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전역으로 토허제를 확대 지정하기로 하면서 서울 도심 한복판의 아파트들이 광범위하게 규제 대상이 됐습니다.
특히 이들 4개 구는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토지거래허가제(이하 토허제)까지 '3중 규제'를 받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주변에 대규모 개발 호재나 정비사업 이슈가 없는 일반 아파트까지 토지거래허가 대상으로 지정함에 따라 앞으로 토허제가 또다른 정부의 집값 통제 수단으로 일반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과거 개발 예정지의 투기 방지를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1970년대 제3한강대교(현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 영동 신시가지 개발 등 잇단 개발사업으로 부동산 투기 세력이 등장하자 1978년 12월 일명 '땅 투기'를 막기 위해 처음으로 시행됐습니다.
이후 끊임없는 사유재산 침해 논란으로 해제 요구가 이어지다 1993년 국토이용관리법 개정과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대거 해제되는 등 지정과 기능이 약화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명박 정부의 '뉴타운' 개발사업으로 지분 쪼재기 등을 방지하기 위해 뉴타운 지역 내 토지를 면적과 관계없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토지 분할을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신도시나 공공주택단지 등 개발 예정지에서 보상을 노린 투기적 토지 거래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쓰였습니다.
대규모 아파트가 포함된 서울 한복판에도 허가구역이 지정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문재인 정부 때부터입니다.
국토부는 2020년 5월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용산 철도정비창 내 공공·민영주택과 국제·상업시설을 건설하기로 하면서 주변 이촌동과 한강로1·2·3가, 용산동3가 일대 재건축·재개발 구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서울시가 잠실 일대 마이스(MICE) 개발사업과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 추진을 이유로 강남구 청담·삼성·대치동과 송파구 잠실동 전역(총 1천440만㎡)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강남 일대로 허가제가 확대됐습니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인 2021년 4월에는 압구정동, 여의도동, 목동, 성수동 등 이른바 '압여목성'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 단지(475만㎡)가 허가구역으로 묶였습니다.
신속통합기획 등 정비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려는 오 시장은 이후에도 재건축 투기 방지를 명분으로 정비사업 추진 단지를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습니다.
다만 앞선 토허제 지정은 인근 지역 대규모 개발이나 자체 정비사업 등 '개발 호재'라는 지정 명분이 있었습니다.
지정 단위도 정비사업 대상 아파트나 개발 호재가 있는 '동' 단위가 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지정 대상이 '동' 단위를 넘어 '자치구' 단위로 확대 지정하면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축 아파트 등을 비롯해 개발 호재가 없는 일반 아파트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되게 됐습니다.
개발 호재가 없고, 투기 우려가 없는 소규모 단지까지 허가 대상에 포함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앞으로 토허제가 개발 유무를 불문하고 집값 급등지에 강력한 거래 통제 수단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익명을 원한 한 대학교수는 "토허제는 시장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곳으로 지정을 최소화해야 하는 반시장적 규제인데 서울시가 강남 토허제 해제 후 집값 상승에 놀라 예상 밖의 충격요법을 선택한 것 같다"며 "개발 호재 지역도 아닌데 단순히 집값이 뛴다는 이유로 허가구역으로 지정해 거래를 통제하는 것은 손쉽게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으로 과도한 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24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는 강남 3구와 용산구의 아파트들은 앞으로 6㎡ 이상이라면 모두 관할 구청장으로부터 거래 허가를 받아야 하며, 2년 이상 실거주가 가능한 실수요자에게만 취득이 허용됩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아파트에서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갭투자'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허가구역 내 주택 매수자는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자이거나 보유 주택을 1년 이내에 모두 팔아야 해 사실상 무주택(예정)인 사람만 취득할 수 있습니다.
또 최근 강남권에서는 잔금 납부일을 2∼6개월까지 넓게 잡는 경우가 많지만, 허가구역에선 잔금 납부일이 3개월 내로 제한돼 자금 여력도 있어야 매수가 가능할 전망입니다.
이번에 확대 지정한 토허제 대상 아파트는 관보 게재 등을 거쳐 이달 24일 계약분부터 규제가 적용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부동산 거래법상 고시 후 효력은 5일 뒤에 발생한다"며 "19일 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고 그 효력이 5일 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24일 계약분부터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앞서 '잠삼대청'에서 토허제가 해제된 2월 13일 이후 계약해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은 경우는 허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또 이달 23일까지 계약을 체결한 아파트는 토지거래허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토허제 지정 전 막차 매수 수요가 급증할 전망입니다.
이미 정비사업 재료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성수동)은 기존 허가제 기준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압여목성의 토허제 지정 기한은 오는 4월 26일까지로 추가 연장이 유력합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