니다."
경북 안동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천 모(66)씨는 이번 경북 산불로 고립됐던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생사가 오갔다고 1일 털어놨습니다.
천 씨는 지난 26일 안동시청 근처에서 "안동시 길안면 방향으로 가자"고 말하는 여성 손님을 태웠습니다.
목적지는 천년고찰 고운사였습니다.
고운사는 이번 화재로 잿더미가 됐습니다.
택시에 탄 손님은 다급하게 "친척 할머니 2명이 고립돼 있다"고 했고 천 씨는 "한번 가보자"라고 답하고 가속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는 처음에 길안면 방면으로 향하다 사방을 뒤덮은 연기와 곳곳에 날아다니는 불씨 때문에 택시를 돌려야 했습니다.
이후 의성군 단촌면으로 재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천 씨는 "연기와 불씨 때문에 앞이 안 보이고 도로도 엉망이었다. 차들은 역주행하고 난리였다"며 "의성군 단촌면에서는 손님하고 '이렇게 죽나 보다'라는 말을 나눌 정도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그때 간신히 할머니 중 1명하고 손님이 전화 연결이 됐다"며 "할머니들은 화물차를 얻어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도로로 피신한 상태였다"고 기억했습니다.
천 씨는 "화물차 기사가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을 설명해줘서 할머니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며 "평소에 택시 운전을 하며 길을 잘 알아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차에 불이라도 붙었으면 살기 어려웠을 거다"라며 "1분 1초가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다만 천 씨는 본인보다 할머니들을 처음 대피시킨 화물차 기사가 대단한 일을 했다며 공을 돌렸습니다.
▲ 산불대피령에 주민 대피시킨 개인택시 기사 이진호 씨
또 다른 안동지역 개인택시 기사 이 모(74)씨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택시를 이용해 마을주민들을 대피시켰습니다.
이 씨는 주민대피령이 떨어지자 눈에 보이는 주민들을 급하게 택시에 태워 마을에서 4㎞가량 떨어진 남선초등학교로 여러 차례 실어 날랐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말 그대로 급박했다"며 "산에서 내려온 불길이 택시를 덮쳤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누구든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3번에 걸쳐 주민들을 남산초로 대피시켰지만 학교 근처까지 불길이 번져 안동체육관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산불로 주민들은 구조했지만 보금자리인 주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재민 대피소인 안동체육관에 머무는 이 씨에게 현재 남은 건 가족과 휴대전화 1개가 전부입니다.
이 씨는 그런데도 "건강 상태만 괜찮다면 다시 그런 상황에 부닥쳐도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안동시에 따르면 이 외에도 풍천면 김 모 씨 부자(父子)는 대피 중 전복된 트럭을 발견하고 트랙터를 가져와 차량을 세워 주민을 구조했으며 임하면에서는 임 모 씨가 농약살포기로 물을 뿌리며 민가 10채를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또 풍산읍 새마을부녀회와 중구동 통장협의회가 이재민과 소방대원들을 위해 식사나 청소, 배식 등의 봉사를 하는 등 여러 지역에서 봉사와 후원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진=본인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