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일화 털어놨다가 옥살이…51년 만에 재심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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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한 황해도 주변

북한에 피랍된 일화를 고향 사람들에게 털어놨다가 경찰에 끌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어부가 사후 자녀가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전주지법 제3-3 형사부(정세진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고(故) 송모(1929∼1989)씨의 재심에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고인이 북한에 피랍된 지 약 65년, 실형 확정 이후 51년 만에 바로잡힌 판결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공소장을 살펴보면 송 씨는 1960년 5월 16일 오후 4시쯤 제2 대성호를 타고 군산 선유도항을 떠나 서해 최북단인 연평도 근해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제2 대성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로 저지선을 넘어 같은 달 19일 북한 수역인 황해도 구월골 인근에서 조업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피랍됐습니다.

송 씨는 이후 해주시의 한 여관방에 억류됐다가 피랍 일주일 만에 고국 땅을 밟았으나 10년도 더 지난 이 일로 구속돼 1973년 법정에 섰습니다.

이 공소장에는 송 씨가 피랍 당시 지도원으로 불리는 북한 노동당원으로부터 '북조선은 거지도 없고 실업자도 없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미군은 남한에서 몰아내야 한다' 등의 사상교육을 받고 이를 주변에 퍼뜨렸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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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원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송 씨에게 징역 1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습니다.

송 씨는 이로부터 15년 뒤에 숨졌으나 그의 딸(74)은 "아버지가 고문·협박에 못 견뎌 억울한 수감생활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수사·재판기록과 이후 제출된 자료를 근거로 '고인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경찰관에 의해 폭행과 고문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판시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 구금 또는 가혹행위를 당한 상태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한 진술은 임의성이 없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자백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는 증인들의 법정 진술뿐인데 술을 마시면서 그러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기억해 진술하는 게 이례적이어서 그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설령 피고인이 공소장에 기재된 것과 같은 말을 했더라도 그 발언 내용에 비춰 고향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납북 기간 경험한 북한 사회에 대한 피상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이 발언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했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한 위험을 줬다고는 할 수 없다"고 밝히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판결을 마치면서 "저희도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통받은 고인과 그 가족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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