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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이라며 특정 기업 눈감아준다?…그랬더니 벌어진 일들"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Stop Worshiping the American Tech Giants, by Lina M. 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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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나 칸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연방거래위원장을 지냈다.

중국의 인공지능 기업 딥시크(DeepSeek)가 내놓은 강력한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에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는 충격에 빠졌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 

마크 안드리센

은 그 충격을 "AI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견주었다. 하지만 안드리센은 아마도 연방정부가 나사(NASA)와 같은 대규모 프로그램을 출범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린 데 충격을 받은 미국은 서둘러 항공우주 개발에 뛰어들었고, 이는 나사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대신 안드리센은 미국 기업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술적인, 경제적인 우위를 지키려면 미국 정부가 민간 부문에 자본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반독점 규제 당국을 이끌었던 나는 딥시크 쇼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딥시크는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분명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시장의 경쟁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미국 테크 업계는 중국 경쟁 기업들의 도전을 당해낼 수 없고, 이는 21세기 미국의 지정학적 권력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딥시크가 예를 들어 챗GPT보다 얼마나 더 효율적인 모델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딥시크의 혁신은 지금껏 드러난 것만으로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오랫동안 펴온 주장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기에 충분하다. 즉, 미국 테크 기업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기술적 우위는 지속적인 컴퓨팅 파워, 에너지 생성, 그리고 최첨단 칩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만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수년간, 이 기업들은 미국 정부에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처리 능력을 활용해 막대한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다. 이들은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에 본사를 두고 법치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시장경제 체제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이 모든 특혜 아닌 특혜로도 모자라 심지어 미국 정부가 앞장서서 중국 기업이 최첨단 반도체 칩이나 그 칩을 만드는 제조 기술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수출 금지령까지 내려줬지만,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기술 개발에 뛰어든 중국 기업의 추격과 도전에 휘청거렸다.

미국 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 혁신에 있어서 외국 기업들에 추월당할 위기에 처한 건 사실 놀랍지 않다.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2000년대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미국 경제 체제를 바꿔놓은 뒤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해 경쟁의 싹을 자르는 등 범접할 수 없는 요새를 구축하며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 왔다.

지난 10년간 빅테크 기업의 경영진은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좇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대신 그때그때 정치적 상황에 맞춰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 데 능숙해졌다. 이들은 때로는 저항에 동조했다가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불굴의 전사였다가 돌연 트럼프의 정치적 의제에 올인했다.

워싱턴이 앞장서서 특정 기업에 일종의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아주고, 이 기업은 미국의 국익에 아주 중요하므로 독점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공표한 적이 몇 차례 있다. 이때의 경험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보잉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행기 제조사 보잉을 향한 평판은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칭찬 일색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은 보잉을 "사실상 미국의 챔피언"으로 추켜세우며, "정부는 보잉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슈퍼스타 기업 보잉은 너무 소중하므로 보잉이 시장에 남아 있는 경쟁 기업 맥도넬 더글라스를 원활히 인수할 수 있도록 규제 당국이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1997년 두 회사의 합병은 보잉의 독특하고 뛰어난 사풍을 파괴하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결국, 보잉은 기본적인 안전 규정마저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 하자투성인 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대로 미국 정부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금의 AT&T와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을 상대로 반독점법을 강력히 적용한 결정이 낳은 결과들을 보시라. 실리콘밸리가 역동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미국 테크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던 건 반독점 규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 환경이 조성된 덕분이었다.

미국 정부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당적을 불문하고,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공개적인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이 보상을 받도록 시장을 관리, 감독해 왔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일본이나 유럽 각국 정부들이 시장을 감독하는 방식은 미국과 달랐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경쟁을 보장하고 시장이 독과점 상태로 전락하지 않게 막은 건 미국의 경제가 폭넓게 성장하고, 기술 혁신을 선도하며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독점도 때때로 기술의 진보를 가져오기는 한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항상 시스템 밖에서부터 파괴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미 기득권이 된 독과점 기업은 자신의 점유율이 낮아지거나 소위 제 살을 깎아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신기술과 기술 발전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료주의와 관료제의 타성에 젖은 독과점 기업들은 판을 흔들어보겠다는 배고픈 열정으로 가득 찬 스타트업의 엄청난 효율성과 혁신을 따라 할 수 없다.

최근 전개되는 인공지능 기술 경쟁에서 정확히 이런 공식이 반복되고 있다. 구글은 2017년, 오늘날의 인공지능 혁명의 토대가 된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개발자들이 구글을 떠나 새로운 신생 기업으로 적을 옮긴 뒤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의 잠재력을 끌어내 실제 기술에 접목하고 발전시킨 건 테크 업계의 거인들이 아니라, 시장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기업들이었다.

연방거래위원회의 수장으로서 나는 늘 인공지능 분야의 개발자들은 자신이 내놓은 모델에 관해 충분한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독립 개발자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스타트업이 대기업이 설정한 높은 가격이나 접근 제한 등 진입장벽에 막혀 새로운 모델을 써보지도 못하면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혁신은 시장의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될 때가 아니라 공개적인 경쟁이 보장될 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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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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