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버린 심상직 씨의 집
"젊으면 탈탈 털고 새로 시작하겠는데 이 나이에 우예하나(어떡하나)."
지난 30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 사는 심 모(78) 씨는 망연자실한 듯 새카맣게 타버린 창고를 바라봤습니다.
창고에는 모를 내는 데 쓰는 이앙기가 잿더미로 변해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불에 탄 트럭이 고철 덩어리로 남았습니다.
그는 모내기 철인 오는 5월을 앞두고 집과 각종 농기계를 산불에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심 씨는 "이앙기고 뭐고 깡그리 탔는데 원상 복구하려면 10억 원은 필요하다"고 말하며 씁쓸해했습니다.
그는 "집에서 수건 한 장 못 꺼내고 도망쳐 나왔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아 밤에 잠이 안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치울 엄두가 안 난다"며 무너진 지붕에 들어갈 수조차 없이 꽉 막힌 집 입구를 가리켰습니다.
심 씨는 일대 터를 직접 다져서 집을 짓고 논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눈을 감아도 선명한 듯 "여기는 창고고 저기는 공부방, 여기는 안방"이라며 무너진 집과 창고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웃 마을 파천면 지경리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집이나 농기계가 전소돼 농사는 엄두도 못 내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경리에서 만난 80대 어르신은 "논밭 빼고는 집이고 농기계고 다 탔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 타서 올해 농사는 하겠냐"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행히 산불 피해를 보지 않아 일상으로 복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의성군 점곡면 청년 농부인 오 모(36) 씨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대구에서 2019년 귀농한 그는 600평 스마트팜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수확합니다.
오 씨는 "지금이 딸기 수확 철인데 알고 지내던 청년들하고 산불을 끄러 다니느라 그동안 수확을 제대로 못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행히 딸기 농장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아서 딸기를 수확하고 출하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오 씨는 이번 산불로 인해 생계 터전인 스마트팜 농장과 사무실이기도 한 집을 잃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 2명은 대피를 시키고 혼자 남아 집을 지켰다"며 "산불이 코앞까지 닥쳐서 이제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 소방차가 와서 불을 껐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방관들이 그 순간만큼은 신으로 보였다"며 "꼭 성공해서 진화대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의성군의 마늘 농가도 이날까지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의성군 관계자는 "산 밑에 마늘밭이 있는 경우가 잘 없다"며 "마늘 농가에서 피해가 접수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북도는 지난 30일까지 농작물 피해 면적을 558㏊로 집계했습니다.
지역별로는 의성군 215㏊, 청송군 176㏊, 안동시 117㏊, 영양군 50㏊ 등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