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이마모을루, 제1야당 대선 후보로…에르도안 정적 제거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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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체포된 이후 현지 시간 23일 시위에 나선 군중들

튀르키예에서 22년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대 정적을 구금한 데 따른 역풍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튀르키예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부패와 테러 연루 등의 혐의로 전격 체포된 지 닷새째인 현지 시간 23일 이스탄불 시청 주변에선 최소 수만 명이 운집해 에르도안 규탄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마모을루 시장의 부인 딜렉 카야는 연단에 올라 "이마모을루가 당신(에르도안)을 쓰러뜨릴 것이다. 당신은 패배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마모울루가 직면한 불의는 모두의 양심을 울렸다. 이마모울루에게 저질러진 일에서 모두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직면했던 불의를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일 기습적으로 연행된 이마모을루 시장은 이날 직무가 정지된 채 속전속결로 이스탄불 교외 실리브리 교도소로 이송됐습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변호사를 통해 엑스에 올린 글에서 "이런 건 사법 절차가 아니다. 이건 재판 없는 (정치적) 사형이다"라고 규탄했습니다.

앞서 그는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에서 검은 얼룩을 지울 것이다. 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끝까지 저항할 것이란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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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모울루가 소속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은 이날 치러진 2028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마모을루 시장을 확정하면서 점차 야권도 결집하는 모양새입니다.

공화인민당은 비당원도 표를 던질 수 있는 개방형 투표로 진행된 이번 경선에서 이마모을루 시장이 1천500만 표를 득표했다면서 "이 중 1천321만1천 표가 (비당원이) 연대의 뜻으로 투표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국 81개 도시에서 진행된 이번 경선은 투표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당초 예정했던 시간을 3시간 반이나 넘겨서야 끝났다고 공화인민당은 밝혔습니다.

튀르키예 검찰은 이마모을루 시장에게 테러조직으로 간주되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 등을 지원·협력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마모을루가 이례적 지지 속에 제1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오히려 야권 결집에 불씨를 던진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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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을루는 차기 대선에서 에르도안과 경쟁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야권 후보로 꼽혀왔습니다.

그런 그를 대선후보 경선 직전 구금해 야권의 구심점을 제거하려 했다는 게 이마모을루 측의 주장입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2003년부터 22년 동안 장기 집권해 온 점이나, 이슬람주의와 인기 영합 정책을 내세워 국부(國父)인 무스타파 케말 초대 대통령이 정립한 세속주의 원칙을 약화해 온 데 대한 불만도 역풍이 더욱 거세진 배경으로 꼽힙니다.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질 조짐을 보이자 튀르키예 정부는 집회 금지령을 내리고 소셜미디어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거리의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강경 진압 방침을 시사했지만 수십만 명 이상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튀르키예 주요 도시들에선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AFP통신은 "이스탄불에선 경찰 기동대가 고무총탄과 최루액 스프레이, 진압용 수류탄을 사용했다. 수도 앙카라에선 물대포도 등장했다"고 전했습니다.

튀르키예 내무부는 토요일 하루 동안 이스탄불에서만 323명이 체포됐다고 밝혔습니다.

튀르키예 당국이 법원 명령을 통해 국내 언론사와 기자, 정치인, 학생 등이 소유한 엑스 계정 700여 개를 폐쇄하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엑스 측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법적' 조처라면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외교부가 규탄 성명을 내는 등 국제사회의 여론도 악화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이마모을루 시장을 구금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고 비판하면서 "(야권 인사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던) 약속을 존중하는 건 우리 관계뿐 아니라 튀르키예와 유럽연합(EU)의 관계에서도 핵심적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아프리카 분쟁에 이르기까지 중재자로 자리매김했고 유럽의 튀르키예 의존도가 커진 상황이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 체포에 대해 서방 국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덜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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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오는 25일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을 만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미 국무부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이마모을루의 체포에 대해 튀르키예 내부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태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9일 브리핑에서 이마모을루의 체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말에 "튀르키예가 인권을 존중하고 내부 체계를 적절히 다루기를 권장한다"라며 "모든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는 점 외에 다른 나라의 내부 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 체포로 튀르키예 경제도 큰 충격에 직면했습니다.

이마모을루 시장이 체포된 직후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와 증시가 폭락했습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리라화 방어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해 지난 19일에만 115억 달러 (16조 8천억 원)를 투입했습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23일 시중은행 경영진과 회의를 열어 잠재적인 시장 변동성과 향후 조처 등을 논의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메흐메트 심셰크 재무장관도 시장 혼란 대비 조처에 대해 규제 당국과 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밖에도 튀르키예 당국은 이날 추가적인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모든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고 자사주 매입 규정을 완화했습니다.

(사진=AP, 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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